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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쏘아 올린다
[기자의 눈] 3일 'TV문학관'에서 방영, ‘386’ 부모와 자녀 함께 보길
 
황진태   기사입력  2007/03/01 [12:10]
전국을 논술열기로 몰고 가기 시작한 십여 년 전 기자의 중학교 시절, 논술에 나오지 않을 고전만을 선별한 도서목록 중에는 엥겔스가 24살에 저술한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이하 상태)가 있었는데, 당시 <상태>에 나온 방적기 밑에 깔린 어린 노동자들의 처참한 상황은 그저 150년 전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겹쳐 읽었던 전태일 평전의 실상도 몇 십 년 전의 일일 뿐이라고 단정 지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키노>, <까이에 뒤 시네마>, 장 뤽 고다르의 누벨바그에 빠지면서  잠시나마 ‘헐리우드 키드’로 단편영화제작사를 서성거릴 때 마주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作) 또한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허구)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아마도 사춘기 시절, 내 가슴속에는 혁명을 시도하지 못하게 파리를 개조한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처럼 프롤레타리아는 없는 셈 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던 것은 아닐까.
 
간혹 언어영역 지문으로 나온 조세희의 단편소설 <뫼비우스의 띠>라던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수능점수를 위해서 푼다는 사실도 피하고 싶었다. 가령 난쏘공의 배경이 되는 낙원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낙원구’에 대해서 어떠한 용법을 사용했는가? 1.반어법 2.대구법 3.직유법, 4. 대유법 중에서 골라야 했다. 이러한 문제는 도리어 현실의 폭로보다는 적나라한 실상을 가릴 뿐이다.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150년 전 이야기나 독재정권시절이나 바로 지금이나 똑같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던 사춘기 시절에 기자의 마음처럼 말이다. 
 
▲1978년 출판 이래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운 조세희 원작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성과 힘, 2000년 개정판
난쏘공의 연극공연 부활과 함께 KBS 1TV ‘HD TV문학관’은 3월 3일 오후 10시50분에 난쏘공(극본 박진숙, 연출 김형일)이 방송된다. 드라마 시사회에 참관했던 조세희는 “‘난쏘공’은 아무리 민주주의가 됐다고 해도 여전히 꺼림칙한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기자가 사춘기 시절에 부정하고 싶었던 그 꺼림칙한 기분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꺼림칙한 기분, 피하고 싶은 현대사를 알아야 할 본질은 무엇 때문인가.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난쏘공의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장이’는 안락한 일상 속에 잠자온 우리에게 가열한 충격이다. 그는 그 왜소하고 병신스런 모습을 통해 광포한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꿈과 자유에의 열망을 보여준다.”
 
봄이 시작되고 온 천지가 따뜻할 것만 같은 깊은 저녁에 자녀들과 함께 드라마 난쏘공을 시청하고서 여전히 한겨울 같은 밤을 지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알려주는 이야기 꽃을 피웠으면 바람이다. 적어도 이유도 모르고 그러한 사실을 대면한다는 게 왜 불편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기자의 사춘기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날 자녀들이 왜 그러한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386세대 부모들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축복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재테크에 몰두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의 시선에 <상태>를 저술할 당시 24살이었던 엥겔스의 눈도 가지길 당부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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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01 [12: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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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uj26 2007/03/04 [21:40] 수정 | 삭제
  • 기독교인의 고집스러운 성경근본주의를 타파해 주시는 글 정말 시원합니다
    저는 유선생님의 글을 모두 읽고난후 복사하여 모으고 있습니다
    정말 기독교인들을 새롭게 눈 뜨게 해 주셔서 아마도 하나님 마저도 시원해 하실 것 입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