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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니들이 민심을 알아
 
공희준   기사입력  2002/09/25 [19:45]
명절만 지나면 단골로 나오는 뉴스가 추석민심에 관한 보도다. 타향 간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은 민심이 교류하고 증폭하는 가장 중요한 때이니 만큼 정치인의 여론청취 혹은 이를 빙자한 여론조장이 절정을 이루게 마련이다. 연휴 전에 나온 신문은 4~5일의 수명을 갖는 탓에 터뜨릴게 있으면 이때를 맞추고 민심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설이나 칼럼도 꼭 이때를 노린다. '대구·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는 악명 높은 기사도 다 이런 계산 끝에 나온 것이다. 주요 게시판에서 날마다 여론을 교환하는 젊은 네티즌들에게는 고향에 내려가야만 여론을 듣고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코미디이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는 소위 그 '민심'들이야말로 얼마나 생생한가? 꼭 내려가 봐야만 아나? 온라인 상에서 서울·부산·대구·광주·미국·유럽·중국·동남아 전 세계 모든 네티즌들이 죄다 모여 날마다 민심교환을 하고 여론을 확인하는데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1년에 두어 번 명절 때나 되야 파악이 될 만큼 형광등인가? 2천5백만 명의 네티즌이 서로 만들어내는 커뮤니케이션의 경우의 수는 슈퍼컴퓨터로도 도저히 계산불능이다. 무한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커뮤니케이션 '빅뱅'이다. 설 민심? 제발 웃기지 말라. 지금 한국의 네티즌들은 거의 수억 개에 이를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을 날마다 나누고 있다. 지난 97년 대선과 비교하면 거의 수백~수천 배에 달하는 밑바닥 커뮤니케이션의 대폭발이다. 기성언론과 제도정치권은 제발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지금은 봉투 돌리고 지구당 돌며 민심 파악하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다. 민심이 궁금하다면 당장 한나라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라도 한번 접속해보시라. 그러면 왜 지금 당신들 몰골이 이 모양인지 실감이 날 테니...   - 민경진 저(著) 테크노 폴리틱스 P. 83~85에서 정리·발췌

{IMAGE1_LEFT}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이틀 연속 민경진 대자보 편집위원의 글을 인용했다. 나 홀로 몰래 감추고 보기에 너무나 아쉬운 주옥같은 구절이라 다른 이들과 폭넓게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더불어, 일부 거대신문회사와 한나라당, 거기에 누구라고 적시하지는 않겠으나 유력 민영TV방송사까지 가세하여 자기들끼리 빙 둘러앉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읊어대는 민심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여론조작의 산물임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윤색된 민심을 방패막이로 삼아 이전투구의 정쟁에 약방의 감초 격으로 끼여드는 것이 정몽준씨에게 달라붙을 기회만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민주당내의 경선불복집단과 동교동계다. 거대신문회사와 한나라당, 민주당내 경선불복세력과 동교동계의 대표주자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으면 봉숭아학당을 능가하는 엽기발랄한 Class가 되리라. 공부할 마음이 없는 품행 불량한 학동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니들이 민심을 알아!

내가 SKT의 휴대폰시장 독점이 야기하는 폐해를 알리고자 좌충우돌하는 이유는 강력한 정보채널을 특정 사기업체에 쥐어주는 것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노파심의 발로에서다. 만약, 현대그룹의 정몽준 의원이 아닌 SK그룹 핵심수뇌부 출신의 누군가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갑자기 당신의 핸드폰에 '국민이 OK할 때까지 손길승'이라는 황당한 문자메시지가 뜬다. 동영상 서비스가 제공되는 IMT-2000 사용자의 액정 화면에는 '7천만의 여유 최태원입니다'로 말문을 여는 현란하고 어지러운 선거광고가 번쩍인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메신저(혹은 미디어)를 장악한 후에는 궁극적으로 제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양산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메신저를 손에 쥔 집단이나 세력이 공공성과 사회적 공익에 부합하는 콘텐츠만을 생산하려는 건전한 시민적 상식을 지녔다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들이 정보유통수단을 사적인 이익추구와 음험한 권력욕 충족을 위해 악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총체적이고 발본적인 개혁작업이 진행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대전제에는 공공연하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게다. 처해 있는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개혁의 전반적 속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해 상이한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일견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극소수의 수구기득권 집단이 표면상의 찬성과는 달리 이면에서는 개혁을 방해하고 특권층과 부자들에게 유리한 낡고 부패한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여론을 오도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데 광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첨단권력은 레닌의 억지처럼 빵에서 나오지도, 모택동의 허풍대로 총구에서 태어나지도 않는다. 권력은 메신저에서 고고지성을 울린다. 부시 따위의 호전적 극우꼴통들이나 여전히 힘은 함포에서 나온다는 하드 파워(Hard Power) 지상주의를 광신할 뿐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20세기 산업사회의 메신저는 신문과 방송을 위시한 다종다양한 대중매체들이었다. 21세기의 주도적 메신저(미디어)는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될 전망이다. 메신저를 움켜쥔 자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이들의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운용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와 대안적 여론생산기제가 아직 미성숙하고 미발달했던 과거의 한국사회에서는 국민들이 매체를 소유·경영하는 세력들의 횡포와 전횡을 무력하게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IMAGE2_RIGHT}'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테제는 우리나라 여론생성 메커니즘의 허구성과 기만성에 직격탄을 퍼붓는 정문일침이다. 한국의 거대신문회사들은 부유층의 탐욕과 경제적 이득을 민심의 흐름으로 포장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추석 대목이야말로 국민을 상대로 한 이들의 여론장사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교통체증으로 길바닥에서 열 몇 시간을 허비하고 고향에 도착하면 반가운 가족의 안부를 묻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기에도 바쁜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국민적 담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스럽다. 술 한잔 걸치고 화투치며 객담으로 지껄이는 이야기들의 집적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민심의 발원지라면 그런 민심은 개에게나 던져줘라.

신문회사 데스크 근무자들은 자리에 앉아 전국 각지의 사랑방 동향을 일일이 통찰할 천리안을 가졌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귀성활동을 통해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역구 유권자들과 접촉할지 헤아리지 못하겠으나, 명절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을 일반 국민들이 어느 세월에 정치인들과 느긋하게 국정현안을 담소할 여력이 있을지 이 또한 궁금하다. 아무튼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한테 그럴 능력이 있다면 당장 복권이나 열심히 긁겠다.

기존의 집중형 대중매체는 올바른 여론을 반영하지 않는다. 반면 분산형 뉴 미디어인 인터넷은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민심의 소재를 전하고 있다. 분별력 있는 국민이라면 더 이상 정치권과 거대신문회사가 제멋대로 굴절해 왜곡시키는 시정잡배들의 목소리를 진실한 민심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 시간에 제대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 가서 게시판이라도 한번 죽 훑어보시라. 그들의 흑심과 야심이 아닌 우리들의 진심, 국민의 천심이 감지될 것이다.

메신저를 조종하는 부류들이 메시지마저 만들려고 작정할 경우 빚어지는 적폐와 혼란을 우리는 한국의 거대신문회사들의 나날이 도를 더해 가는 추태에서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특권층의 기호에 영합하는 편파적인 시각의 기사들을 마치 보편적 민심인양 내보내고 있다. 이제는 민족의 명절인 추석마저 날조된 여론장사에 써먹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지경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교전 당사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전야에 잠시 전쟁을 멈추고 선물을 교환하며 정담을 나눴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는 옛말을 새겨듣고 기성정치권과 제도언론인 종사자들이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만큼은 제발 신문장사와 정치자영업을 위한 지긋지긋한 민심타령을 잠깐 그만 두었으면 한다. 역지사지해보자. '강남에만 추석이 있다'는 제목의 조악한 유인물이 대한민국 경향각처에 수백만 장씩 살포된다면 강남에 살든 강북에 살든 기분이 좋겠는가.

* 필자는 [우리들의 비밀암호 : 노무현을 부탁해] (도서출판 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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