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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권영길표 폭탄, 터져라!
지역분열세력 공격만이 살 길이다.
 
변희재   기사입력  2002/12/02 [13:01]
{IMAGE1_RIGHT}권영길 후보가 노무현-이회창 양강구도의 대선 텔레비전 토론회에 준비된 폭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분위기를 보면 민주당이 권영길이라는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고, 한나라당은 느긋하게 권후보의 등장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각 당의 정책 담당자들이 참여한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의 패널들이 취한 양비론으로 한나라당 측이 덕을 봤다는 분석 때문일 것이다.

특히 KBS 심야토론 '유권자 선택 정책토론'에서의 이상현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토론방식은 민주당 측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 충분했다. 호남당 민주당, 영남당 한나라당 식의 양비론은 부산상륙작전을 준비하는 민주당 측에 가장 뼈아픈 공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여러 차례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의 길을 갈 것이다."며 한나라당, 민주당 그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결국 권영길 후보의 토론방식은 지금까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보여준 이상현 대변인, 노회찬 사무총장 등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다. 즉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동시에 공격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식 말이다.

대선 토론에 임할 권영길 후보의 위치잡기는 사실 정치 논쟁의 고전적 소재라 할 수 있는 비판적 지지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개혁적인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 옳은 것이냐, 아니면 어차피 썩어빠진 기성정치권을 모두 공격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이런 논쟁 말이다. 이것은 6.13 지자체 선거 때의 옥석 논쟁 때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에서도 매일 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야말로 인터넷 논쟁의 활화산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권영길 후보가 토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화끈하게 공격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런 주문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노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민주노동당의 후보 권영길이 왜 민주당의 후보 노무현을 밀어줘야 하느냐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논쟁의 여지없이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말이 맞는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후보는 민주노동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해야한다. 그러므로 노무현을 한번 비판하려면 이회창을 두 번 비판해야 한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는 전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권영길 후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차별화 할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별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 문제, 반미문제, 정당의 민주화 문제 등에서라면 실제로 민노당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는 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토론회의 흐름 자체를 아마 이런 구도로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권영길 후보의 이런 토론 전략은 그 자체로 정당한 일이다. 비단 이번 토론회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여타의 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입지점을 더 넓혀나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회창 양강 구도에서는 이런 것들, 즉 권영길 후보의 장점이 토론의 주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측이 들고 나올 이회창 후보의 도덕성과 영남 지역주의 , 그리고 한나라당 측이 강조할 DJ 정권의 실정 및 호남지역주의가 토론회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점이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권영길 후보로서는 자신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방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바라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어차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소극적 지지자들을 돌려세워야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권영길 후보는 권영길 후보 방식의 토론에 임하되, 단 한 가지 사안에서만큼은 보다 공정한 심판관의 역할을 해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이는 절대로 노무현 후보의 득표에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권영길 후보의 잠재적 지지자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말이다. 바로 지역주의 문제에서 이상현 대변인이 취한 기계론적 양비론을 과감하게 버리고 서슬퍼런 심판의 칼을 휘둘러 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97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부터 민주당은 호남 사람들은 지역성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민주당이 노무현, 김중권 등 거물 정치인들을 영남권에 공천하는가 하면, 호남인들은 총선시민연대가 낙선 대상자로 찍은 민주당 공천자들을 실제로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선시키기도 했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어땠는가? 한나라당의 총선 선거전략은 어떻게 해서든 호남에서 당선자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영남권을 싹쓸이 하고 수도권의 영남표마저 결집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 전략은 지금 대선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호남에서 2%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것을 영남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랑하고 떠벌리고 있다.

어차피 영남의 유권자수는 호남의 유권자수보다 2배 가량 많기 때문에 호남에서 표가 전혀 나오지 않더라도 영남권의 유권자만 단결시키면 이길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지역주의 선거운동 방식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노무현 후보의 전력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영남권을 끌어안으려 눈물겨운 노력을 다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 지금 어디가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는가? 특별히 권영길 후보가 아니라 보통 정도의 정치적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봐도 답은 명확하다.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명확한 답마저도 지금껏 민주노동당의 패널들이 제대로 해줬냐는 것이다. 전혀 아니었다. 특히 이상현 대변인 식의 호남당 민주당, 영남당 한나라당 식의 발언은 형식적으로만 양비론일 뿐 실질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지역주의 선거운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일각에서 주장하듯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2%밖에 못 얻는 것은 지역주의적 집단 광기이다."라는 말에 동의하고 있단 말인가? 이회창의 호남권 지지율은 97년도 대선 때보다 더 떨어졌다. 틈만 나면 영남에 내려가서 "영남 사람들은 평생 호남의 노예로 살아갈 것이다.", "호남의 굴뚝에는 연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말들을 떠벌리고 다닌 정치인들을 제 정신 가진  호남인들이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는가? 이 말에도 동의할 수 없는가?

나는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전혀 못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대선이 끝나면 한번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러한 잘못된 오판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바로 지자체 선거 때의 옥석논쟁이었다. 마치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대로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처럼 선전하고 다니며 극한 대립으로 판을 끌고 나갔던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민주당 혹은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부분 보통 서민들이다. 노무현이 당선된다고 해서 밥 한끼라도 얻어먹을 일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민주당과 노무현만을 고집하겠냐는 말이다. 그야말로 자신들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표를 결정할 뿐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은 것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2002 대선은 부산의 유권자들이 당락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지역문제는 최고 최대의 이슈이다. 지역감정에 대해서 올바른 견해를 갖고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이 개혁적 유권자들의 몰표를 받게 된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권영길 후보가 노무현 후보보다 뛰어나다 해도 2002년 대선 만큼은 지역감정에 대한 입장으로 판가름난다. 지역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기계적 양비론은 오답이기 때문에 오답을 내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데, 당선 가능성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는 고전적인 비판적 지지의 망령은 그 다음의 일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지역문제에서 헛다리짚는 후보는 비판적이든 뭐든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월간 인물과사상 12월 호에서 나는 '바보 권영길의 도전'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97년도에 국민승리21의 후보로 나서 30만표의 득표를 한 뒤 "반드시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지킨 권영길 후보야말로 바보 노무현 이상 가는 바보 중의 바보라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그 만큼 험난한 길을 꿋꿋히 걸어온 것이다.

이왕 지금까지 바보짓을 해온 김에 지금도 영남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국민분열을 일삼고 있는 한나라당과 정면으로 맞장을 떠주면 수많은 개혁적 유권자들의 표심을 몰아올 수 있을텐데 그것을 하지 않으니 정말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혹시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표를 잠식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바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올바른 것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권영길 후보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데 왜 이회창이 승리하겠는가? 민주당의 좌성향의 표가 민노당으로 가더라도 도덕성에서는 100점 먹고 들어가는 권영길 후보가 한나라당에 심판을 내려주면 개중 의식있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최소한 기권을 할 정도의 양심은 보여줄 것이다. 권영길이 올바르게 판단하면 올바르게 살아온 노무현도 승리하고 권영길도 승리한다. 믿어라. 하늘이 그렇게 되도록 도와준다.

내일이면 텔레비전 토론이 시작된다. 권영길 후보는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나오는 "어차피 민주당 지지자들은 광신도이니 민주노동당 찍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탄의 속삭임은 그대로 흘려들어라. 지역통합을 바라는 수많은 개혁적 유권자들의 바램을 소중히 여기며 노무현 후보보다 더 강력하게 지역분열 세력에게 무시무시한 칼날을 휘둘러준다면, 이번 대선은 물론 다음 총선 때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보장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미팅에서 폭탄을 만났을 때'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다.

1. 하늘을 보며,

"하늘도 무심하시지."

2. 땅을 보며,

"지옥에나 떨어져라."

3. 담배불을 붙여주며,

"터져라 폭탄!"

폭탄은 터지라고 만든 것이다. 준비된 권영길표 폭탄이 이번 대선 텔레비전 토론회를 기점으로 연쇄폭발하여 총선 때까지 힘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영길 후보에게 담배라도 한 대 물려주고 싶은 2002년 12월 2일 날씨 맑은 오후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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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02 [13: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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