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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들어가는 게 어딨어! 5.18이 대통령 것이냐?
국가행사는 국가의 것으로, 민중행사는 민중의 것으로!
 
서태영   기사입력  2003/06/03 [18:16]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안도현 시인의 짧은 시 <인생>에 나온다.

금남로, 해방광주 체험하기 행사  © DG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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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들어가는 게 어딨어!  5.18이 대통령 것이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 " © DGBNEWS.COM
"행사는 언제 끝나나요?"  © DGBNEWS.COM
"역사는 망각없는 민중의 기억이다!" © DGBNEWS.COM
밤을 피해 우리는 빛고을로 향했다. 살인마라고 낙인찍혀 있는 그 사람, 대본인-전두환-이 깔아준 88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아무리 역사의식이 없다한들, 각하의 고향 행차 길을 고마워할 순 없었다. 광주로 가는 길은 전두환의 고향가는 길과 중첩되었다. 그 길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제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김남주)"하고 총질한 만행을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남도로 향하는 그 빠르게 깔린 길은 부조리하게 나 있었다. 각하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어느눈치 빠른 관료의 아첨만으로도 그 길은 부리나케 건설될 수 있었다.

위험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아스팔트급 88고속도로는 낮에도 전조등에 불을 켜고 다녀야 안전해진단다. 고속도로본부 권유사항치고는 궁색해 보인다. 80년 11.3 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발표(대구-광주간 : 88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81년 10.26 옥포-담양간 착공하여, 84년 6.27 옥포-담양간 88올림픽 고속도로 개통 (175.3km).

전국 고속도로 가운데 사고율이 가장 높은 88고속도로는 졸속으로 설계되어 위험하게 시공되었다. 나는 그 길의 시작과 끝을 그렇게 알고 있다. 이 길을 통해 쌓여지는 영호남교류는 아직은 부실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는 안다, 이 길을, 이 길의 길이와 길이를 이 길의 역사를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에서 어디쯤 가면 비탈로 바위산이 있다. 이 길 어디쯤 가면 가시로 사나운 총칼이 있다.(김남주,『길』)"

사는게 외롭고 쓸쓸해지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로 향한다. 역사와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88고속도로를 탄다. 지하철을 타고 갈 수는 없다! 나아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을 따라 나섰다.

"비분강개도 좀 하고 에이 더럽다 이놈의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 이대로 살다가는 어디 한 사람인들 성하게 살아남겠나!(김남주, 『역사의 길』)"싶어 길나서는 사람들 편에 동행했다.  광주는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80년, 그 지독한 슬픔에 굴하지 않고 광주는 죽음과 시대의 어둠을 넘어 누명을 털고 일어서 있었다. 상처받은 세월 딛고 2003년 이월에 황당하게 증폭된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구김살 없는 햇빛이 5월의 도시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능지처참의 학살로 다가온 518. 망월동 순례는 아픔 많은 내나라내겨레의 민중이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약한 자들은 광주로 뭉친다. 5월은 그 절정이다. 그 연대의 힘으로 빛고을은 세계민중의 도시로 간다.

  주말만 되면 비내리고 우울한 대구에 비해 광주의 5월은 눈부셨다. 5월 광주는 만인의 눈으로 들어치는 인간의 봄으로 만발했다. 5월의 아이들이 자라나 금남로로 몰려들었다. 그 아이들이 주인으로 나선 광주는 무척 젊어보였다. 축제의 주인공을 청년색으로 치장한 어른들의 지혜는 티나지 않게 돋보였다. 5ㆍ18은 남녀노소가 어울리는 대동의 한마당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따로국밥처럼 따로따로 논다. 나는 금남로에서 코드가 한참 맞지 않을 어르신들이 젊은이들 놀이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함께 하는 장관을 보면서 유별난 내리사랑을 느꼈다. 무등산은 5ㆍ18 전야를 어둡잖게 조명해 주었다. 금남로는 어르신 큰 사랑에 젊음을 유지해 온 것이었다. 사랑이여, 금남로 사랑이여!  5월의 금남로가 보여주는 거리문화는 6월 광화문의 광장문화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지역과 국가, 인종, 차이의 벽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천갈래 만갈래 사랑으로 빛났다.

밤의 금남로는 '학살의 원격 조정자들'을 일제히 성토하고 있었다. 미국 가신 대통령 아부발언에 배알없는 민족말고는 심기가 불편했으리라. 5ㆍ18 전야는 노무현대통령의 방미 굴외교에 대한 비판과 민족공조 파괴에 대한 우려감으로 깊어갔다.
  
제4회 광주인권상 수상자 스리랑카 실종자기념회
단데니야 쟈얀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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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외국인. 그들은 보훈처 직원에게 사정사정
한  끝에 행사구경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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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가장 완강한 전쟁반대 근본주의자로 성장하다
  여성은 반전을 잉태했도다! © DGBNEWS.COM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
대통령 참석행사라도 참배객들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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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하지 않고 용미하기 어렵다지만, 한사코 이땅에 반미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거짓위선은 민족이익에 반한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반미를 탓하지 말아라. 학살의 배후로 기록되어 있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대통령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미국 범죄 피해자들이 눈 부릅뜨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반일은 당연한 것이고 반미는 나쁘다는 억설은 통하지 않는다. 반미, 그것은 어쩔 도리 없이 살아있는 민족서정이다.

"입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뒷점에서는 원격조종의 끄나풀로 꼭둑각시를 앞장세워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너희들 표현으로는 전략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보아다오, 너희들과 너희들 똘만이들이 저질러 놓은 범죄를.(김남주, 『학살1』)"

초행 길의 우리는 망월동을 찾아가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아침도 굶고 망월동으로 향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짜고짜 못들어가게 하는 경찰경호대의 처지는 크게 달랐다. 방미외교를 마친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설은 있었지만 긴가민가했다. 우리는5ㆍ18이 국가 공식행사로 지정되었는지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혼선은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실랑이 끝에 경찰 저지선을 넘어 들어가니, 518 국립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동작동을 닮은 망월동이었다. 망월동은 국가의 것이었다. 새삼 확인한 사실이었지만, 보수주의자 최병렬의원이 국가행사라고 담 넘어갈 정도로 격상된 5ㆍ18은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머리 숙이는 참배날이었다.

한총련은 민중운동의 미운 오리새끼로 커있었다. 한총련 학생들은 대통령의 5ㆍ18묘지 참배에 차질을 빚게 했다. 머리로 투쟁해야 운동성이 산다. 학생들이 힘자랑 몸자랑을 하는 것은 지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처사였다. 깽판시위로 대미굴욕외교가 바로 잡히나? 한총련이 대통령 행차 길을 방해하는 바람에, 대통령 지나가는 길에 "대통령 귀는 당나귀"라고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꿈은 무산되었다. 과격시위가 나쁜 이유는 자신에게 향하는 타인의 시선을 불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론은 곱지 않다. 대학생이나 국민이나 한총련에게 박수보낼 때보다 손가락질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한총련은 합법성을 인정받기 위해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꼬리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되, 또 다른 한편에서 민중의 투쟁에 힘을 빼는 반민중집단으로 일반의 인식이 굳어져 가고 있는 정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대통령의 뒷문 입장은 처음이 아니었다. 참모들이 대통령 보필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통에 국민참여정부의 대통령이 뒷문 출입 전문 대통령 소리를 듣는다. 당선자 시절 국민여론을 청취하기 위해 '대구. 경북지방분권 토론회'에 참석하러 온 대통령은 대구중앙지하상가 불법특혜개발에 항의하는 삭발시위를 피해 정문 입장을 하지 않고 뒷문으로 들어갔다. 5ㆍ18이라는 큰 뉴스에 비해 왜소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당시, 대구전시컨벤션센터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대통령을 뒷문으로 빼돌렸다고 경찰과 경호팀을 성토했다.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돌발사태였기 때문에 경호상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은 '오랄 헤저드'-모랄해저드(moral hazard)를 빗대어 등장한신조어. “그래 맞데이 ‘오랄해저드’.! ” “그기 먼 데?”  “아, 말로 망한다 이 말이제 머꼬? 니 말조심해라꼬 내가 적어 왔데이.” [주다운,  소설- 그 바닷가 헛간은 따스했다] 자갈치난장 ②, 파이낸셜뉴스-감이다. 권위주의 해체와 뒷문 입장이 무슨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관련기사] 당선자님, 뒷문으로 가시다니요!

5.18 국립묘지 앞은 참배객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문제는 누구는 들여보내고 누구는 못들어가게 하는데서 촉발되었다. 한총련이 똥탕을 튀긴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나는 대통령 뒷문입장의 책임을 경찰이나 경호팀에게만 떠넘긴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5.18 기념재단의 18일 행사계획표에는 5·18민중항쟁 제23주년 기념식이 국가보훈처행사로 안내되어 있다. 5.18 국립묘지 앞은 한총련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난장판이었다. 행사준비 소홀로 혼란이 더해졌다. 국가보훈처는 11시에 시작되는 5·18민중항쟁 제23주년 기념식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는 것을 널리 알리지 못했다. 직무이행을 잘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고도 국가보훈처는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았다. 이렇게 원인 진단을 얼렁뚱땅하고 넘어가면 아마 내년에도 비슷한 상황은 재연될 것이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평소처럼 준비한 국가보훈처는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참배객들은 참여정부가 5ㆍ18 국립묘지 참배를 못하게 한다고 역정을 냈다. 대통령이 참배객들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한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참배하러 왔는데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못들어가게 막으면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참배 순서를 새롭게 정할 필요가 있다. 5월 18일 일반 참배객들의 참배는 기념식 시작 30분이나 1시간 전부터 기념식이 끝나는 12시 이후부터 가능하다고 안내문을 내걸어야 불편을 덜 수 있을 것이다 . 대통령 경호상 이유로 기념식장에 못들어가게 한다고 난동부릴 국민은 없다. 대통령이 기분에 따라 참석과 불참을 결정하다 보면 앞으로도 예측불가능한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5·18민중항쟁 기념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을 관례화할 필요가 있다. 두 시간여 참배시간을 저지당하고 느낀 것은 5.18 국립묘지에서 거행하는 기념식은 국가행사라는 점이었다. 국가가 주는 불편을 참을 수는 있다. 다만 불편을 감수하게 만들지 못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불편한 마음 털고 전인권, 안치환이 나오는 인권평화음악회를 놓칠 수 없어 동행한 친구와 조선대학교로 향했다.  대구가 고향인 정호승 시인의 시 눈물꽃을 혼신을 다해 열창한 김원중은 속으로 속으로만 울게 했다. 총맞아 죽은 사람들의 도시엔 눈물꽃 피고 지고..... 문화는 인간이 피워낸 꽃. 남쪽 나라 광주는 세계인권평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죽음을 넘어선 도시의 부활영광이란 말인가. 5.18의 전국화에 대한 염원은 세계화로부터 밝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첫 술에 배부르랴. 인권평화음악회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대동놀이가 될 수 있도록 전야제 행사로 옮겼으면 좋았다. 우리는 광주의 제삿날에 5.18의 세계화를 손뼉치고 고함지르며 축원했다. 환희였다. 다시, 봄이 가지 않아도 울고 싶을 땐 광주로 달려 가리라.

밤의 88고속도로엔 오가는 차들이 드물었다. 밤에 88고속도로를 타보지 않은 사람들하고는 연대와 전진을 말하지 말라. 민족을 논하지 말지어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세계평화의 십자가여!" 광주, 세계평화인권도시는 대한민국이 후원해야 한다.  
 
노사모도 5.18 국립묘지를 들어가지 못하고 갓길에 섰다. © DGBNEWS.COM 내 배를 가로질러 행사장으로 들어가라.  © DGBNEWS.COM
사복경찰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여성의 팔을 잡아 비틀고 있다. "팔목 놓아주세요." © DGBNEWS.COM "왜 그려?" "글쎄, 못 들어간다니까요" 대통령 경호도 이제는 달라져야죠!.  © DGBNEWS.COM
"앉아서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여!" 기다리면서 우리 겨레가 살아간다. © DGBNEWS.COM  학살의 대낮에 금남로 도청 앞에서는 미군범죄 증언대회가 열렸다. © DGBNEWS.COM
인권평화도시로 가는 노래를 부른다. 518은 세계화를 통해 전국화 될 것이다. © DGBNEWS.COM 만인의 머리 위로 펄쩍뛰고 꿈차오르는 내일이 광주가 맞이할 새날이리라. © DG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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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03 [18: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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