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10년후 세계5강] 세계5강을 위한 전제조건들
경제에서는 심리적 변수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다ba.info/css.
 
최용식   기사입력  2002/09/24 [22:33]
* 지금까지는 "세계5강 가능성"을 제1부로서 점검해봤습니다. 이제 제2부 "세계5강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싣겠습니다.

1. 세계5강을 위한 제1전제 : 비관주의 청산

세계5강에 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하나 있다. 아직도 면면히 남아 있는 식민지 근성을 벗어나는 일이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수동적 자세를 던져버려야 한다. 이것들을 버리지 않고는 세계5강은 불가능하다.

우리 경제가 10년 안에 세계5강에 들어가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능동적이고 도전적이며 낙관적인 자세로 무장하더라도, 세계5강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점은, 경제라는 것의 속성이 패배주의와 비관주의 그리고 수동적 자세에 의해서 약화되고 병드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에서는 심리적 변수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다. 모든 경제행위의 결과가 미래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이 얼마나 좋은가는 사서 쓴 다음에나 알 수 있다. 어떤 투자가 이익을 불러올지, 손실을 불러올지도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진 다음에 판명된다.

그래서 경기가 호조를 보일 것 같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면, 실제로 호경기가 나타난다. 극단적으로는 어떤 은행이 망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면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른 은행에까지 전염될 경우에는 금융위기로 발전하여 금융공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비관주의와 패배주의는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간다.

경제에 있어서 심리변수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비관주의와 패배주의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이 앞장서서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진단하고 보도함으로써 이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지난 2000년의 언론보도는 너무 심각했었으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국내 언론은 우리 경제가 내일 곧 무너질 것처럼 1년 내내 보도했었다. 국가부채가 너무 과중하다거나 국부유출이 심각하다거나 또는 제2의 환란이 다시 닥치고 있다는 따위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경제현실은 이런 보도들을 거부했다.

우선 국가부채만 보더라도, 정부는 이미 1999년 연초에 [중장기재정계획]을 확정하여 부채를 관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환란을 겪고도 국가부채가 우리나라처럼 확대되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에서 부채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 언론은 이런 사실들을 은폐했다.

더욱이, 정부가 국가부채의 축소를 위해 중장기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있을 때에는 국내 언론이 한결같이 'IMF의 지나친 긴축정책을 받아들임으로써 실업을 양산하고 흑자기업을 도산시켰다'는 비판을 제기했었다. 다시 말해서, 국가부채를 늘리라고 주장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환란이 극복된 뒤에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그와 정반대의 비판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부유출을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 경제가 적극적인 외자유치정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환란을 이겨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금융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철저하게 외면했다. 오히려 국부유출이라는 비판만 내세웠다. 이 점은 뒤에 자세하게 언급될 것이다.

여기에다, 국내 언론은 각종 위기설과 대란설 혹은 파국설 등을 유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특히, 연초에 7%만 성장해도 성공이라는 연두사설을 내보냈던 어떤 신문이 이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었고, 다른 신문들도 이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2000년 1/4분기에 전기대비 2.3%, 우리에게 익숙한 연률 환산치로는 9.5%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2/4분기에는 위기설과 대란설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기대비 1.9%(연률로는 7.8%)로 약간 낮아졌지만, 3/4분기에는 다시 2.5%로 급상승하면서 연률 10.4%라는 아주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2000년 분기별 전기대비 성장률 추이 (단위 : %)
구 분 1/4 2/4 3/4 4/4 연간성장률
분기성장률 2.3 1.9 2.5 -1.2 9.3
연률 환산 9.5 7.8 10.4 -4.7 9.3
자료 : 한국은행,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 발표(한국은행 인터넷)

심지어 어떤 신문은 7월 4일자에 '하반기 수출 어둡다'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기도 했으나, 수출증가율은 5월에 28.1%, 6월에는 19.0%라는 높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보도가 나간 직후인 7월 수출은 23.0%, 8월 30.1%, 9월에는 26.5% 등, 이례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었다. 어떻게 이런 보도가 함부로 나갈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해외시장은 국내 언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0년 하반기의 수출증가율 추이 (단위 : %)
월별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수출증가율 28.1 19.0 23.0 30.1 26.5 13.4 5.6 0.1
자료 :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2002년 6월호

그러나 그 영향은 결국 나타나고 말았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11월 수출증가율은 5.6%, 12에는 0.1% 등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수출업체들까지 비관적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수출증대에 조심스런 자세로 돌아선 것이 이런 실적을 기록하게 하였다.

이런 비관적 분위기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수출이 감소할 다른 특별한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경제는 경기가 후퇴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2001년 1/4분기까지는 여전히 호조를 지속하고 있었고, 다른 주요 국가들의 경기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2000년이래 미국의 분기별 성장률 추이 (단위 : %)
분기 2000 1/4 2/4 3/4 4/4 2001 1/4 2/4
성장률 4.2 5.2 4.4 2.8 2.5 1.2
자료 : 통계청, 월간 국제통계 2002년 6월호

우리나라 환율도 당시에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추세를 보이다가, 연말에는 오히려 상승세로 돌아선 바 있다. 6월부터 9월까지는 달러 당 1,110원 대를 유지한 뒤, 10월에는 1,120원을 돌파했고, 11월에는 1,150원을, 그리고 12월에는 1,200원을 넘어섰던 것이다.

2000년 하반기의 우리나라 환율 추이 (단위 : 원/달러)
월별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환율 1,120 1,119 1,115 1,115 1,117 1,127 1,151 1,214
자료 :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2002년 6월호

따라서 국내의 비관적 분위기가 수출까지 발목을 잡았고, 이것이 경기추락에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비관적인 사회분위기가 조성되면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는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언론보도는 이처럼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전기대비 성장률이 연속 2분기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에야 비로소 경기후퇴(rece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경기침체(depression)라는 용어는 더욱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 보도로 경제를 침체시키는 넘들은 자극적으로 말해서 모조리 베어버려야 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이나 용어가 국민들의 이목을 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언론은 경제문제 만큼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런 보도가 경제에 얼마나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가를 충분히 인식하고, 언론이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런 사회적 책무를 찾아볼 길이 없다. 2000년 당시의 신문기사 제목 몇개만 보더라도, 국내 언론이 얼마나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았는지, 국내 언론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 경제위기 논란', '대통령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실물경기 급속 둔화, 경제위기 재발 우려', '건설업계 대공황', '지방이 무너진다', '몰락하는 재래상권', '기계 멈춘 공단',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초토화', '경제 하반기 경보', '또 위기국면, 경제가 급하다', '경제 다시 위기인가', '경제한파 떠는 국민들', '제2 외환위기 가능성 있나' 등등이 그것들이다.

우리 경제가 9.3%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을 때에 위와 같은 보도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보도들이 경제지표에 의해서 모두 부정된 뒤에도, 잘못을 시인하거나 반성의 기미조차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경제는 이런 보도에 충실하게 보답했다. 연말에 이르면서 경기가 갑자기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비관적인 분위기가 경제를 지배하자, 소비는 냉각되고 투자는 냉동상태에 빠져들었으며, 이에 따라 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했다.

4/4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1.2%, 연률로는 -4.9%를 기록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경기후퇴는 하마터면 경제공황으로 발전할 뻔하기도 했다. 실물경기가 이처럼 급격히 후퇴하기 시작한 데에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이 폭락함으로써 금융공황을 일으킬 뻔했었다.

주가지수는 2000년 연초에 1,059에서 연말에는 505까지 추락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금융시장은 경색되었고, 금융공황이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무도 몰라봤을 뿐이다. 모르고 지나간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최소한 공포감은 맛보지 않을 수 있었으며, 공포감이 불러오기 마련인 경제적 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르고 지나간 것이 미래를 위해서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고, 그 때에도 행운이 따를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그 위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의 주가폭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날의 하락률은 11.7%에 불과했지만, 이것이 대공황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미국 증시는 1932년까지 계속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1년여 후인 1930년 12월에는 다우지수가 154.5를 기록함으로써, 1929년 최고치인 386.0의 40%에 불과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1931년 8월에는 다시 71.8까지 떨어졌고, 1932년 7월에는 다우지수가 40.6을 기록함으로써 최고수준의 1/10에 불과할 정도로 떨어졌다.

미국 대공황기의 주가지수 추이
주요시기별 1929년 1930.12월 193.12월 1932.7월
다우지수 386.0 154.5 71.8 40.6
자료 : NYSE, www.boraworld.com에서 재인용

미국 주식시장의 위와 같은 추락은 금융시장 전반의 경색현상을 불렀고, 금융기관들의 부실화가 진행되고 신용수렴원리(신용창조의 반대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1930년 12월 11일, Bank of United State in NY의 파산을 시작으로 여러 은행들이 줄을 이어 파산하였고, 예금인출이 정지되는 일이 벌어졌다. 1932년 10월 31일에는 네바다주가 전 은행의 영업을 정지시켰고, 1933년 2월 14일에는 미시건주가 뒤를 따랐으며, 1933년 5월 6일에는 전국적으로 은행영업을 정지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금융공황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에 이런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그것을 근근히 막고 있었지만, 주식시장이 더 이상 하락하면 금융공황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 주가지수는 1929년 10월부터 1930년 12월까지 1년여 사이에 주가지수가 40%로 떨어졌었던데 비해, 우리나라는 2000년 1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불과 1년 사이에 47.7%로 떨어졌었다. 이런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 경제가 2000년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국면에 처했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가 물밀듯이 몰려오면서 금융공황을 막아주었다.

내국인들은 언론의 비관적 보도에 영향을 받아 주식을 내다 팔기에 바빴지만, 외국인들은 줄기차게 사들였다. 2000년 한 해에만 116억 달러 어치나 순매입했다. 우리나라 주가는 물론이고 원화마저 저평가되었다는 인식이 외국인의 대규모 투자를 유인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우리나라는 국제수지 흑자가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하고, 외환보유고도 1천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었는데, 환율은 2천년 연말에 1,260원으로 오히려 상승해 있었다. 그래서 환차익을 노리고 외자가 유입되기도 했다. 사정이야 어떻든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면서, 2001년부터는 주식시장이 안정을 되찾았고, 금융위기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

언론의 비관적 보도는 위와 같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경제문제 있어서는 어느 분야보다 언론의 사회적 책무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도 언론의 비관적 보도가 잠시 멈추었던 2000년 상반기 말경에는 주가지수가 잠시 회복되기도 했었다. 4월말에 725를 기록했던 주가지수가 6월말에는 821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2000년 월별 주가지수 추이
월별 1 2 3 4 5 6 7 8 9 10 11 12
지수 944 828 861 725 732 821 706 689 613 515 509 505
자료 :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2002년 6월호에서 재인용

이전글- 최용식: '한국경제, 10년 후 세계5강'의 의미(1)(2):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의 '일곱손가락의 자화상' 의미는?
이전글- 최용식: '한국경제, 10년 후 세계5강'의 의미(3):설비투자율의 미신과 고부가가치
이전글- 최용식: '한국경제, 10년 후 세계5강'의 의미(4):설비투자는 경기의 선행지수 인가?
이전글- 최용식: '한국경제, 10년 후 세계5강'의 의미(5): '신자유주의'는 악의 화신 인가?
이전글- 최용식: '한국경제, 10년 후 세계5강'의 의미(6)(7): 수출이 국내경기를 주도한다는 미신을 버릴 때도 되었다.

* 필자는 21세기 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소장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9/24 [22:3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