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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효율 제일주의는 '자살 공화국'의 동력
분배·형평의 기조 통해 사회복지체제 구축해야
 
이용길   기사입력  2003/08/05 [16:21]

도대체 왜 이러는가?

작금의 한국의 현실은 수많은 우리의 부모, 형제, 친지, 이웃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한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통탄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총 자살 건수는 13, 055건으로 하루 평균 36명, 1시간에 1.5명 꼴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나라야 말로 '자살 공화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자살의 양상이 특정한 개인·계층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집단적이고 전 계층으로 확산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즉 특정 개인이 자살을 시도할 때 개인적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부모, 배우자, 자녀들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집단적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생활 빈곤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 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것은 사회적인 모순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부모, 형제, 친지, 이웃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는가? 일단 자살이란 행위는 순수한 개인적 차원의 동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모순)에 그 근원이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견해로 자살의 행위는 대부분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이 특정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축적되면서 현재의 생활이 극도로 황폐화되고 미래의 대한 절망이 극한에 다다를 때 발생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살의 급증은 경제적 상황이 갈수록 열악해져 가는데 주요 요인이 있다고 판단된다.

최근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어 기업의 투자가 위축,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소득원을 상실한 계층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소득의 창출 기반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소득 기반의 상실과 불안정성은 가계 부채의 증가를 수반하여 가계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최근 자살자의 상당수가 카드 빚 등 가계 채무의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극한적 선택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는 서민층이 아닌 사회의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로 몰고 가기 때문에 설사 현 시점에서 중간(산) 계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하위 계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 특히 중간 계층 중 일부는 주식 시장의 참여를 통해서 자본 소득의 증대를 꾀하기도 하는데 현재의 주식 시장은 막대한 투자 자금과 고도의 투자 기법으로 무장된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종합주가지수의 지속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주식 투자에서 커다란 손실을 맛보고 있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들이 자신의 여유 자금을 가지고 주식 투자에 임하기 보다는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을 통해 투자하는 투기적 성향을 선호하여 만일 투자 손실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으면서 결국 극단적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다. 이 사회의 상위 계층인 자본 계급 역시 이러한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소 기업은 최근 경기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민간 소비가 위축되자 기업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또한 제한된 시장에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할인 판매 경쟁을 감수하고 있으므로 기업의 수익성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대기업 역시 국내 시장과 세계 시장에서 국내의 대 기업 뿐만 아니라 거대한 자본과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외국의 초 국적 자본과 힘겨운 생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 등 개발 도상국이 저임금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을 통해 국제 경쟁력이 급상승하면서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자본 계층도 시장의 치열한 경쟁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드높였던 보유 자본을 유지·증식은 커녕 감소·상실할 위험성에 항시 노출되어 있음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단 기간에 세계 체제에서 (외형적으로는) 상위 중진국 수준으로 부상하였고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등 일부 업종에서 한국의 국제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한국의 화려한 외형적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적지 않은 부분이 경제적 풍요로움은 커녕 빈곤과 불안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러한 극단적인 모순적 현실이 한국의 경제 개발 전략의 편향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경제적 분배와 사회적 형평을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한 성장·효율 제일주의에 입각한 경제 개발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사회 복지 체제가 극히 취약하여 경기가 침체되면 사회 기반이 급속도로 침식·와해되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대선 과정과 집권 초기에 국정 기조를 역대 정권이 자본 계층을 기반으로 주력해 왔던 성장·효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서 근로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분배·형평에 주안점을 두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룩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최근 노무현 정부는 경기가 매우 가라앉자 성장·효율 제일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고용이 창출되고 소득이 증대되기 위해서는 수출과 기업 투자의 증대를 통한 경제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분배없는 성장 우선주의 전략은 성장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불안·소외를 현재적·잠재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진정 인간적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국정 기조로서 경제적 분배와 사회적 정의가 확고히 구축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튼튼하고 확고한 사회 복지 체제가 구축될 때 사회 구성원이 실업과 소득 감소에 따른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으로서의 자존과 자아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조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대한민국이 자살 공화국의 누명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용길 기자는 고려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농협대, 숭의여대, 전북대에서 강사로 재직 중입니다. 현재 여러 인터넷 언론에서 시사 평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어느 진보주의자의 세상 비틀기>(동성출판사, 2002) 등이 있습니다.  

연세대(학사,석사),고려대(박사수료)에서 공부하고 한국투자증권(구 한신증권) 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로 근무했습니다. 숭의여대, 농협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와 제주MBC '이용길의 시사터치','이용길의 시사칼럼'을 담당했고 오마이뉴스 등 여러 언론 방송에서 시사 평론 활동을 했습니다. 현재 제민일보 논설위원, 제주상의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며 다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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