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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참사, 대구를 욕되게 말라
할배할매의 대구로 가야 한다
 
서태영   기사입력  2003/08/01 [10:11]
대구의 제1 시민으로 추앙하고 싶은 서거정이 자란 달성십경은 금호강 풍류로 시작해서 침산의 낙조로 끝난다.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한가히 오가며 갈매기와 노닐다가/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오호가 어디더냐 이 풍류만 못하리. (중략). 물줄기 서로 흘러 산머리에 닿고/침산의 푸른 숲은 가을 정취 더하네/ 저녁 바람 타고 오는 방아 소리는/ 노을에 젖은 나그네 시름 애끓게 하네." (서거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정시를 쓰던 서거정의 대구,
서정시를 쓰기  힘든  조해녕시대의 대구

그때 대구가 지금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땐 서정시를 쓰던 시절이었다. 대구에서 시인은 한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절을 살고 있다. 얼반 죽어지낸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는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브레히트)"하는 글이 넘친다. 그래서 나 같은 것들도 읽히지 않는 글을 쓰려고 바둥거린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은 사라지고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사무친다!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거기서 구박받고 있는 대구를 만나게 된다. 가상현실이라고 지나칠 일은 아니다. 정보의 큰 바다 인터넷에서 마당 너른 대구는 이러쿵저러쿵 욕을 얻어먹으면서 주눅이 들어가는 도시로 나온다. 나 역시 누구 못지 않게 대구의 현실에 대해 적잖게 답답해하는 부류지만, 도저히 이런저런 쓴소리에 맞장구나 치고 다닐 때는 아닌 것 같다.

대구를 좋게 말하면 썰렁해진다. 사오정 취급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대구에 대하여 쥐뿔도 모르는(!) 서울전문가 김진애 건축사도 약전골목을 설명하는 장에서 "이른바 'TK' 대구에 옛 역사가 있다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되지 않는가?"(『김진애의 우리도시 예찬』39쪽) 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질 정도다. 김진애씨는 한양의 설계자가 우리고장 출신이란 걸 알기나하고 이죽거렸을까. 

어쨌거나 이 도시의 자존심은 꺼졌다. 세 번째 도시의 자존심은 문헌상에만 나오는 옛 서열일 뿐이다. 그 도시의 현실은 아홉 번째 도시를 향하여 고속활강 중이다. 추락하는 도시에 날개를 달아라. 불을 질러라! 낡아빠진 모든 것들을 확 싸질러라. 불의 땅 대구, 달구화(達句火)! 후손들이 못나면 조상들 욕먹게 한다. 선대의 자랑스런 전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현실의 대구는 대한민국으로부터 꼴통 취급을 받고 있다.

대구는 그 옛날의 좋게 들리는  동네이름이 아니다. 상표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싸구려 취급을 받는 브랜드 이미지다. 후퇴, 쇠퇴 일로다. 대구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 낡은 대구심을 대변한다는 어느 신문이 매일매일 대서특필해가며 밀어준 정치인의 말로를 보면 잘 알 것이다. 대구의 주류는 대한민국의 싸구려와 일맥상통한다. 대한민국의 서정과 완전 따로 논다. 선호취향이 한참 엇나가 있다. 이대로 변방의식으로 객기나 부리는 지역정서로는 추락하는 대구에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다.

1930년대, 일제 파쇼통치 시기에 불의 땅 대구는 여느 지역 못지 않게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한 세기가 흐르지 않았는데도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전설이다. "전설을 찾아가자!" 대구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상과 문화의 요람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개발독재의 두목들은 가장 못난 축에 속한다. 그 시절에 나쁘게 은혜 입은 후레자식들일 따름이다. 그걸 우상숭배하는 대구의 미래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성현을 먹고 자랐지 언제 정치인들이 챙겨주는 밥상에 숟가락질한 적이 있었나? 

대구의 내일은 멀지 않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50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된다.  '대구는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인걸은 있어도 꽃피우지 못하고, 대책없이 쭉정이들만 분만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사고만 쳐대니 죽을 노릇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이 도시의 사망선언처럼 엄습해왔다. 대구는 소돔과 고모라로 폭삭 망했다. 대구지하철 참사고를 쓰는 나의 시선은 철두철미하게 불온해졌다. 그 얼토당토않은 현장을 전전하던 내 눈에도 대강의 인과관계는 어리비쳤다. 나는 또 기어코 대구를 불평하고 불편하게 해야 하는 더러운 팔자의 사람이 된다.

"글을 쓰는 이의 시선은, 기사 작성자의 시선까지를 포함해서, 독재자의 시선이다. 그것은 기사를 포함한 모든 글이 적어도 묵시적으로는 평가라는 뜻이고, 재단이라는 뜻이다. 선의의 필자가 아무리 그 독재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이다. 그는 노력에 의해서, 단지 너그러운 독재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고종석,『서얼단상』)        

관선시장 때 기획되어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겨진 대구지하철

▲ 대구지하철  
대구지하철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인 1989년 9월 1일 박성달 시장이 지하철건설 기획단을 발족해서, 1991년 12월 7일 이해봉 시장 재임시절에 착공되어, 1995년 11월 20일 25대 문희갑 시장 때 설립되었다. 1997년 11월 26일 중앙로-진천역간 지하철이 부분개통되면서 대구의 지하철 시대는 장막을 걷었다. "2000년 현재 하루 수송인원은 13만 5000명, 교통 수송 분담률은 6.6%(두산백과사전)"에 불과했다. 30대 민선 조해녕 시장 취임 1년도 안되어,  2003년 2월 18일 중앙로역에서 어느 방화범이 저지른 단순방화는 국가재난으로 비화되었다.  

최하의 수송분담률을 자랑하던 대구지하철. 수송률은 쥐꼬리만한데, 차도 다니지 않는 지하철에 왜 이렇게 사고는 다발하던지. 지하가 부실하면 도시의 형체가 흔들린다. 착공 단계부터 토호들의 돈굴림에 아부한 흔적이 역력한 지하철 1호선은 제대로 기동도 못하고, 반생명의 화신인 1079, 1080호 불의 전동차를 남기고 처절하게 망가졌다. 거대한 죽음을 실어나르는 기관차는 멈춰섰다. 그것은 한 도시의 사망선언이었다.

지하에 싹튼 암흑행정  

사후약방문 같은 소리지만, 지하철은 애시당초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는 대구지형을 십분 고찰한 고뇌의 산물은 아니었다. 지하는 복마전이었다. 시정은 그 기획설계자였다.  

중앙로역 지하철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지하공간은 민과 관이 갈등하며 대치했다. 3년을 넘게 끌어왔다. 안하무인의 막무가내 행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는 실속파 상인들을 만나 뜻밖의 저항에 덜미가 잡혔다. 대구시는 똑똑한 시민 덕에 큰 코를 다쳤다. 문희갑의 대구시가 자랑으로 내세우던 중앙지하상가 재개발사업, 중앙초등학교 공원화사업은 부실한 지하와 지상의 표상으로, 대구시 빌어먹을 행정의 전시공간이 되었다. 2.28 정신도 불법특혜사업으로 마구 훼손해놓았으니 지하의 청년투혼들이 얼마나 발끈했겠는가. 나는 대구지하철 참사의 주요인을 무성의, 무소신, 무지, 무리한 시정이 낳은 참상이라고 생각한다. 행정하는 사람들, 공익인간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할지도 모르나, 단순화재가 대형참사로 확대된 원인을 행정부실에서 찾지 않으면 사후대책이 안 선다. 정부와 대구시는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고 천재지변쪽에 떠넘기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웃나라 보기 민망해진다.    

 "일본은 지난 1968년 지하철 히비야(日比谷)선에서 일어난 차량 화재사고를 계기로 지하철 안전대책 마련에 착수, 그 이후로 35년 동안 일본에서는 지하철 차량의 화재사고가 없었다. 일본이 지하철 차량화재를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은 차량 및 차량 내부의 재질을 불에 연소되지 않는 소재로 전면 교체했기 때문(연합뉴스 2월18일치)"이라는 기사도 나의 이런 생각을 굳혔다. 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 뒤, 8년 가깝게 사후대책을 수립해왔는데, 설상가상 더 큰 악재로 나타날 줄이야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허풍당당한 도시엔 재앙도 많다.  

반생명의 지하공간- 지하지리정보체계에 무능한 소방행정 정비해야

서울시 도시철도공사의 『2003년도 종합안전 방재관리 시행계획』에 나와 있는 화재대피 요령을 보면, 대구지하철 참사 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내용이 눈에 띄어 한탄스럽다.  

  "통로 유도등 및 피난구 유도등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 대피한다. 부상자 발생시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응급조치를 행한 후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한다."

▲대구참사당시 모습    
단순화재가 대형참사로 귀결된 이유는 지하화재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한 여러 사정 때문이었다. 중앙로역은 설계 때부터 졸속이었다. 지하철공사측의 오판은 대형참사로 가는 도화선이었다. 전동차 내장재는 불쏘시개였다. 열려야 할 전동차문은 닫혀 있었고, 갇힌 승객들은 숨막혀 죽었다. 비트의 속도로 번지는 불길은 온몸을 태우고 말았다. 지옥의 한 모습이었다. 2003년 2월부터 대구는 지옥에서 한 철을 보냈다. 생지옥의 모습이었다.  

소방관들의 구조활동은 위험현장을 구조하기에는 감당불가였다. 소방서는 사고 15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관들은 사활을 건 구조활동을 벌였지만, 화재는 1시38분쯤 자연진화되었다. 지하지형을 잘 몰랐던 소방당국은 구조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그 자초지종은 소방당국이 더 잘 알 것이다.   

중앙로역 옆에서 영업중인 프리몰은 임대기간이 만료된 중앙지하상가1·2지구를 재개발해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지하상가와 지하철 타는 곳이 만나는 지점에 승객도 모르는 방화셔터가 설치되었다. 피난구, 유도등과 화살표 방향을 따라 갔다면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사고 당시 1080호 차량에서 탈출한 안세훈씨(21)는“지하 3층 승강장에서 지하 2층 개찰구를 거쳐 밖으로 나오는 계단이 좁아 승객의 대피가 늦었다”고 말했다. 긴급구조에 나섰던 대구 중부소방서의 한 119구조대원 역시 “지하가 깊고 연기가 잘 빠지지 않은데다 밖으로 통하는 출입구까지 좁아 구조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경향 2003.02.23치)

탈출구를 봉쇄하는 전국의 방화셔터는 당장 철거해야 한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가르쳐준 몇 안되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일단유사시 참사의 확대로 연결되는 방화셔터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라는 것이었다. 방화셔터가 아닌 다른 설비시설로도 화재확산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 국회는 건축법과 소방법을 개정할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샌드위치 판넬을 다중이용시설에 확대적용하려고 노력중이란다. 이게 확 싸질러버려야 할 개판국회의 진상이다.

또한 "사태가 이렇게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도록 희생자를 많이 낸 이유로, 돈벌이 욕심에 119보다 신속하게 출동한 개인 구급차들이 응급환자들을 아주 먼 곳까지 후송해간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호흡이 급박한 환자들을 몇 십 킬로 밖까지 실어나른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의료사고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고로 조광병원, 배성병원은 그런 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환자의 목숨과 병원 이름을 맞바꾼 것은 아닐까? 대구시 보건책임자 또한 문책 대상이 아닐 수없다. 여기서 우리는 멀리 있는 병원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환자가 돈으로 보여도 유분수지, 죽기 일보 직전의 중환자를 태우고 죽음의 질주를 했을 응급차 기사들은 왜 그 먼 곳까지 환자를 모시고 갔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서태영, 하니리포터 2.26치)"

대중교통문제는 여성문제,
여성운동이 대중교통문제에 관심가지게 되기를
  

이번 지하철참사의 희생자 가운데 7할이 여성이었다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정확하게 126명으로 68%였다. 지하와 지상의 정거장 앞에서,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이다. 기다리는 여심은 괴롭다. "말발 세진 여성단체에게 부탁을 드린다. 전진하는 여성을 위해 대중교통 정책을 여성정책에 포함시켜 달라. 교통정책하는 사람들이 시장원리에 내맡긴 대중교통은 공공원리의 여성부에서 맡는 게 좋겠다. 대중교통정책을 여성부에 맡겨라.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겠나." (서태영, 하니리포터 2002. 8.27치)

여성의 몸으로 인류를 돌보는 여성운동은 교통문제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재차 실감했다. 지하철은 반생명 반여성의 공간이다. 갈 길 바쁜 여성운동이 꼭 눈을 돌려야 할 곳이 대중교통 분야라는 것이 못난 남자의 생각이다. 남정네들이 가꾸지 못한 지상과 지하의 대중교통 공간이 위대한 여성의 정성으로 보살피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남자들의 관심 또한 여성의 몸을 벗어나 여성의 주위 생활환경까지 아울러야 한다. 

서울사람은 청와대에 대구가 지하의 수렁에서 건져지기를 상소했다. "대구참사가 무리 없이 해결되어 대구시민들이 우울함에서 벗어나 활기찬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전국민이 '땅속 문제'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도록 '땅위 문제'들이 정의와 상식의 관점에서 해결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 (최민희,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에게」,오마이뉴스 2.22치)  

어디에 묻혀도 대구만 못하랴!

▲  지하철 화재사고는 전대미문의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위기관리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런데 희생자대책위와 대구지하철참사 시민사회단체대책위는 노무현대통령은 봐주고, 조해녕시장 성토에만 화력을 집중했다. 통큰 단결력의 대구가 아쉬웠다. 지하철 화재사고는 전대미문의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위기관리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대구시는 불똥이 튈까봐 사고 덮으려 환장했고, 시민단체는 대구시만 압박하면서 정작 중요한 '안전한 지하철만들기'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무조정실은 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운송 결손금 보전요구에 대해 사실상 불가방침을 밝혔다. 중앙정부는 대구시정의 난맥상을 악용해 대구시민을 물먹이고 있다. "고베 시민들은 지진 이후 `아이 러브 고베' 운동을 벌여 지역사회 결속을 다졌다고 했다. 그 덕분에 150만이 하나 돼 3년여만에 복구에 성공,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모시켜 놨다." (김진걸, 매일신문7월7일치)는 얘기는 그저 부러워하고 있어야 할 먼 나라 일이어야 하는가. 시가 옳았네, 시민단체가 옳았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무익해졌지만, 지방자치시대에 시정과 시민단체가 갈등관계에 빠지면 쪽박찬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총은 얻은 것이라도 있었다지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손실이 컸다. 한 시민운동가는 조해녕 시장을 대신해서 퇴진했다! 대구시민운동의 의문사라고도 한다! 연대활동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무엇보다 단체간 연대활동이 원활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큰 상처로 남았다. 잘 싸우고도 그 결과가 초라한 시민운동은 권장할 일만은 아니다. 졸지에 치러진 합동영결식은 보기에도 안 좋았고, 말 많은 뒤끝을 남겼다.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는 나의 교만은 좀처럼 숙지지 않는다.

할배할매의 대구정신으로 뭉쳐야

미래가 불안으로 다가올 때는 과거가 힘이 되어준다. 사실 우리는 대구의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학습하지 않았다. 그렇다. "과거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이며, 해석이며, 상징이다. (도올 김용옥)" 자랑스런 기록도 파묻고 사는 것이 못난 우리 현실 아닌가. 우리 도시의 역사가 어디 있는가. 박제된 문화로는 어림도 없다. 부끄러운 억설로 전설을 꿰맞추려는 억지로는 한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파산당한다. 3공부터 6공까지 군림하던 과거는 사라졌고 현실은 갑갑하다. 성현들의 흔적은 역력한데 찾을 길 없다. 다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중국의 노신 가라사대,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한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고 했다. 도시 또한 유기체나 마찬가지다. 이미 행세를 해본 대구라서 혁신을 잊고 사는가.

같은 공간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과거는 미래와 끈끈한 관계를 이룬다. 대구는 과거가 온전하게 전승되지 않아서 오늘의 골병을 초래했다. 대구의 연혁만 보아도 엉망진창이다. 멍청한 대구시사 편찬자는 부끄럽게도,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은 이후 미군정하의 대구는 불안한 사회상 속에 좌우익의 대립이 심각하였으며 1946년 10월1일에는 좌익의 선동에 의해 이른바 10.1사건이 발생하였다"고 조상의 의로운 행적에 못질을 해놓았다. 대구의 현대사를 이렇게 떡칠한 윤똑똑이들은 어느 누구의 아들 놈이란 말인가. 우익의 선동에 의해 발생한 폭동이면 괜찮고 좌익이 사주한 폭동은 안된다는 언어도단이 대구정신을 가다듬는 위치에 있어서야 뭔 미래가 열리겠는가.

그러므로 개혁을 반기라. 그러나 그 이상으로 사악한 개혁, 배냇병신 같은 개혁을 혐오하라. 감동도 모르고 날치는 옛스런 무리가 오늘 대구의 미래를 열어주진 않는다. 대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곧 미래를 여는 길이다. 권력 주위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대구를 어떻게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들은 유감스럽게도 대구를 잘 모른다. 깡통들이다. 조금 나은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대구가 어디 어설프게 개혁의 이름으로 제 얼굴에 침이나 뱉고 다니는 작자들이 날친다고 달라질 도시였던가.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없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노신)

아비의 대구로 가지말고 할배할매의 대구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대구는 희망가보다는 옛노래가 어울린다. 하늘나라에서 대구를 내려다보면 아마 거대한 봉분지처럼 보일 것이다. 죽음 뒤에 부활 있다. 죽음을 넘어 살아오는 생명의 땅으로 가라한다. 오늘 우리 대구가 얼어붙은 동토의 땅으로 울먹이고 있더라도 대구는 유유히 미래로 흐른다. 자신의 삶이 곧 대안인 당신들과 함께 말이다. 불탄 도시 대구에 계속해서 물을 끼얹고 싶은 사람 중의 너와 나는 오랑캐처럼 울부짖어야 한다. 그래야 잠자는 하늘님 대구가 깨어난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깨어나요! 그 지극정성으로, 대구를 뜨는 것이 곧 살길이 되는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을 차근차근 확 싸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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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8/01 [10: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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