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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도쿄올림픽에서는 무슨 메달 딸까?
[김병윤의 축구병법] 파란만장한 한국축구 올림픽 도전, 도쿄올림픽 진격한다
 
김병윤   기사입력  2020/02/18 [15:40]

                


1948년 런던올림픽 멕시코와의 개막 경기에서 당시 한국 대표팀 주장인 고 김용식 선수가

  경기전 코인토스를 지켜보고 있다.

 

세계최초 11번째 올림픽 무대서는 한국축구

 

한국축구가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대회 사상 첫 전승 우승과 함께, 도쿄올릭픽 본선 출전 티켓까지 거머쥐며 올림픽 본선 무대에11번째 서는 세계축구 최초 국가로 우뚝섰다. 그렇지만 올림픽 본선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고 이에 한국 축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따내기까지 무려 6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만큼 한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사는 '험난'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

 

한국축구의 올림픽 첫 도전은 1948년 런던올림픽이었다. 한국은 해방 후 안정되지 못한 어수선한 정세속에서 곧바로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하여,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리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국적으로 출전했던 만38세의 김용식(1910~1985)을 앞세워 올림픽 무대에 섰다. 그러나 한국은 본선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8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지만, 8강에서 스웨덴을 만나 0-12의 대패를 당하는 고난의 세계무대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한국은 지역 예선전이 없었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6.25 전쟁으로 인한 경비 부족으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으며, 지역 예선이 처음 도입된 1956년 멜버른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는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이 한.일관계 악화로 정부가 일본의 방한을 불허, 일본 도쿄에서 1, 2차전(0-2, 2-0) 모두 개최되어 1승 1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한국은 당시 규정인 추첨에 의하여 패배를 당하는 아픔을 맛보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회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한국은 1960년 로마 올림픽 출전에 사활을 걸어 1차 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대만과 최종 2차전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대만이 1956년 멜버른올림픽 아시아 예선 일본과 같이 한국의 4.19를 이유로 방한을 거부 결국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은 1, 2차전 모두 대만에서 개최 한국은 1차전에서 승리(2-1)를 거두며 본선행을 눈 앞에 뒀으나, 2차전에서 페널티킥 판정 문제로 심판에 항의하다 몰수패를 당해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국축구는 이 같은 시련속에 16년 만인 1964년 일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 세계축구에 또 다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랍공화국 0-10, 브라질 0-4, 체코슬로바키아 1-6로 대패를 당하면서 3전 3패(1득점, 20실점)의 성적으로 참가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두 번의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여 종합전적 1승 4패를 기록하며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한 한국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과 치열한 접전끝에 골대 불운이 겹치며 3-3으로 비겨 4승 1무로 동률을 이루는 아쉬움 속에 골득실차로 일본에게 본선행을 내주고 말았다. 이어 한국축구는 멕시코 올림픽 지역 예선의 악몽이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도 재현되며 땅을쳤다. 홈(구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한판 승부에서 한국은 전.후반 내내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고도 아마드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 결국 0-1로 무릎을 꿇으며 본선 진출은 꿈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 군림하던 한국은 이후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쉼 없이 본선 무대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5회 연속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며 암흑기에 빠진 한국축구에게 1988년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24년 동안 올림픽 지역예선 탈락의 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발전을 위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국 자격으로 안방 무대에서 한국은 총력전을 펼쳤지만, 조별리그에서 소련과 미국에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아르헨티나에게 1-2로 석패하며 2무 1패로 8강 진출이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봤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한국축구에게 3번의 올림픽 도전에서 맛본 쓰라림에 희망을 안겨주는 올림픽이었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일본과 대결 후반 종료 1분을 남기고 극적인 1-0으 승리를 거두며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한국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 첫 경기 모로코 1-1, 파라과이 0-0, 그리고 스웨덴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쳐, 3경기 모두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유일하게 패배를 기록하지 않는 선전으로 3번의 올림픽 본선에서 거둔 종합전적 1승 2무 5패 성적을 일신하며 한국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은 한국축구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가져다준 올림픽으로 남는다. 먼저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던 소련(현 러시아)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74) 감독을 영입하여, 지역 예선을 통과한 후 본선에서 가나를 1-0으로 잡는 기염을 토하며 올림픽 도전 48년 만에 2승째를 챙기는 감격을 맛봤고, 이어 멕시코에게는 0-0 무승부로 1승 1무를 기록 올림픽 도전 첫 8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탈리아에게 경기막판 뼈아픈 결승골을 얻어맞고 1-2로 분패하며 8강 진출의 염원은 풀지 못했다.
 
한국축구의 올림픽 도전사에서 큰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쓴 대회는 바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다. 4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이천수(39.인천 Utd 전력강화실장)가 올림픽 출전 사상 첫 퇴장을 당하는 레드카드 악재속에서도 모로코와 칠레에게 모두 1-0으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첫 경기 스페인에게 당한 0-3 패배가 발목을 잡아 한국은 골 득실에서 밀려 본선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인 2승1패를 기록하고도 또 다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대회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한국 U-23
    대표팀 김학범 감독과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8강, 동메달 역사 쓴 한국축구 도전속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한국축구 능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대회였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통틀어 8전 8승 12득점에 무실점 전승으로 마침내 예선을 통과했다. 이는 한국축구의 세계대회 도전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는다. 이와같은 뛰어난 성적으로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한국은 개최국 그리스와 대전 경기초반 김치곤(37.울산 현대)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전끝에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후 또 다시 만난 멕시코를 1-0으로 제압 8강 진출의 청신호를 밝혔고 8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말리와의 경기에서는, 극적으로 3-3으로 무승부를 기록 1승 2무로 한국은 그토록 염원하던 8강 진출에 성공하며 새역사를 썼다. 그러나 4강 문턱에서 파라과이를 만나 2-3으로 분패해 사상 첫 메달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축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강 진출의 영광을 무색케 하는, 카메룬 1-1, 이탈리아 0-3, 온두라스 1-0 등 종합전적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조 3위를 기록 8강 탈락의 쓴맛을 본 한국은, 드디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 값진 성적으로 세계축구에 한국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홍명보(51.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올림픽 대표팀은 본선 무대에에서 질긴 인연을 가진 멕시코를 상대로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2차전에서 스위스를 2-1로 잡고 마지막 가봉과는 0-0으로 비겨 1승 2무로 8강 진출에 성공, 8강전에서 개최국 강호 영국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승부차기 끝에 5-4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세계축구의 영원한 강자 브라질을 상대했지만 한국은 브라질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0-3으로 완패, 결국 3~4위전으로 밀려났다. 동메달 결정전의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한국은 급기야 일본을 2-0으로 제압하며 그토록 염원하던 메달인 동메달을 목에 거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는 한국 축구가 1948년 런던올림픽을 통해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이후 64년만에 이룬 위업이었다.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한국축구의 2016년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은 오명으로 얼룩졌다.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을 겸한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본과 한판 승부를 벌여 한국은 완벽하게 경기를 압도하며 먼저 2골을 앞서갔지만 일본에 내리 3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해 역대 한.일전 역사상 두 골을 먼저 넣은 뒤에 역전패를 당한 최초의 경기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지만 아시아에 배정된 3장의 올림픽 티켓 가운데 1장을 차지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축구는, 본선에서 피지를 상대로 8-0 대승을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보인 후 강호 독일을 맞아 치열한 접전끝에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마지막 멕시코를 맞아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조별리그 1승 1무 1패로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 상대전적 2승 1무와 국제축구연맹(FIFA) 48위와 82위라는 우위에도 0-1 패배를 당하며 런던 신화 재현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축구는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통산 10차례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여 총 30전 9승 11무 10패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축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도입된 연령 제한 규정(U-23세 이상 3명 포함)이 도입된 이후부터 올림픽 무대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축구의 파란만장한 올림픽 도전사에서 도쿄 올림픽은 과연 어떤 역사를 쓰는 올림픽으로 남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전 군산제일고등학교축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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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8 [15: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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