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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상허 이태준' 문학비 세워지다
철원군 대마리에서 '상허 100주년문학제' 열려, 문학비와 흉상 제막도
 
김형효   기사입력  2004/10/20 [19:09]
지난 10월 16일은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상허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상허 선생의 생가 인근 철원군 대마리 마을 회관에 문학비와 흉상이 세워졌다. 100여명의 지역 주민과 200여명의 각 지역 문학인들이 참여한 이날 행사는 각지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식사와 떡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행사가 진행중인 대마리 마을 회관 전경  많은 참석자들로 행사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김형효

분단된 조국 산하 그것도 월북작가라는 처지에 철원지역에서는 환영받지 못해오던 선생의 문학비와 흉상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선생의 삶의 궤적과 분단된 조국의 통한을 대변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동안 민영 선생님의 끈질긴 노력과 (사)민족문학작가회의, 대산문화재단, 철원문학회 등의 협조로 상허선생 탄생 100주년의 기념일에 의미있는 행사를 갖게 된 것이다.


필자는 아침 일찍 일산을 출발해 자유로를 달려 서울 교보문고에서 일행과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스 3대에 분승한 일행과 철원을 향해 달렸다. 버스는 자유로를 달려 파주를 거쳐 철원에 도착했고 필자는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 철원을 향했다. 주말 교통길이 험난했지만 행사시간에 늦지 않았다. 철원 대마리 초입에 월하리에는 민영 선생님을 반기는 현수막이 걸려 있기도 했다. 먼저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눈에 띠었다. 외지에서 온 많은 손님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해 준 것은 물론 부녀회원들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은 손님들의 상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 이날 행사를 사진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상허 이태준 문학비와 흉상     © 김형효
 
▲상허 문학비를 세우는 일에 동분서주 하셨던 민영 선생님께서 인사 말씀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소회를 털어놓으셨다. 백마고지를 바라보며 하신 인사 말씀 중에는 어서 통일세상이 와서 모두 손잡고 대동세상을 맞이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말씀도 주셨다.     © 김형효
 
▲대마리 마을주변 관광 안내도다. 앞으로는 군사안보 중심의 관광 안내 일색에서 상허 이태준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대마리 마을 회관 마당도 자랑삼아 등장하리라.     © 김형효
 
▲민영 선생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감회가 서려 있었다. 진정 미래를 생각하시는 어른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했다. 다른 참석자의 인사 말씀을 경청하고 계시는 민영 선생님.     © 김형효

 
 
 
 
 
 
 
 
 
 
 
 
 
 
 
 
 
 
 
 
 
▲주요 참석인사들에 의해 문학비가 등장하기 전 모습! 좌측 망토를 쓴 분이 문학비를 제작한 청암미술사 대표 장기만 선생이며 그 옆은 소설가 전상국. 시인 신경림, 시인 강형철, 시인 민영 선생님이며 오른쪽에는 대산문화재단 관계자, 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님, 구중서 평론가이다.      ©김형효
▲흉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민영 선생님이 짧은 소개를 하셨다. 사진 맨 오른쪽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제작비 기부자와 그 옆에 안경낀이가 이태준 선생의 유일한 천척인 외조카 서울대 김명렬 교수.    ©김형효
▲흉상 앞에서 백마고지를 바라보고 웃고 섰는 김준태 시인, 흉상 건립기금 기부자, 민영 선생님, 왼쪽은 광주에서 오신 소설가 리명한 선생님.     © 김형효
▲서울대 김명렬 교수는 상허 선생의 유일한 친척이다. 그 또한 여러가지 소회를 전하면서 감사와 고마움에 인사를 전했다.     © 김형효
▲마을 지도자가 이장을 대신해서 부지를 제공하고 그동안의 협조에 감사하는 뜻을 감사패에 담아 전하고 있다. 전달자는 민영 선생님.     © 김형효
▲\"내 고향은 철원도 아니요. .......발을 올려 딛는 때부터 내 고향이라\"는 민영 선생님의 글, 참으로 의미심장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발을 올려 딛는 때부터 고향이라!  비문의 뒷모습이다.   © 김형효
▲일년이란 기간동안 민영 선생님을 도와가며 흉상 건립과 비를 세우는데 기여한 주요인사를 소개하는 민영 선생님. 자유로에서부터 바쁜 철원 길을 수시로 달렸던 김포 검단중학교 이승호 시인은 그 틈에도 바쁜 일상을 놓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 김형효
▲백마고지 앞 대마리에서 제단을 차리고 진혼굿을 울리고 있다. 이는 마치 민족의 제단을 쌓고 우리 민족의 진혼굿을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백마고지를 서성거리며 날개를 파닥이는 새를 보는 감회도 평소와 달랐다. 제단의 풍요로움처럼 우리 민족에게도 풍요가 찾아들기를..., 상허 선생은 빌고 있으리라.     © 김형효
▲부릅뜬 눈이 인상적이다. 상허 선생의 흉상이다.멋진 사나이가 백마고지 넘어 우리가 가야할 또 다른 조국 북녘의 하늘을 우러르며 민족 통일을 기원하고 있는 듯하다. 애상에 젖은 듯한 얼굴이다.     © 김형효
▲흉상을 만든 조각가 최옥영 선생과 건립기금 기부자가 함께 필자의 요청에 의해 자세를 잡았다.     © 김형효
▲을씨년스런 느낌을 주는 백마고지와 그 넘어에 어스름히 보이는 북녘 산, 새들은 자유로히 오가며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어서 저 스모그와 같은 희뿌연 하늘을 걷어내고 청정하늘아래 만세소리 넘치는 평화의 노래를 합창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 김형효
▲대마리 마을 회관 전경이다.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 회관 두루미 평화관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하다.   © 김형효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한 부녀회원이 흰 가래떡을 참석자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누어주고 있다. 백마고지에서는 또 다른 마을사람들이 위령제에 참석했다고 하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서 멈추고 대동굿판이 열리길 바란다.     © 김형효
▲상허 선생의 이력이 적혀있는 흉상 뒷모습이다.     © 김형효
▲가운데 흰수염이 가냘픈 몸을 더욱 애처롭게 하는 강형철 선생님. 선생은 얼마전 문우인 시인 박봉우 선생의 문학비 건립을 추진했던 분이다. 동인지 문학운동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영도 동인이시다. 좌로 광주에서 오신 나종영 시인, 오른쪽은 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님이시다.     © 김형효
▲전주 대사습 장원을 차지한 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민영 시인과 전라도 해남출신인 시인 김준태 선생의 우리가락 좋을시고! 대동세상을 맞이할 염원을 가득 담은 듯하다.     © 김형효
▲시인 강형철 선생과 자세를 잡은 필자! 박봉우 선생의 시비는 자유로 끝. 임진각 역에 세워졌다. 필자는 박봉우 선생 연구로 대학논문을 썼다. 강형철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역사를 만나는 영광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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