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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광장에서 울려 퍼진 '친일/항일'의 노래
광복군창설일에 평화재향군인회 친일음악회 열어
 
김영조   기사입력  2010/09/19 [16:29]
 
▲ 평화재향군인회가 주관하여 열린 친일&항일음악회 모습     © 김영조

“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일장기(日章旗)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事然)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ㅅ님의 병정(兵丁) 되기 소원입니다 ”

위 노래는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의 <혈서지원>이다. 일제강점기 광복군이 만주벌판에서 피눈물 흘리며 항일투쟁을 하던 때 국내에서는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부른 사람들이 있었다. 또 일부는 이렇게 분명한 색깔로 천황을 위해 혈서를 쓰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제와 관련된 노래거나 우리의 음계가 아닌 일본의 전통 5음계 (요나누키음계)로 대중가요를 만들고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만들어 보급하는 바람에 지금도 버젓이 불리는 노래들이 많이 있다.

학교 종이 땡땡땡, 퐁당퐁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같은 동요와 눈물 젖은 두만강, 대전부루스 등 수많은 대중가요가 일본의 대표적인 음계인 5음계 곧 “요나누키음계(ヨナ抜き音階)”로 작곡된 노래라고 중앙대학교 노동은 교수는 밝혔다. “요나누키음계”란 서양의 ‘도레미파솔라시도’ 7음계에서 네 번째 음인 ‘파’와 일곱 번째인 ‘시’가 빠진 5음계를 말한다
 

한국음악은 원래 “황종(黃鐘:C)-대려(大呂:C#)-태주(太簇:D)-협종(夾鐘:D#)-고선(姑洗:E)-중려(仲呂:F)-유빈(賓:F#)-임종(林鐘:G)-이칙(夷則:G#)-남려(南呂:A)-무역(無射:A#)-응종(應鐘:B)” 등 12음계가 중심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발달한 음계는 버리고 서양의 7음계보다 더 적은 일본의 5음계를 들여다 마치 우리 전통의 음악인 것처럼 쓰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이러한 일본음악의 특색이 우리 음악에 끼어들어 있음을 널리 알리려는 음악회가 지난 9월 17일 밤 7시에 서울 보신각 앞 광장에서 있었다. 평화재향군인회(상임대표 표명렬)가 주관하고, 한국광복군창립70주년 친일&항일 시민음악회추진위원회 주최로 연 “친일&항일 시민음악회”가 그것이다. 이날 음악회는 동시에 ‘국군의 날 개정과 한국광복군청사 복원 촉구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행사이기도 했다.
 

▲ 인사말을 하는 평화재향군인회 표명렬 상임대표(왼쪽), 친일음악을 설명하고, 친일음악회의 의의를 말하는 정찬경 단장     © 김영조

음악회를 시작하면서 표명렬 상임대표는 “그간 우리는 친일노래를 아무 생각 없이 불러왔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 할지라도 그것이 만일 천황을 위한 노래였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즐겨 부르던 노래라 할지라도 알고나 불러야 한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무엇이 친일노래이고, 무엇이 항일노래였는지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국군의 날을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에 의미를 부여하는 10월 1일은 잘못되었다. 이제 국군의 날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은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립기념일(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라는 인사말을 했다.

음악회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이 중심이 된 “꿈꾸는 예술(단장 정찬경)”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열었다. 한유진 씨의 사회, 이유정 씨의 피아노에 정찬경 단장의 해설로 바리톤 정찬경, 테너 김백호, 메조소프라노 신은정, 소프라노 이환희, 소프라노 임현진 씨 등이 함께했다.

행사는 맨 먼저 일제강점기의 친일 노래 가운데 홍난파의 “희망의 아츰(아침)”, 박시춘의 “혈서지원”, 임동혁의 “애국일의 노래”를 불렀다. 정 단장은 해설을 통해 “우리는 홍난파 선생님 등이 작곡한 아름답지만 친일을 하려고 만들었던 노래를 아무런 생각 없이 불러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노래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성악가들의 열창에 큰 손뼉으로 화답하는 청중들     © 김영조

이어서 음악활동을 멈추고 고향에 은거했던 채동선의 “고향”, 의열단원이 부른 “추도가”, 광주를 떠나 중국에 망명한 정율성의 “홍안령에 눈꽃 날리네” 등의 항일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동요 중 홍난파의 “퐁당퐁당”, 김메리의 “학교종”과 홍난파의 “고향의 봄”, 현제명의 “고향생각” 등을 불렀는데 특히 “퐁당퐁당”과 “학교종” 등은 우리와 다른 일본음계 “요나누키음계”로 이루어졌으며,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하는 2박자 계통이라고 정 단장은 해설을 통해 강조했다. 

계속해서 성악가들이 번갈아 나와 친일음악가가 작곡한 코스모스를 노래함(이홍렬),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선구자(조두남)를 불렀고, 일제강점기 유명했던 대중음악인 사의 찬미(윤심덕), 타향살이(손목인), 애수의 소야곡(박시춘), 감격시대(박시춘), 빈대떡 신사(한복남), 바다의 교향시(손목인) 등을 불렀으며, 김연준의 “비가” 등 새 시대 새가 곡도 불렀다. 

미지막으로 “꿈꾸는 예술” 단원들과 모두 일어선 청중들은 하나가 되어 “최후의 결전”, “독립군가”, 압록강 행진곡(한유한 작곡, 박영만 작사) 등 다시 부르는 독립군가를 불렀다. 이때 청중들은 감격에 겨워서인지 일부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광복군 만세!” 등 만세삼창으로 음악회를 끝낸 청중들은 좀처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 친일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바리톤 정찬경 외 성악가 등     © 김영조

▲ 옆에서 지켜보는 보신각종은 친일음악을 어서 털어내기를 바라는 듯하다.     © 김영조
     
▲ 친일음악회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는 청중들     © 김영조

행사가 끝난 뒤 청중들은 입을 모아 이런 노래들이 친일을 위한 것이거나, 친일음악가가 작곡한 것인 줄은 몰랐다며,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일지라도 ‘만든 의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날 자리를 함께한 금호동에서 온 교사 신영식(47) 씨는 “일본 원폭의 도시 나가사키 조선인희생자탑에서 열린 추모식 때 ‘고향의 봄’을 부르며 함께 눈물을 흘리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즐겨 부르는 주옥같은 노래들 심지어는 퐁당퐁당 같은 티 없는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를 작곡, 작사한 분들이 ‘천황 만세!’를 부르던 친일 음악가들이었다는 데 씁쓸함을 지울 길 없다. 늦었지만 좀 더 이런 행사를 확대하여 ‘친일음악의 알권리’를 제공해주었으면 한다.”라고 친일음악회의 의미를 짚었다.

이날 음악회를 이끈 정찬경 단장(광주대학교 교수, 53)은 글쓴이와 간단한 대담을 통해 음악을 시민과 친하도록 하려고 1995년부터 매달 야외에서 “광장음악회”를 열어왔다며, 올해는 국치 100돌을 맞아 음악으로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좋을 듯해 지난 8월 광주에서 처음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전국 각지에서 친일음악회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비명을 지를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정식무대도 아니고 조명도 음향도 좋지 않은 가운데서 기꺼이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마련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철학’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훌륭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친일음악회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는 청중들     © 김영조

국치 100돌을 맞이하도록 그간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지난 8월 29일 국치 현장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남산 통감관저 터에 표석을 세우고 싶다는 시민단체의 요청에 서울시는 ‘아름답지 않은 역사의 흔적’은 남길 수 없다며 ‘표석 설치 불가방침’을 내릴 정도로 우리의 의식은 나라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에 박제된 채 고정되어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나라가 해방된 지 65해가 지난 지금! 많은 세월이 흘러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우리가 즐기던 노래 한가락이라도 분명한 출처를 찾아 부르려고 하는 자세를 높이 사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 서울 한복판 종각 앞에서 열린 친일/항일 시민음악회는 그래서 더욱 뜻 깊은 음악회였다. 아울러 조국광복을 위해 만주벌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광복군창설일인 9월 17일을 기억하자는 평화재향군인회의 외침에 음학회장을 찾은 시민들도 모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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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9 [16: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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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몰랏네 2010/09/27 [15:53] 수정 | 삭제
  • 흔이 부르는 노래가 그런 줄도 모르고 술먹으면서 흥이나서 흥얼대는 나의
    전력이 부꾸럽기만하다.
    이제 부턴 노래방을 아예 안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