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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에 평화란 단어는 언제쯤 올까?
[책동네] 한중일 함께 만든 동아시아 공동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황진태   기사입력  2006/04/02 [22:19]
어린 시절, 이면에 담긴 내용은 모르고 좋아한 동화(?)였던 <동물농장>과 더불어 조지 오웰의 <1984>는 언론, 역사관련 비평에 있어서 ‘기억-역사의 조작’에 관한 비판을 위한 인용으로 빠지지 않는 소스다. 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이루어진 오늘날에 오웰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비판한 대상들이 범했던 왜곡사례가 실제 소설 속의 ‘텔레스크린’ 수준의 대놓고 ‘섹시’하게 조작한 적은 드물고, 이는 파시즘 시절에나 찾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정부가 직접 나서서 역사기술에 있어서 ‘왜곡지시’를 했었다는 보도기사를 접했다. 텔레스크린의 소환, 허구적 소설의 현실화, 요즘 소위 먹어준다는 인기 있는 장르인 팩션(fact+fiction)의 색다른 버전이다. 팩션 장르의 선두주자인 소설 다빈치 코드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일부 개신교 원로 분들은 이를 마뜩치 못해 국내개봉에 반대한다는 오버액션을 취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빈치 코드는 기껏해야 문화적인 배설 수준에서 끝나는 반면 일본정부의 오버액션은 역시나 그들의 몰역사적 취향이 대동아 군국주의의 부활과 연관된 동북아 평화의 안티테제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저술한 '미래를 여는 역사'     © 한겨레신문사, 2006
이러한 사태에서 동북아 역사에 평화라는 단어가 깃들 날이 언제쯤일지 함께 고민해볼 취지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라는 한권의 책을 추천 해드리고 싶다. 이 책은 동아시아 한,중,일 세 나라가 공동으로 기획, 집필하여 “최초의 동아시아 공동역사교재”라는 취지로 발간되었다. 책 내용에 앞서 3국이 ‘공동’으로 역사교재를 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히 ‘기념비적이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의 설명처럼 이 책을 읽어보면서 “편협한 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미래 지향적 역사의식을 전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확인된다. 가령 이 책의 집필을 위해서 4년 간 토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것인가, ‘병합’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한국 학자들은 불법이라고 보지만,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힌 부분은 이 책이 “토론과 대화를 위한 텍스트”라고 지칭한 것처럼 이 책의 출간으로 근현대사 작업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토론이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역사관의 불일치가 앞으로도 여전히 3국의 역사고리의 매듭을 풀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책의 발간 목적이 일본우익사관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상기하자. 또한 기념비적인 발간목적과 함께 본문의 내용도 3국의 사람들이 탐독할 만한 텍스트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감안하자.
 
먼저, 전쟁발발국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가리고 싶은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난징대학살, 세균전, 위안부, 간도 대지진에 대한 서술이 간결하지만 모든 사건을 조망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중국인들은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일본이다. 몇몇 사안에 대해서 여전히 일본 정부가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역사교육도 이러한 사실을 그들만의 사관으로 재생산하기는커녕 아예 알리는 것조차 꺼리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한국인, 중국인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한국 독립을 위해서 싸운 일본인들에 대해서 논의한 점이다. 3.1운동을 보고서 “마치 내 일처럼 생각되어 감격했다.”는 가네코 후미코는 “모든 권력을 부정하고, 인간은 평등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사상을 가지고서 천황타도에 앞장섰다. 후세 다쓰지는 “한국의 농업시설이 발달하면 할수록 한국의 가난한 농민들은 점점 생활고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한국에 살수 없게 된다.”며 한국 민중의 편에서 싸웠다. 2005년에 그는 한국정부로부터 일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건국훈장을 받았다.(독립운동,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의 양심들’에 관한 좀 더 알고자 한다면 허동현, 박노자의 <우리역사최전선>, 푸른역사, p.239~258, 참조)
 
이외에도 이 책은 아픈 역사를 논한 것과 함께 3국의 문화사 변천에 대한 흥미로운 서술에도 할애되어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NHK 겨울연가 포스터가 실린 부문의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란 제목처럼 각국의 문화사는 중첩되고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이 책을 저술한 일본 측은 한국 속담인 “시작이 반이다”를 인용하면서 “모자란 점이 많겠지만 함께 손잡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 가는데 이 공동교재를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렇다. 일본 측 말대로 3국에서 이 책이 교재로 활용만 되더라도 동아시아 평화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근래에 해방전후사를 기점으로 보수-진보진영간의 역사논쟁이 치열하다. 한겨레신문사에서 출판된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국가보훈처에서도 배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만큼은 이념을 따지기 보다는 공통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으리라. 가끔은 ‘차이’보다는 그 ‘사이’를 좁히는 공감대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국민 아니 동아시아인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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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02 [22: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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