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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자결한 민영환, 역사에 묻힌 하인
[책동네] 전직기자 오동명의 '불멸의 제국', 1905년 을사늑약 새롭게 해석
 
김철관   기사입력  2021/03/15 [13:32]
▲ 표지     ©


 “19051130일 새벽 6, 민영환이 자결한다. 그날 빈소 밖 마당 한쪽 구석에서 온종일 혼자 있던, 민영환의 집 하인이 있었다. 그는 그날 밤 가까운 경우궁 뒷산으로 올라가 목을 맨다. 이 죽음은 기껏 역사의, 그것도 극히 일부 역사책에 한 줄로 남았을 뿐이다.”

 

<중앙일보> 전 기자인 소설가 오동명 작가가 쓴 대하역사소설 <불멸의 제국>(말글빛냄, 202012)의 첫 도입 부분의 내용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있던 당시를 소설화한 <불멸의 제국>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픽션을 가미했다. 그럼 소설의 실제 주인공인 민영환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다 이미 대세가 기운 대한제국을 보면서 자결을 선택한 인물로 역사는 그를 그리고 있다. 민영환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 그의 인력거꾼인 하인은 역사책에 한 줄정도 남은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저자가 임의로 설정한 인력거꾼(당시 일본말, 진리키샤)인 동오는 동학을 통해 당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고 있던 인물이었다.

 

내용 속으로 들어가면 주인(민영환)과 하인(동오)이 나눈 잔잔 대화를 통해, 신분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상상들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민영환은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민 씨 집안에서도 가장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탄압한 장본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그의 하인 동오는 동학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된 인물이다.

 

민영환이 자결하기 20일 전, 19051110일 오전 1159분 이토 히로부미가 궁중 가마를 타고 한성 정동거리에 나타난다. 백성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 저자가 우리 조선을 살릴 거래라고, 한 백성이 말을 한다. 곧이어 또 다른 백성이 말을 잇는다.

 

무슨 소리야? 조선을 살리다니? 이 땅에 전쟁을 일으키고 제 나라 사람들을 우리 땅으로 보내 우리 것을 죄다 빼앗아가고 있는데, 듣자 하니 저자가 그 일본의 우두머리라는군. 그러니까 유식하게 문자를 쓰면 두목이라는 거지, 우리 것을 훔치러온 일본의 생도적 두목이라는 말이오.” - 본문 중에서

 

바로 이 소설의 시발(始發)점이다. 중전(황후 민비)을 일본의 자객들에게 잃은 이후, 이토를 만난 고종, 하지만 사과는커녕 이토는 일본 폐하의 명을 수락해 달라고 고한다. 한 마디로 조선을 일본으로 넘길 것을 빨리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치미는 화마저도 참고 한숨 섞인 탄식만을 한다. “이제 나라가 망했구나.”

 

소설은 민영환의 일상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인력거꾼들이 자주 모이는 장충단을 잠시 소개한다.

 

고종의 명을 받아 민영환이 오년 전 장충단을 세웠다. 장충단은 왕후 민비가 살해될 때 함께 순사한 희생자들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낸 곳이다. 임오군란으로 민영환의 아버지 민겸호가 군인들에게 처참히 죽었고, 갑신정변 때도 민태호, 그의 양아버지 등 민 씨 일가가 죽임을 당했다. 이들도 배향하게 했다. 장충단을 세울 때 고종이 민영환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주인인 영환이 생각하는 장충단과 하인인 동오가 생각하는 장충단은 사뭇 달랐다. 세도가인 영환은 가족 등 권력의 제단이었고, 동학도인 동오는 백성을 모시는 재단이어야 했는데, 완전히 백성을 배제한 제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영환 등 충신들이 여기저기서 고종 임금에게 을사오적을 처단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다. 하지만 고종은 상소한 자를 옥에 가둔다. 고종은 만나주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 덕수궁 대한문에서 엎드려 을사오적을 처단하라고 고한 민영환과 조병세를 평리원에 잡아가둔다,

 

평리원에서 풀려난 민영환은 하인 동오에게 단도 하나를 구해달라고 명한다. 영문도 모른 동오는 수군문 밖 대장간에 가서 예리한 칼 한 자루를 구한다. 19051129일 오후 652분 평리원에서 풀려난 민영환은 달려오는 동오를 보고 이젠 너를 부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오는 종이에 싼 단도를 안주머니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영환에게 준다.

 

집에 도착한 영환이 따라온 동오를 개의치 말고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동오는 난생 처음 있는 일이기에 주춤하며 어쩔 줄 모르며 방으로 들어간다. 앉은뱅이책상에서 대감을 마주 보고 앉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잠시 대감과 나는 같은 인간이고 사람으로 대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학은 이렇게 동오를 일깨웠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오래 전 중국으로부터 수정이나 비판 없이 무조건 이어 받아온 가르침으로 이에서 벗어나 우리의 가르침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수심정기이다. , 마음을 잃지 않고 기운을 올바로 세우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 나라는 존재를 알게 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사람이라 했다. 사람이 다를 수 없다고 했다. 나를 내가 정함은 도()로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인의예지는 중국에서의 사대요. 조선 안에서의 통치수단으로 백성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왔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영환의 앉은뱅이책상 앞에 선교사 헐버트가 쓴 <사민필지>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동오에게 사민이 무엇이겠느냐라고 묻자, “백성으로 사농공상의 모든 백성을 한 마디로 쓴 듯하옵니다라고 답변한다. 영환이 평민만을 뜻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동호의 답변이 이어진다.

 

모든 국민이 다 평민이올 테니 평민 역시 모든 백성으로 사료됩니다. 평민을 특정 집단으로 가르는 것은 아마도 정치로 구별하려는 인간의 규정이기에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같다고 함에는 어긋난 점이 있사올 듯합니다.” -본문 중에서

 

민영환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탄압한 장본이기도 하다. 그 후 10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민영환에 초점을 맞춰, 저자가 대화역사소설로 그를 재조명을 했다고나할까. 하인과 대화에서도 나타나듯 민영환은 실제 변하고 있었고, 끝내 자결로써 마지막 저항을 한다. 그럼 변하게 한 건 무얼까. 두 번의 걸친 장기간의 외국사찰이 그를 변하게 한 주원인으로 풀이 된다.

 

<불멸의 제국>의 내용 속에서도 미국, 러시아 등 외국을 둘러본 상황들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하인이 변화해 가는 과정은 동학에서 배운다. ‘시천주’, ‘사인여천등을 깨닫게 한다. 조선 500년 동안 성리학으로 세뇌된, 태어남에서부터 차별이 있다는 것, 누군 양반으로, 누군 상놈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에 누구나 같은 하늘님을 모실 수 있고,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하니, 엄두도 못 냈던 희망이란 걸 하인이 품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 치하의 독립을 꿈꾸고 있었고, 19051130일 시차를 조금 달리하며 끝내 죽음(자결)로서 생을 마감한다.

 

▲ 소성가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     ©

 

저자 오동명은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제일기획, <국민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했다. 한국기자상(출판부문, 1998), 민주언론시민언론상(특별상, 1999) 충남대와 전북대에서 저널리즘 강의를 했다. 현재 전북 남원 지리산 아래 시골에서 아이들과 놀며 책 읽기하며 지내고자, 시골집을 개조해 서당(또바기학당) 비슷한 것을 손수 만들어가고 있다.

 

 저서로 <사진으로 세상읽기>, <부모로 산다는 것>, <자전거 텐트 싣고 규슈 한바퀴>,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사진집 <사랑의 승자>,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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