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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힐러리, 부시를 부탁해!
힐러리 출마 가능성 높아, 부시의 낙선은 전세계의 행복
 
홍성관   기사입력  2003/09/26 [12:59]

명색이 경제부 기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다른 분야에 대한 글을 쓰기란 영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경제'에 관한 내공도 얕은 수준이면서 다른 그릇에까지 손을 뻗쳤다가 죽쓰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을 보고,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있다보면, 도저히 좀이 쑤셔서 가만 있을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이라크 추가 파병' 역시 그런 경우다.

사실 국론분열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격렬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라크 추가 파병'은 경제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여서는 안되는 사안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9.11 테러의 배후를 응징하기 위해'라는 구호 따위가 석유 이권이라는 경제적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포장이었다는 사실은  명명백백해졌다. 그러나 자국의 경제 이윤을 위한 전쟁(그보다는 부시 자신을 강력히 지지해주고, 또 자신의 재산이 투자된 석유관련 업체들의 이윤을 위한 전쟁)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는가 하는 점도 자명해졌다. 이라크내의 미국 방송사에 대한 테러 행위며, 미군에 대해 끊이지 않는 테러 행위들은 이라크 민중을 위해 들어간다던 부시의 입이 얼마나 냄새나는 시궁창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기사글에 이런 저급한 표현을 쓰는 것이 혹 품위를 깎는 행동일지도 모르겠으나, 수많은 젊은이들을(그것도 제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들을) 애꿎은 전쟁터로 내몰려는 골통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국익'을 운운하며 '경제적 콩고물'을 기대하지만, 참으로 '김칫국부터 마시기'가 아닐 수 없다. 환율 공세를 펴는 꼴을 보라. 석유와 관련된 전후 복구 사업에도 한국은 배제되어 있다. 석유 얻으려고 자기네 나라 젊은이들 피를 바쳤는데, 그 석유를 우리에게 주겠나. 당치도 않은 말이다. 사람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는 것은 결코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제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겠다. 이라크에 대한 파병을 왜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많은 분의 좋은 글들이 나왔기에 본 기자는 내년에 치뤄질 미국 대선으로 시선을 바꿔보겠다.

▲내말 안들으면 목날리는 것 알지? 전화 상대자는 과연 누구일까?  
아시아에 대한 환율 공세에 이어 유가 공세까지 펼쳐지고 있다. 물론 두 주체가 다르긴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에 주는 영향은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유가가 내년 대선 때까지는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석유관련기업들이 대부분 부시의 든든한 지원자인 탓에 그의 재선을 위해선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외적인 단속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례로 최근 OPEC의 감산결정과 관련해 "미국 경제를 해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부시가 직접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장기적인 재정적자의 폭이 확대될 전망까지 겹치면서 미국 경제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다. 세계 최고라는 국가신용등급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이 미국내에도 상당해지고 있는 등 여러면에서 정치적 위협을 받고 있는 부시는 재선을 위해선 어떻게든 경제 안정을 위한 활로를 찾고, 이라크에서의 소음을 종식시켜야만 한다. 왜. 낙선하면 인생 종치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희망은 귀결된다. 바로 부시의 낙선이다. 그것도 이왕이면 참패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미국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현대사 50년동안 '안보'라는 구호가 독재정권들의 수호신이었듯이, 미국 국민들에게도 '테러 안보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라는 구호는 제법 먹혀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청신호가 켜졌다. 누군고 하니, 웨슬리 클라크 전 NATO 군사령관이다. 그는 최근 민주당내 대선가도에서 일대 바람을 일으키며, 여론조사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부시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2년전까지는 군인출신답게 호전적이었던 레이건이나 부시 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떡하랴, 미운 놈이라도 데려다가 급한 불 꺼야지.

클라크의 인기가 상승하며 부시를 긴장케 하는 가운데, 본 기자는 여전히 힐러리 클린턴의 출마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일각에서도 힐러리가 대통령, 클라크가 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또 만약 힐러리가 출마한다면 큰 격차로 부시를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본인은 아직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생리란게 원래 다 은퇴했다가도 복귀하고, 부인했다가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힐러리의 대선 출마가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힐러리 자서전 'LIVING HISTORY'
이제 본격적으로 힐러리를 지지하겠다. 힐러리는 올해 초 자신의 성장과 백악관 생활을 다룬 자서전 'LIVING HISTORY' 1,2권을 출간했다. 지성적이면서도, 인간애적인 미소를 지으며 턱 괴고 있는 흑백표지는 국내 출판 후 온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감상을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힐러리의 인간미에 매료됐을 수도 있고, 젊은 나이의 클린턴 부부가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장면에서 작년 노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했을 수도 있고, 책 뒷표지에 나오는 클린터 가의 가족사 사진에서 그들이 스쳐온 시대를 음미했을 수도 있다. 물론 나열된 예들은 본 기자가 조금씩 맛봤던 감상이다.

책의 첫 장 제목은 '한 미국인의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사고는 항상 이런 식이다.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것.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을 투입하는 사고.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의 역할을 한다고 국군아저씨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사고. 힐러리는 역시 미국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역시 전인들과 비슷한 오류들을 범할 것이란 추측을 통계학적으로 해볼 수 있다. 거기에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뉴욕'이다. 'I LOVE NEWYORK'이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도시, 미국의 메카. 미국인들의 애뜻한 감정이 늘 향하는 그 뉴욕. 힐러리는 다시한번 미국인이다. 그리고 또 그는 뉴욕주 상원의원이다. 이런 얘기를 끄집어내는 의도는 힐러리를 좋아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두기 위함이다.

일일이 책의 내용을 살피려 들다가는, 힐러리 신봉자로 오인받을 것 같아 베트남전에 대한 힐러리의 회고만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는 국론이 분열되어, 우리는 확실한 의견을 갖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모든 사람에게 괴로운 일이었다..... 베트남을 둘러싼 논쟁은 전쟁만이 아니라 나라에 대한 의무와 애국심에 대한 태도도 명확히 해주었다 국익에도 어긋나고 정의롭지도 않은 전쟁에 국가의 명예를 위해 참가할 것인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징병 유예나 제비 뽑기 제도를 이용하면 비애국자인가? 그 전쟁의 가치와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한 많은 학생들도 군말없이 입대한 남녀나 처음에는 순순히 참여했지만 나중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못지않게 미국을 사랑했다. 생각이 깊고 자의식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에게 쉬운 대답은 없었고, 자신의 애국심을 표현할 방법은 다양했다.

일부 작가와 정치인들은 당시의 고뇌를(전쟁에 대한 반대 논란) 1960년대의 방종이 구현된 것으로 치부하려고 애써왔다. 실제로 전쟁이 남긴 유산과 전쟁이 낳은 사회적 격변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베트남 논쟁이 경망스럽고 하찮았다고 우리가 믿기를 바라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논쟁은 결코 경박하지 않았다.
베트남 문제는 중요했고, 미국을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미국은 아직도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이미....유진 매카시의 반전운동을 지지하고 있었다....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암살되었다. 나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행진이 끝난 뒤 나는 검은 상장을 팔에 두른 채....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국익과 가치를 증진시키기는커녕 그와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지성과 양심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살아있는 역사 1권 中)

남의 나라 영부인을 지낸 돈 많은 변호사에게 왜 이런 감언까지 늘어놔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부시 하나 매장시켜서 수십 수백만명을 살리고, 한반도에 사는 백성들 역시 두 발 쭈욱 펴고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다면이야 뭔들 못하랴. 왠지 정치적인 의도가 풍겨나는, 그러면서도 그에게 다시 한번 재력과 명성을 선사해준  'LIVING HISTORY'에 대한 본 기자의 선전이 머얼리 뉴욕까지 전파돼 힐러리의 마음을 돌려놓는데(본심을 드러내는 것인지의 여부는 모르겠다만) 일조하기를 희망한다. 그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전쟁과 같이 남성편협적인 일에서 손을 끊고, 빌 클린턴 당시에 관심을 보였던 보건, 교육 분야와 같이 국민들의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한 일에 매진하기를 바란다.

물론 언급했듯이 힐러리도 미국인이고, 미국을 위해 봉사할 것이며, 한 사람으로 인해 국가전체의 이해관계가 뒤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이런 심적 지지는 힘없는 국가의 한 개인으로서 우매한 몽상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부시 정권에 들어서 매파에 힘을 실어준 것은 부시 개인의 역사적 실수(historical mistake)일 개연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 어느 정도 힐러리에게 기대해볼 만한 값어치는 충분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도발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나 하는 점을 가까운 시일에 세계역사 교과서에 실을 수 있으리라. / 경제부기자

사족) 책의 내용 중 신당문제로 소용돌이에 빠진 한국 정치판에 들려줄만한 어구들이 있어서 첨한다.

"나는 단순히 연극적 열정이 아니라 진정한 열정으로 민주당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만, 그 열정이 자신의 이해당락을 위한 연극적 열정인지, 정치개혁과 국민후생 증진을 위한 진정한 열정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계획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하려고 계획하는 것이다(Fail to plan,plan to fail)"
(정치개혁의 명분으로 딴집 살림을 차린 신당의 계획이 실패하지 않길 바라며....)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자."
(노 대통령의 수구 언론에 대한 대응 방식의 변화를 기대하며)

"흔히 그렇듯이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더 완고하고 목소리도 컸다."
(지금 우리 사회의 면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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