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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키스를 하다!
[바라의 장애없는 세상] 장애인부부의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
 
이훈희   기사입력  2005/01/19 [16:26]
한 장애인이 매일 밤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해주십시요"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무려 36년이 흘러서야.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AI]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하는 꼬마 로봇 데이빗의 기도,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가 떠오른 그의 간절한 기도. 
 
아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나서
 
한국 뇌성마비 독립생활 공동체인 어우러기의 이사를 맡고 있는 이동석(38세, 뇌성마비 1급) 씨와 아내 봉상희(31세, 정신지체 2급) 씨는 문자 그대로 신의 뜻이 이루어져 결혼에 성공한 사례다. 올해 결혼 1년 7개월차인 이 두 부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 부부. 
 

▲이동석 씨와 봉상희 씨의 다정한 모습     ©이훈희
 
결혼에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냐는 질문에 대해 동석 씨는 상희 씨를 보고 웃기만 한다. 대신 입을 연 상희 씨. “제가 졸졸 따라 다녔어요” 이렇게 ‘졸졸’ 따라 다닌 지 3개월만에 결혼을 했다는 상희 씨는 아직도 웃을 때마다 하얀 잇몸을 드러내는 수줍은 아가씨였다. 게다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창고에 보관된 유화로 그린 작품들을 보여주었는데 겉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요즘은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등 책 출간을 서두르고 있는 동석 씨는 공모전에서 받은 상장만 해도 수십여 장. 20살 때 처음으로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독학하여 지금은 어엿한 장애인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자랑하는 그이지만, 지난한 과거 삶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자립 생활
 
20대 초반에 서울에 올라와 영등포 시장에서 테이프를 파는 등 노점상을 하기 시작한 동석 씨는 자신의 말에 따르면, “앉은뱅이 신세에 돈도 없어 육교 밑에서 잠을 자는‘ 끔찍하게 빈궁한 생활을 통해 장애인을 위해 이 사회구조가 변해야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럭저럭 돈을 조금씩 모아 월 20만원에 기거한 여인숙 생활.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심지어 밥도 해먹을 공간이 없어 빵을 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데.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았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방을 구하러 다녔지만 거절당하기만 수차례. 또 겨우 겨우 방을 옮겨도 이번에는 연탄보일러가 설치된 방이라 겨울에는 찬 물에 세수하며 살아야 했는데. 그래서인지 동석 씨는 기름보일러가 설치된 방에 이사를 갔을 때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펄펄 끓는 물에 등 지지고, 세수를 하는 황홀함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면서.
 
이런 그에게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구조는 다시 한 번 뒤통수를 쳤다. 2001년 영등포에서 일을 끝낸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리프트를 탄 순간 리프트가 고장나면서 휠체어 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그것.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은 동석 씨. 하지만 지하철 공사측은 “장애인이 자살을 하려고 했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던 동석 씨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씨에게 탄원서를 올리는 등 몸이 성치 않음에도 리프트 사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지하철공사측은 결국 잘못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장애인이 직면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 정책
 
시를 잘 쓰는 동석 씨의 모습에 반하여 적극적으로 구애했다는 상희 씨는 “오빠만 내 옆에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라면서 처음부터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웃음이 끝나기도 무섭게 “이 방이 너무 좁아서 오빠가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턱도 높고, 방도 좁고”라고 말해 장애를 가진 몸의 조건을 도외시하는 임대 아파트의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시를 잘 쓰는 동석 씨의 모습에 반하여 적극적으로 구애했다는 상희 씨     © 이훈희
 
이 말에 덧붙여, 동석 씨는 그 동안 속에 묻어 왔던 말들을 꺼집어냈다.

“우리 같은 장애인들에게 먹고 사는 일은 가장 큰 문제예요. 그렇지만 수급권자가 되면 하물며 밖에서 노점을 하며 푼돈을 버는 것까지 공무원들이 참견하며 못하게 해요. 하루 종일 찬 바람을 맞으며 테이프를 팔아봐야 한 달에 30만원 벌이밖에 안 되지만, 그것도 우리에겐 아주 큰 돈이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정부에서 나오는 돈 갖고는 미래를 위한 저축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혹시 아프기라도 한다면 누가 책임질 수 있나요. 이러한 우리의 두려움을 누가 들어보려고 하나요?”
 
성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주의로 풀어내야 ...
 
▲성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주의로 풀어내야...     © 이훈희
지난 9월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있은 장애인을 위한 성 향유를 위한 아카데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두 사람은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문제의식을 털어 놓았다.
 
“제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건 서른살 때였어요. 비장애인이 보기엔 그저 놀랍겠지요. 이 놀라운 일들이 제겐 일상적이고 저의 장애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제게 성이란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사회복지기관들과 장애인 정책 입안자들은 장애인의 성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장애인 중심이 아닌 전문가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당사자간에 동료상담을 통해 성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제는 성 문제에도 장애인 당사자주의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의 참 멋있는 부부
 
살아가는 모습이야 보통 부부들과 다른 게 조금도 없는 두 사람. 어쩌다가 부부싸움도 하고, 화해한 후에는 사랑스럽게 뽀뽀를 하며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는 동석 씨와 상희 씨의 삶은 장애인이 결혼과 자립을 통해 지역사회에 흡수된 이후에도 여전히 구조적인 많은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아이를 어떻게 낳을 것인가, 아이 양육과 교육을 위한 활동 보조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등등 앞으로 몸으로 부딪히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는 많기만 하다.
 
▲프렌치 키스보다 더 멋진 포즈로...     © 이훈희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가슴과 가슴은 두꺼운 얼음도 녹일 뜨거운 사랑과 냉철하고 비판적인 사고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장애인 해방에 대한 열정이 씨줄 날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누가 우리 시대의 참 멋있는 부부를 손꼽으라면 동석 씨와 상희 씨는 맨 첫째 줄에 이름이 적혀 있을 게 분명하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장애인 권리 반드시 쟁취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기에.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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