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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건희를 얼마나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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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적 성향과 이건희에 대한 호의적 시각넘어 사회적 화두삼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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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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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05/03/29 [1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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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과 ‘규칙’의 문제에 대한 소로스의 항변
“우리의 도덕관념이 지나치게 돈을 잣대로 성공을 따지는 풍조로 인해서 위태로워지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소위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사회를 위기로 몰 수도 있으며, 이같이 잘못된 생각은 오늘날 어떤 전체주의 이념보다 큰 위협이다.”
어느 성직자나 시민운동가나 지식인의 말인가? 아니다. 일부 사람들로부터는 ‘자본주의의 악마’라는 욕을 먹기도 하는 세계적인 환투기 자본가 조지 소로스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공공사업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자선가이기도 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문명비판가이기도 하다. 그거야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한 일종의 ‘쇼’ 아니냐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소로스는 자못 진지하고 심각하다.
소로스는 최근엔(2004년 1월 현재-편집자)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극단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부시의 낙선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나섰다. 그는 『미 패권의 거품』이라는 제목의 저서도 준비하고 있다는데, 그는 이 책에서 “현재 미국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오류로 가득한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이라며 “이로 인해 생산되는 폭력의 그물 속에 인류가 갇혀 있다”고 부시 행정부를 공격할 것이라고 한다.
소로스는 자신의 환투기 행각에 대해선 ‘시스템’과 ‘규칙’을 들어 항변한다. 그는 90년대 중반 영국인들이 “우리가 세금으로 바친 돈을 소로스가 가로채 갔다”고 분개하자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 몫이 됐을 것”이라고 대꾸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시스템과 규칙의 문제인 것이지 그 시스템과 규칙에 따라 돈을 번 자신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환투기를 필요악으로 본다. 나는 규칙 안에서 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규칙이 깨지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규칙을 만든 자들의 잘못이다. 나는 합법적 참여자일 뿐이다. 나의 이런 소신은 매우 건전하고 정당하기 때문에 나를 투기꾼이라고 불러도 한치의 거리낌없다. …… 투기꾼이 돈을 번다는 것은 곧 당국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나 하는 자기 성찰을 도외시한 채 투기꾼들더러 밤길을 밝혀 달라고 하는 식인 것이다.”
재벌로의 ‘권력 이동’, 소로스 수준이나마의 기업가를 기대할 수는 없나
지금 ‘소로스를 위한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소로스의 수준이나마 시스템과 규칙의 문제를 제기하는 기업가를 기대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꺼낸 이야기다. 그런 문제 제기는 기업가로서 주제넘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이미 깊숙이 진행된 ‘권력 이동’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은 재벌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우리는 여기서 “나머지 모든 그룹들을 합한 것보다 강하다”거나 “좋든 싫든 삼성을 빼놓고는 한국 경제를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말을 듣고 있는 삼성의 총수 이건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삼성그룹 전체 매출액은 137조 원, 세전이익은 15조 원이었다. 매출액은 2004년 정부예산 117조 5천억 원보다 20조 원 가량이 많으며, 이익은 2003년 전체 상장기업이 거둔 이익의 61%를 차지한다. 삼성그룹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7%, 2003년 국내 수출총액의 20%, 전체 상장기업 세전이익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엄청난 파워다. 그런데 이건희는 자신의 그런 파워 또는 위상에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1등 기업론’을 외친 이건희는 과연 모든 면에서 1등을 추구하는 건가? 대선자금 문제는 어떤가. 재벌들은 대선자금 실체 규명을 외면했다. 『한국일보』 기자 황상진은 검찰의 장기간 계좌추적과 관련자 조사를 통해 기업의 치명적 약점들이 검찰에 노출되는, 기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상황이 그렇다면 ‘1등 기업’ 삼성이 먼저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권의 압력성 요청에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면 누구의 요청으로 어떤 돈을 얼마나 줬는지, 불법적인 돈은 없었는지 전모를 공개해 기업들의 ‘고해성사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국민적 사면을 구해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앞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정치인은 이름을 공개하고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라도 낼 때마다 국민에게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그러면 불법적인 정경유착의 사슬이 끊어지고 정치개혁의 첫 단추가 끼워지지 않을까.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에 ‘1등 기업’ 삼성에게 요구되는 책무 아닐까.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단상(斷想)이다.”
이건희를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면에선 이건희와 삼성은 대단히 소심했다. 8년 전 베이징에서 한국 정치를 4류로 폄하한 발언을 한 적이 있는 이건희가 그런 면모를 보인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12월 25일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기업호감지수는 100점 만점에 38.2로 나타났다. 기업 또한 4류가 아닌가.
이건희는 10년 전에 ‘신경영론’을 들고 나왔고, 최근엔 ‘천재경영론’과 ‘2만달러론’을 들고 나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노무현의 ‘2만달러 성장론’도 사실 이건희의 것을 베낀 게 아닌가. 그렇게 앞서가는 이건희가 왜 어떤 경우엔 꽁무니를 빼려고 애쓰는 건가?
나는 이건희를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는 이건희의 실제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걸 양지로 드러내놓고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또 이건희에겐 일개 그룹을 넘어서 적어도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규칙, 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발언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재벌 총수들을 비평과 비판의 사각지대로 남겨놓고 유력지들이 그들에 대한 홍보성 기사만 양산해내는 지금과 같은 풍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경영 및 경제학자들이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면 다른 분야의 사회과학도들이라도 그런 작업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국가주의적 성향과 이건희에 대한 호의적 시각
이건희는 소로스처럼 욕을 먹는 기업가는 아니다. 한국에서의 평판만 놓고 보자면, 이건희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무슨 조사만 했다 하면 늘 이건희가 1등이다. 다른 건 다 제쳐놓더라도 ‘무노조 경영’과 ‘편법 상속’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희가 늘 존경받는 기업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세계속의 한국경제’라고 하는 국가주의적 성향의 산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와 관련, 전인권의 명저인 『남자의 탄생』을 읽다가 다음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1966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꺾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에 오른 일이 있었다. 당시 그것은 2002년의 월드컵 4강처럼 국가의 위상을 높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날은 아버지 친구인 유승근 아저씨도 우리 집에 오셨다. 15라운드 사투 끝에 김기수 선수가 ‘이겼다!’라는 판정이 내려지자, 아저씨는 약간 울먹이면서 ‘여보게.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세계 챔피언이 탄생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 역시 감격한 듯 ‘정말 기분 좋은 일이군. 우리 나가서 한잔하세!’라고 말하며 아저씨와 함께 집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우리는 ‘세계속의 한국’에 굶주려 왔으며, 그런 성향은 여전하다.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세계시장에서 잘만 싸워준다면 국내에서야 무슨 흠이 있건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고 보는 한국인들의 지극한 애국심이 이건희에 대한 그런 호의적 시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발 잘하는 기업 발목이나 잡지 마라”
이는 『한겨레』가 2003년 10월 27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삼성의 빛과 그늘」 기획기사를 실은 것에 대해 네티즌들이 찬반 양론을 벌인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잘하는 기업 발목잡지 말라는 비판들도 적잖았는데, 다음과 같은 항변이었다.
“이제 이런 기사류는 없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사야말로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 기자의 편협된 사고방식이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져온다. 이젠 ‘재벌=나쁜 놈’ 등식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은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삼성이 미쳤다고 이런 땅에다가 엘시디 공장과 반도체 공장을 지어 욕먹어 가면서 죽어라 수출하겠는가. 스스로 피나게 개혁해서 이룬 세계 1위의 반도체기업이란 걸 인정해줘야 한다. 제발 잘하는 기업 발목이나 잡지 마라.”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기준 비슷하게 운영하는 회사이고 그 저변에는 냉철하고 혜안 있는 수뇌가 존재하는 회사로, 그나마 대한민국을 안 망하게 해온 기반이다.”
반면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았다.
“직원들에겐 청렴을 요구하고 적은 지분의 오너는 마음대로이고 마누라만 제외하고 다 바꾸자고 하면서 직원들의 자율적인 노조 설립은 폭력적으로 무력화시킨다. 자신 있으면 노동조합을 만들든 말든 자율적으로 맡기지 무슨 왕국인지 오너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집단이다.”
“삼성은 편법상속이나 삼성자동차 부채, 비합리적인 경영구조, 노조 탄압 등의 반칙을 털어버리고 진정한 대표선수로 거듭나라. 국가대표급 기업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쳐야 한다.”
날로 치열해지는 생존경쟁과 이건희에 대한 평가
한국적 풍토에서 과연 기업이 정정당당하게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삼성과 이건희를 ‘한국’이 아닌 ‘세계’의 관점에서 긍정 평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생존경쟁도 이건희에 대한 평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른바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1) 현상을 생각해보라.
1) 20대 태반이 백수, 38세도 선선히 퇴직, 45세 정년, 56세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 | |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10월 19일자는 <경쟁적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권력을 위한 몸치장>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남자들의 화장을 다뤘다. 한국에서 남성 메이크업 화장품이 출시 6개월 만에 400만 달러(약 48억 원) 이상 판매되면서 남자들의 화장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좀 과장된 보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의 생존경쟁은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이색적이다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최근(2004년 1월 현재-편집자) 우리 사회 일각을 강타한 ‘10억 만들기 신드롬’은 무얼 말해주는가. 10억 자 들어간 각종 재테크 책들이 앞다투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10년 안에 10억 만들기’ 인터넷 카페 가입 회원수만 1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0억이건 1억이건 큰돈을 모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한 젊은이들에게 재벌 총수는 그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겠는가!
언론의 미화(美化)
언론의 미화(美化)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두 번 연이어 이건희를 다룬 『뉴스위크』지를 잠시 음미해보기로 하자.
『뉴스위크』 2003년 연말 특별호는 이건희를 영향력 있는 세계 경제인 8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이는 국내 언론에 <이건희 회장 세계경제 파워 8인에> 등과 같은 기사 제목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이런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세계경제 파워 8인’이라는 말에서 진한 애국심을 느꼈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전, 『뉴스위크』 아시아판 2003년 11월 24일자 커버스토리가 이건희를 ‘수도자적 경영인’으로 묘사하며 “그가 이끄는 삼성이 한국 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칭찬하였다는 내용으로 국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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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박사, EBS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않는 양문석 정책위원. ©대자보 | 그런데 전국언론노조 정책위원 양문석은 <대자보> 2003년 12월 1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hermit을 ‘수도자’로 번역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뉴스위크』엔 부정적인 내용도 있었는데 그건 국내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이런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중앙일보』는 ‘지면 사정’ 때문인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기야 제목 번역을 ‘수도자적 경영인’이라고 해놨으니, ‘종업원들에게 절대충성을 요구하는 수도자’, ‘정치인에게 뇌물 주는 수도자’, ‘세습경영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 전투를 수행 중인 수도자’가 어찌 어울리겠는가.”
이런 외신 보도가 시사하듯이, 한국 언론, 특히 보수 신문들의 이건희 보도는 미화(美化)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이제 이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재계 대통령’ 이건희의 ‘오빠부대’
보수 언론은 대통령에겐 대단히 사납지만 ‘재계 대통령’이라 할 이건희 앞에선 ‘순한 양’과 같다. 이건희의 막강한 권력과 재력 때문일까? 거기에 혼맥과 각종 연고 등과 같은 지배 엘리트의 네트워크 파워가 가세했기 때문일까?
이건희가 ‘천재경영론’을 들고 나왔을 때에도 보수 언론은 이건희의 이론을 차분하게 평가해주기보다는 노골적인 찬양 경쟁을 벌이기에 바빴다. 『기자협회보』 2003년 7월 2일자에 실린 <동아ㆍ조선, 이건희 시리즈 경쟁 ‘천재경영론’ 노골적 미화 지적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잘 지적했듯이, 두 신문은 이건희의 ‘오빠부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이건희 회장 시리즈는 ‘한 명의 천재 10만 명 먹여 살린다’, ‘천재란 공부 100점 아닌 상상력 100점짜리’, ‘경영은 사람으로 꿈을 만드는 종합예술’(『동아』), ‘세상변화 아무리 빨라도 천재 키우면 안 두려워’, ‘지나친 평등주의가 수십만 명 먹여 살릴 천재 못 키우게 한다’(『조선』) 등 ‘인재론’에 대한 분석보다는 이 회장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일방적으로 이 회장의 ‘천재경영론’을 미화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을 사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실제 ‘서면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지나친 경쟁의식에 의해 성급하게 기획이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조선일보』에서 인터뷰 요청과 함께 자료를 요구했으나 『동아일보』에 이미 자료를 준 상태였기 때문에 거절했다’며 ‘『조선일보』에서 서면 질의를 보내오기는 했지만 별다른 답변은 하지 않았다. 기존에 나왔던 내용을 토대로 기사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건희 회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 회장의 인재 철학을 상중하로 나누어 싣는다”고 밝혔지만, 이게 거짓말임이 들통난 셈이다. 이건희의 주장에 감동을 먹은 탓인지 아니면 삼성의 광고력에 눈독을 들인 탓인지 그건 분명치 않지만, 한심하다고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보수 언론은 왜 이건희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가?
다시 묻지만, 조동(조선-동아)은 대통령에 대해선 모든 걸 발가벗기겠다는 듯 과잉 해부와 비판을 일삼는 ‘사나운 하이에나’를 자처하면서, 왜 ‘재계 대통령’이라 할 이건희에 대해선 그렇게 ‘온순한 양’이 되는 건가?
전국언론노조 정책위원 양문석은 <대자보> 2003년 11월 10일자에 쓴 <검찰과 수구언론 그리고 삼성의 성역화작업>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10월 27일 참여연대는 삼성 편법상속과 관련해 검찰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역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일하게 『한겨레』만이 ‘참여연대의 공개질의서’를 보도한다. 그리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삼성그룹 사내에서의 사이트 차단조치’까지 당하면서도 삼성의 이재용 편법상속을 집요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28일에 이들은 자체 기사로 인터넷판에 ‘참여연대의 공개질의서’ 관련보도를 올려놓았다. 상당히 의외였다. 그 동안 ‘연합뉴스’를 전재해서 올리던 재벌관련 비리 사건을 이번에는 자사 기자 이름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29일자 신문지면에서는 이들 기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일부 언론은 이미 광고주 특히 ‘재벌의 시녀’로 전락한 지는 오래다.”
보수 신문은 왜 그러는 걸까? 앞서 시사한 바와 같이,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광고 파워’가 만만치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미디어오늘』 2003년 11월 5일자에 실린 <광고주 접대시대 긴급점검: 경영난 심화 … 광고주 관리 ‘특명’>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보라. 언론사와 광고주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가운데 광고주가 실세이며, 언론사들은 광고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잘 묘사돼 있다.
그래서 보수 신문은 감히 대재벌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삼성생명 해고노동자 80여 명이 22일째 단식투쟁을 벌여도 이는 보수 신문들에 단 한 줄도 실리질 않는다. 다음과 같은 기사는 대재벌의 광고를 아예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연연치 않는, 아주 작은 주간 신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5년 동안 복직 투쟁을 계속해 오고 있는 80여 명의 삼성생명 해고자들이 3일 현재 22일째 집단으로 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나 이들은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건희와 삼성은 보수 신문들의 건강성을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형평과 균형을 좋아한다. 2003년 12월 『헤럴드경제』의 기자인 김성홍과 우인호가 쓴 『이건희 개혁 10년: 삼성초고속 성장의 원동력』(김영사)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자들의 관점은 다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이건희는 위대한 기업인이고 삼성은 위대한 기업이다. 거대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어리석은, 아니 나쁜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건희와 삼성의 장점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지나친 과장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 책의 띠 표지엔 다음과 같은 큰 활자들이 박혀 있다.
“왜 세계는 삼성을 주목하는가? 왜 우리는 삼성을 배워야만 하는가?”
『뉴스위크』 2003년 11월 24일자에 실렸다는 글도 크게 박혀 있다.
“삼성은 한국 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다. 경제위기를 온전하게 극복해낸 삼성은 한국 기업의 모델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진술들은 사실인가? 언론이 그걸 검증하면서 냉정한 평가에 임하는 것이 이건희와 삼성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게끔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언론이 이건희와 삼성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건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걸까? 이건희와 삼성은 보수 신문들의 건강성을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 본운 월간 <인물과 사상> 2월호에 실린 것으로, 웹진 <인물과 사상><www.inmul.co.kr)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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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29 [13:06] ⓒ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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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내다 2005/08/04 [17:55] 수정 | 삭제
- 아웃사이더 2005/05/05 [10:54] 수정 | 삭제
- 그물에 걸린 바람 2005/04/05 [13:09]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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