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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몬 일제시대 조선인 교장들
[우리힘의 눈] 친일문제 다룬 책 학교 반입 금지한 동구여상의 경우
 
방학진   기사입력  2009/02/17 [16:35]
작년 10월 국방부가 23권의 도서를 장병 사기와 정신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여 군내 반입과 소지를 금지했고 급기야 군 법무관들이 국방부 조치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국방부의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23권 대부분이 ‘불온서적’ 지정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심지어 출판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출판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요즘 군대 내무반에서는 사병들이 PC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는데 웬 ‘불온서적’ 타령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임채진 검찰총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친북좌익이념을 퍼뜨리고 사회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과 검찰이 설쳐댈 때 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김없이 후퇴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이 같은 권력기관의 전횡에 가장 먼저 반응하여 부화뇌동하는 곳이 다름 아닌 일선 학교 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요즘의 학교 현장을 보면 일제시대를 방불케 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조선총독부가 징병제를 실시하면 학교 교장들이 앞 다퉈 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몰던 당시와 같다는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조롱했던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을 본받기라도 하듯 서울 성북동의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는 최근 대중 역사서 3종의 학교 도서관 반입을 금지했다. 이 학교 이원표 교장을 비롯한 교감, 부장 교사들은 교무위원회를 열어 <친일파 99인>(전3권),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한국근대사 산책>(전10권) 등 3종을 구입 금지한 것이다.

이 책들은 이 학교 교사들이 교육청 지원 예산 300만원으로 구입을 신청한 200여 권의 책 중의 일부였다, 하지만 교장을 비롯한 교무위원들은 <친일파99인>의 경우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현대사산책>과 <한국근대사 산책>은 ‘역사학자가 아닌 언론학자가 쓴 역사서’라는 이유를 들어 구입을 금지했다. 특히 이 학교 교장은 이들 책들을 읽어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금지시킨 능력도 놀랍지만 더욱 모순인 것은 동구여상과 같은 재단인 동구여중 도서관에는 이들 책들이 이미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도서관 반입을 금지한 <한국 현대사 산책>.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가 집필했다.

왜 이 같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지 동구여상의 연혁을 보니 대략 짐작이 간다. 바로 학교 설립 당시 이사장이 대표적인 여성 친일파 김활란이 아닌가. 게다가 초대 교장으로 실질적인 학교 설립자인 조석봉의 일제시대 행적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석봉은 경기사범(현 서울교대)과 경성사범(현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육계에 입문한다. 여러 학교 교장을 역임하다가 1942년 동구가정실수여학교(현 동구여상)를 설립한다. 1930년대 후반에는 <교육순보사>와 <조선출판사> 등을 경영한 이력도 있는데 아마도 이 때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이 후에 학교 설립의 밑천이 되지 않았나 추측한다. 1939년에는 경성부회 의원(오늘의 서울시의원)에 입후보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야망도 있었던 같다.

그는 학교를 설립한 해인 1942년 10월 15일 <조광>(방응모가 창간한 친일잡지)에서 주최한 ‘징병령과 여자교육’이라는 좌담회 참석한다. 일제는 1941년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만 최강 미국을 상대하기엔 버거운 일이었고 이때부터 전세는 일본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다급해진 일본은 조선의 청년들을 전쟁터로 대거 끌고 나가려고 1943년 징병제를 확대 실시한다.

징병제 실시에 앞서 일본은 사전 정지작업 차원으로 교육계 인사들을 포함해 유력 인사들을 대거 동원하여 징병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선전한다. 바로 이 좌담회에 동구여학교 조석봉 교장을 비롯한 경성의 5개 여학교 교장들이 참석한 것이다. 동덕고등여자학교 교장 조동식, 진명고등여자학교 교장 대리 송강서림, 경기고등여자학교 교장 박관수, 이화고등여자학교 교장 신봉조 등이 바로 그들이다.

조동식 : 지금에는 병역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한데 이것을 고쳐주려면 내지(일본)의 몇 배 이상의 인식을 넣어주어야 할 겝니다. 자식이 꺼리고, 아내가 꺼리고, 어머니가 꺼린다면 누가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까.

신봉조 : 장래 여자교육을 시킬 때 혈족관계를 사유의 것으로 생각지 말고 국가에 목숨을 즐겨 바치도록 준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족 또는 아들이 호국의 영령으로 돌아올 때 같은 때도 내지 여성(일본 여성)과 같은 태도, 즉 군국의 어머니로서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한 태도를 가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박관수 : 우리 조선여성들도 가정에서 규율적인 생활을 할 것이며, 진충보국의 마음을 항상 지니고, ‘가미다나’(일본의 신을 떠받들기 위해 제작된 가정용 제단)를 위하고, 아침 묵도, 신궁 참배, 국어(일본어) 보급들을 통하여 가정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아이들을 학교에만 맡겨놓고 태연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훈육에 노력할 것입니다.

조석봉 : 우리는 특히 비교적 교육을 실제 생활과의 연결에 주력하고 있는데 독서도 너무 추상적이거나 또는 우리에게 맞지도 아니하는 사상을 근본으로 한 것 같은 것은 취하지 아니할 작정입니다. 독서에 있어서는 아무쪼록 우리에게 고유한 미덕, 즉 내지(일본) 여성들의 미덕을 본받을만한 독물(讀物, 읽을거리)을 택하도록 우리도 힘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징병제 실시와 관련하여 여학생들을 군인의 가족으로서, 군인의 아내로서, 군인의 어머니로서 육성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결국 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방법을 공개 토론한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해방 후 자신들의 반교육적 행위를 사죄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 후 이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완벽한 자기변신의 달인들임을 알 수 있다.

조동식은 동덕여대를 설립했으며 안중근의사, 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았다. 신봉조는 이화출신의 유관순열사기념사업에 관여했고, 박관수는 단군정신선양회장을 역임했다. 일본정신을 그렇게도 강조하던 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같이 독립운동가 기념사업이나 단군정신선양에 앞장서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 여성들의 미덕을 본받을만한 책을 학생들에게 읽히도록 힘쓰겠다는 조석봉의 말이 마치 오늘날 실현이라도 되는 듯 동구여상 학생들은 친일문제를 다룬 역사책을 읽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오늘도 이처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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