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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으로 진화하는 한국의 징병제
[김종대의 안보설명서] 사고 조작과 은폐와 축소는 미필적 살인, 근절해야
 
김종대   기사입력  2014/10/04 [00:20]

 ‘관심 병사’라는 이데올로기

 

20대가 문제라고 한다. 오찬호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 ‘차별’이라는 키워드로 20대를 분석한다. 이승욱과 김은산은 『애완의 시대: 길들여진 어른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자화상』에서 ‘애완’이라는 키워드로 다른 분석을 한다. 이런 분석들은 대체로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20대를 바라본 ‘낯선’ 인식의 산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기성세대들은 20대를 괴물로 인식한다. 실제로 20대를 괴물로 만든 건 그들 자신이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왜 자신의 배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괴물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를까? 실제 괴물은 20대가 아니라 그 부모들이 아닐까?

 

그런 인식이 드러난 사례는 최근 문제가 불거진 병영이라고 할 수 있다. 8월 7일자 신문들은 심리 이상자 2만 6,000명이 입대한다며 대서특필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육군 병사의 7.2퍼센트가 심리 이상자다. 육군 1개 사단의 병사 인원을 1만 명이라고 한다면 순수하게 심리 이상자로 구성된 사단을 편성해도 2.5개 사단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관심 병사가 8만 811명, 즉 육군 병사의 23퍼센트에 달한다는 보도다. 관심 병사로만 사단을 편성해도 8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국군 병영은 완전히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가 있는 한두 명이 수십·수백 명의 조직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게 완벽성을 요구하는 군대 조직의 속성이다. 그런데 군에 이렇게 많은 문제 병사가 있다면 이미 죽은 조직이다. 이뿐인가? 매년 2~3만 명에 달하는 입실 환자, 7,000건에 달하는 범죄자까지 추가한다면 한국군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요, 교도소이며 부랑자 집단이다. 그런 군대라면 벌써 망했어야 한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최근 병영에서 참혹한 사고가 문제시되자 입대하는 20대 병사들을 비정상 집단인 것처럼 묘사하는 행태다. 20대를 신체 허약하고, 개인화되고, 게임에 중독되어 심리 상태도 이상해 보이는 괴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보도들은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출범하는 날 육군이 언론에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나왔다. 그 이면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20대가 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병영 문화를 말할 때면 군의 고급 지휘관들은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문제야”라며 탄식한다. 그런 군 장성이 전역을 하면 지하철 타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 3성, 4성 장군쯤 되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도 거의 외우지 못하고 집 전화번호도 모른다. 누군가 항상 대신 서류를 작성해주고 전화도 대신 걸어서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휘하에 당번병이나 운전병이 없으면 커피 한 잔 제 손으로 타 먹을 줄 모르고, 시내를 나돌아 다니지도 못하는 자들이 남을 탓한다. 2007년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과연 ‘부실 병역 자원’인가?

 

8월 을지연습(국가비상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비상대비업무를 수행하는 훈련)이 있는 기간 중 합동참모본부 본부장(중장)이 준비 회의를 열었다. 한 중령이 예비군 동원과 수송 계획을 본부장에게 브리핑했다. 지하철 2호선으로 수송하던 예비군을 사당역에서 내리게 한 다음 4호선으로 환승시켜 상계역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말을 들은 본부장이 벌컥 화를 냈다. “야, 인마! 일을 이렇게밖에 못해? 그 많은 예비군이 왜 내려? 네가 철도청에 이야기해서 2호선 선로를 4호선 선로로 바로 연결되도록 하면 그 기차가 그대로 상계역으로 빠질 것 아냐? 좀 창의적으로 해 인마!” 이 말을 하고 본부장은 “일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라고 또 한 번 화풀이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중령은 거의 몸이 굳어버렸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며 중령은 생각했다. ‘본부장은 왜 저런 말을 할까?’ 그러다 번뜩 해답이 떠올랐다. 본부장은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본부장이 지적한 사항을 시정한 결과 보고는 어떡한단 말인가? 중령은 난감해졌다. 이와 비슷한 일이 군대에선 종종 벌어진다.

 

사실 20대는 멀쩡하다. 언론에서 보도된 심리 이상자라는 용어는 병리학적 개념인지, 심리학적 개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실체는 20분에 불과한 병무청 인성 검사에서 정신이상자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니 훈련소나 자대에 배치되면 심리검사를 하라고 병무청이 통보한 인원을 말한다. 병무청은 가급적 많은 인원을 심리검사 요망자로 군에 통보한다. 자신들이 다 검사를 할 수 없으니 군에서 하라고 떠넘기는 것이다.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인원은 가급적 많을수록 좋다. 물론 대다수는 멀쩡한 20대다. 언론은 이들을 심리 이상자라는 이상한 용어를 써가며 비정상으로 몰아붙였다. 관심 병사에도 이등병은 자동으로 포함된다. 게다가 편모·편부 슬하의 자녀도 들어가고, 최근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도 관심 병사가 된다.

 

그것을 문제가 있는 병사 몇만 명이 군에 있다는 식으로 현상을 진단하면 진짜 문제가 있는 병사가 누구인지 식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지금의 20대가 문제라면 옛날 한글도 모르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입대하던 시절에는 어떻게 군을 유지했는가? 두들겨 패고 글자 가르쳐주며 억지로 끌고 가야만 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군이 20대를 탓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학력도 좋고 영양 상태도 양호한 지금의 20대로 인해 군이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다. 사실 우리 군 병사들의 수준은 세계 최고다. 이렇게 대부분이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군대는 한국군밖에 없다. 미군만 하더라도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병사가 부지기수다. 반면 한국군은 영어 잘하는 전군의 통역병, 실력이 뛰어난 운전병, 컴퓨터에 능한 전산병 등 우수한 20대를 공짜로 써먹는다. 뭘 더 바라는가? 그런데도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사회에 전가하려니까 엉터리 통계로 국민을 현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통계 다음에는 으레 ‘부실 병역 자원’이라는 용어가 따라붙는다.

 

병영,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지다

 

여기서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 한 말을 들어보자.

 

“비교가 되는 것이 있다. 미군은 학력 수준이 낮은 병사들이 입대했지만 업그레이드해서 굉장히 수준 높게 활용하는데, 한국군은 학력 수준이 높은 병사들이 입대했지만 다운그레이드해서 수준 낮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했을까? 그러면서 ‘질이 낮은 병사’, ‘질이 낮은 병역 자원’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한국군 병영에 내재한 전근대성을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지금도 우리 군은 군에 적응할 수 없는 부실 자원이 대거 군에 입대한다며 스스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적응-부적응의 메커니즘을 냉철하게 진단한다면 병사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군 간부가 병사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더 크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의 20대가 어떤 세대인지 알지 못하고 지시와 명령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은 고위 장성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2014년 4월 7일 윤 일병이 사망했을 때 군이 내린 조치는 전군 가혹 행위 실태 진단과 구타 금지 일반명령 하달이다. 이런 조치에 따라 전군에 일률적·획일적인 교육이 시행되고 때마침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여파까지 겹쳐 외출·외박과 휴가 제한, 2인 이상 영외에서 행동 금지, 사단 차원의 영외 감찰 활동 강화 등이 잇따랐다. 교육하고, 윽박지르고, 금지하는 조치가 강화되니 일견 구타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병영의 스트레스 자체는 더 증가해 6월 21일 22사단에서 임 병장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군은 전군 실태 진단과 교육이라는 조치를 시행했다. 조치가 시행될 무렵인 6월 28일 휴가 나온 병사들이 부부가 함께 투숙 중이던 펜션에 침입해 아내를 성추행하고 남편을 폭행했다. 전군 실태 조사가 진행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이번에는 이등병 2명이 3사단과 22사단에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리고 7월 말에 윤 일병 사건의 진상이 군 인권센터에 의해 폭로되자 군은 8월 8일에 또 전군 인권 교육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를 비웃듯이 8월 9일에 연천에서 관심 병사가 트럭을 몰고 탈영해 민간인 차를 들이받아 5명을 다치게 했다. 이상하게 조치를 취하면 취할수록 병영은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이유가 뭘까? 스트레스가 가중된 병영에 더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병과 일병에게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한 시간을 꼽으라면 대개 아침 기상 시간이라고 말한다. 달콤한 꿈나라에서 해방감을 느낀 것도 잠시,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아침 기상 시간은 무척 고통스럽다. 화장실에서 목을 맨 것은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즉 영구적으로 잠을 연장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걸 교육이나 명령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국방부가 하달하는 교육과 명령은 또 하나의 업무 부담을 늘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스트레스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또 다른 구타와 가혹 행위, 범죄로 연결된다. 이는 병사가 군에 적응 못한 현상이 아니라 군이 병사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이 통제 위주로 병사들을 대하면 그들이 일으키는 사고와 사건은 빈발하게 된다.

 

한국 징병제의 악마적 진화

 

청년 문화에서 구타와 자살은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난 이후 유럽 전역에서 청년들의 권총 자살이 유행처럼 되었다. 자살과 폭행을 근절하기 어려운 까닭은 전염성 때문이다. 군의 자살 사고는 주로 인접 부대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22사단이야 이미 국민이 주시하는 사고 다발 부대지만, 그 외에도 사고가 집중되는 특이한 부대로 3사단이 있다. 최근 1~2년 동안 군부대 사고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3사단 철원 근처에서 자살, 폭행 등 강력 사고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도 쉽게 발견된다.

 

청년 문화에서 폭력과 집단 따돌림 같은 범죄는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 한번 폭력을 경험하면 그것을 모방한 다른 폭력이 나타나 후임자에게 전승되는 조직 문화를 형성한다. 1987년 이래 군은 30년 가까이 ‘구타와의 전쟁’을 하고 지휘관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지만 구타는 근절되지 않는다. 겨우 좋아졌다 싶으면 또 독버섯처럼 자라나 순식간에 확산된다. 징병된 병사 위주의 재래식 조직, 그것도 오지에 고립된 폐쇄적인 문화의 군대라면 그럴 개연성은 더욱 커진다. 더구나 우리 초급 간부와 병사들은 전방에서 고생하는 것을 굉장히 서럽게 인식하는 피해 의식에 젖어 있다.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왔다는 상실감은 인간 이성과 상호 존중, 배려를 끊임없이 잠식하다 어떤 특이점에 이르면 조직을 자기 파괴의 양상으로 몰아간다. 여기서 군대는 청년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더욱 강화시킨다.

 

분명 지금 20대가 괴물처럼 여겨지는 일면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폭력 행사 방식에 있다. 1980년대에는 고참병 한 명이 후임병을 여러 명 세워놓고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폭력이 행사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종의 위험이 따랐다. 후임병이 집단으로 반발하면 거꾸로 고참이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고참의 권위를 세운다는 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고참 여러 명이 모여서 후임병 한 명을 폭행한다. 여기에는 장점이 있다. 피해자가 한 명이니까 간부에게 발각될 위험이 적다. 또한 고참이 후임병에게 당할 위험도 적다. 윤 일병 사건과 같은 집단 폭력은 현재 군에서 구타·가혹 행위의 가장 일반적인 양상이고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러 명이 맞을 때와 달리 혼자만의 고통이므로 절망감이 더 극단화되며 피해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악마는 어떻게 번성했는가?

 

이렇게 폭력의 양상이 변화된 분기점은 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일보』의 국방부 출입 기자인 정철순은 자신이 군 생활을 하던 그때를 과거의 폭력 양상과 지금의 폭력 양상이 공존하던 전환기로 평가한다. IMF 이후 대학을 다닌 세대가 군에 입대하면서 경쟁과 차별, 배제와 따돌림의 문화가 일반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오찬호도 지금의 20대는 극심한 경쟁과 수능 성적으로 상징되는 서열에 익숙한 ‘차별에 찬성하는 세대’라고 진단한다. 이런 세대가 병영의 문화 자체도 바꾸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고문관(부대 적응이 안 되고 임무에서 뒤떨어지는 부진한 병사)이 있으면 그 책임을 집단 전체가 감수해야 했다. ‘연대 책임’이라는 이름하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똑같이 체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장병들에게는 그 문화가 사라졌다. 그 대신 고문관 한 명만 집중적으로 가학해 인간성을 파괴시키면 된다. 이것은 지금 20대의 정서에는 매우 합리적인 처벌이다. 2011년의 해병대 2사단이 총기 난사 사건을 통해 밝혀진 ‘기수 열외’ 문화나 22사단의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도 여러 사람이 한 명을 따돌리는 ‘왕따 놀이’의 변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문화는 한국 징병제가 악마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병영의 악마가 더욱 은밀하고 교활하며 가학적인 모습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대를 괴물로 취급하는 건 잘못이고, 진짜 문제는 기성세대라는 진단이 이상해 보일지 모른다. ‘20대는 괴물인 게 사실 아닌가?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 게 사실 아닌가? 함께 더불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 사는 걸 가르치는 지금의 교육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군이 사회를 탓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반론이다.

 

이에 대한 답은 ‘20대에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확대·강화하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군대’라는 것이다. 병사를 서열화하고 경쟁시키도록 조장하는 게 어찌 가정과 학교뿐인가? 가장 결정적으로는 군대가 그 악습을 사회에서 이어받아 강화시킨다. 윤 일병 사건처럼 이 병장에게 구타를 부추기고 조장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하사였다. 간부는 말로 구타를 인정하지 않지만, 고참병이 후임병을 억압함으로써 기강이 유지된다면 아주 편리한 통제 수단이 된다. 더군다나 지금 부사관은 대부분 고졸 학력이기 때문에 권위가 서지 않으며 소대장도 90퍼센트가 단기 의무 복무자로서 병사를 지휘할 리더십이 없다. 22사단에서 총기 사건이 벌어질 당시 소초장(중위)은 부하가 죽어가는데 옆 소초로 도망을 갔다. 이런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직 병사들의 위계 서열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군이 과거에 비해 개인화된 20대를 남다른 리더십이나 성찰을 기울여 대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런데도 군은 이런 자신들의 문제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게 사회 탓이다. 여기에는 ‘정상적인 군대-비정상적인 사회’라는 아주 편리한 이분법이 작동한다. 여기에는 군대는 그대로인데 사회는 썩었다는 굴절된 인식이 있다. 더 멀리는 가부장 이데올로기,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군사 엘리트의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멀쩡한 20대 병사가 정신이상자나 문제 있는 병사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병사들은 저만큼 앞서 있는데 군의 간부들이나 지휘관들의 수준이 그걸 좇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병사들의 인권 의식과 권리 의식은 향상되어 있는데 지시만 하면 모든 게 된다고 믿는 지휘관, 개인을 존중·배려하기보다 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통제하려는 간부들의 사고방식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다. 그렇게 윽박지르고, 밀어붙이고, 말 안 들으면 영창 보낸다는 협박에 능한 게 우리 군대의 현실이다. 인권이라는 말만 나오면 신경질을 내는 건 북한과 우리 군이 똑같다. 그런데 그런 문제점을 군 장성들만 모른다. 그러니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병영 문제의 핵심이자 본질이 아닌가?

 

조작과 은폐와 축소는 미필적 살인

 

여기서 가장 경험이 없는 초급 간부가 역시 경험이 없는 전투원들을 지휘하는 우리 병영의 구조적인 모순이 악화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전방은 가장 경험이 없고 상황 대처 능력이 미숙한 청년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수시로 우리를 자극하는 북한군, 단조롭기 짝이 없는 경계 근무, 고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전방일수록 먹고 자는 문제에서부터 부실한 장비와 보급에 이르기까지 소모전을 지향하는 전근대적인 이미지가 불가사의하게도 변함이 없다.

 

경계 근무를 하면서 북한군을 주시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순찰을 도는 간부를 감시하는 행태가 일반화되어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농담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기에다 순찰을 돌기보다는 생활관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나중에 순찰표만 조작하는 간부, 부하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진급에만 급급한 지휘관 등 갖가지 불합리한 행태들이 병사들에 의해 목격되고 관찰된다.

 

그런 불합리한 병영 구조에서 사건이 일어나도 주범이 처벌되지 않고 악마가 번성하는 토양이 형성되어 있다. 윤 일병 사건에서 나타난 은폐와 조작은 바로 그런 살인 행위의 연장선 위에 있다.

 

* 글쓴이는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입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9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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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04 [00: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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