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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의 기사회생을 위한 세 가지 조건
[논단] 범여권의 마지막 비상구는?
 
이태경   기사입력  2007/11/27 [21:03]
17대 대선의 공식선거전이 막을 올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게 멀찌감치 뒤지고 있는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선거전에 분주한 모습이다.
 
안쓰러운 건 이들의 열심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이들이 앞으로 치러낼 선거전은 패배를 향한 진군처럼 보인다. 물론 패배를 향한 진군에도 종착역은 있다. 12월 19일이 바로 그 날이다.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이 세 사람이 파국을 피할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보수진영과 참여정부의 실정(?)에 분노한 나머지 뿔뿔이 흩어지거나 보수진영에 투항한 진보·개혁성향의 유권자들을 생각해 보면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이들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반전을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극적 반전을 위한 세 가지 필수조건
 
첫째,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해야 한다. 비록 이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 대부분이 이 후보의 도덕성이나 윤리의식에 대해 불가사의할 정도로 관대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노정하고 있는 윤리적 흠결이 이 후보를 지지하거나 이 후보에게 우호적인 유권자들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면 제 아무리 이명박 후보라 해도 지지율 급락을 견딜 재간이 없을 것이다.
 
이미 사실로 드러난 이런 저런 위법행위들에 더해 BBK의혹마저 사실로 밝혀질 때 이 후보가 마지노선이라며 자랑하던 35%의 지지율이 유지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명박 후보가 지닌 숱한 도덕적 하자와 터무니없이 낮은 준법의식을 대하는 유권자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회창 후보가 건재한 채 투표일까지 완주해야 한다. 지난 15대 및 16대 대선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기려면 정치·경제적 지향으로는 보수표, 지역적으로는 영남 표를 분산시켜야 한다. 쉽게 말해 이회창 후보가 15대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했던 역할을 재현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회창 후보가 레이스 중간에 사퇴를 하거나 이명박 후보에게 흡수되는 경우, 이명박 후보의 기세는 누구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셋째,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로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연정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 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 민노당의 철학적, 정책적 차이가 매우 크고 구성원들이 이질적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 단일화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각 정치 세력 간의 지분 다툼 문제가 걸리면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 단일화는 한결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개혁 진영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등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이 길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만약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각개 약진 식의 싸움을 벌인다면 설령 이명박 후보가 낙마하고 이회창 후보가 보수진영의 대표선수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없다.
 
단,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단일화를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정 후보의 등 뒤에서 어른거리는 참여정부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회고적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 성향이나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도 나름의 이유로 참여정부를 심판하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옳은지 그른지는 적어도 선거 국면에서 따질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참여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과 노여움이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무엇보다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략과 전술은 항상 현실에 입각해서 수립되어야 한다.
 
필마단기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가 삽시간에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을 앞지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정 후보는 정확히 간파해야 할 것이다.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라도 성사시키길
 
문제는 위의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첫째, 둘째 조건이 그렇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진보․개혁 진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연립정부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 성사 정도다.
 
만약 진보·개혁 진영이 연립정부 수립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를 매끄럽게 이뤄낸다면 설혹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패배가 될 것이며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운으로 이명박 지지율 급락과 이회창 대선 완주가 실현된다 해도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하는 한 진보·개혁 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궤멸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택은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의 몫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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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1/27 [21: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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