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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가서지 않아서이다”
잔쟁사진 대가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사진전. 카파 다양한 작품 선보여
 
김철관   기사입력  2013/08/22 [09:10]
▲ 카파가 촬영한 헤밍웨이     © 김철관
전쟁사진의 아이콘 ‘로버트 카파’를 생각하면 종군기자, 라이프지, 매그넘, 다큐멘터리사진 등이 머리를 스친다.

헤밍웨이(소설가), 피카소(화가), 마티스(화가), 잉그리드 버그만(여배우), 비비안 리(여배우) 등 당대 내놓으라는 예술가, 배우 등과 소통하며 그들의 사진을 촬영했던 인물이 바로 ‘로버트 카파’이기도 하다.

전쟁 보도사진의 거장이며 대명사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앙드레 프리드먼, 1913~1954)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 눈길을 끈다.

지난 2일부터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전쟁 휴전 60주년 기념,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은 스페인 내전(1936), 중일전쟁(1938), 제2차 세계대전(1944), 제1차 중동전쟁(1948), 인도차이나 전쟁(1954) 등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사진(보도사진) 160여점과 유품, 당시 카메라의 기종, 카파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선보이고 있다.

카파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중동 전쟁)에 갔지만 팔레스타인에게 행한 유대인들의 잔혹성을 보고,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돌아온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반발했으나 전쟁에서의 회의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이렇게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기도 했다.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평생 인간의 모든 것을 찍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 카파가 촬영한 피카소     © 김철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촬영한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1944년 미군이 독일군을 공격하는 프랑스 오마하 해변 주변에서 촬영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로버트 카파의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공화파(인민전선파)의 군인의 죽음>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스페인 내전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로버트 카파 사후 진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스필버그 감독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 작품이다.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인 1954년 5월 25일 2시 30분경 베트남 남딘마을에서 타이반을 향해 걸어가는 프랑스 군의 뒷모습을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대인지뢰를 밟아 그는 사망했다.
▲ 카파가 촬영한 화가 앙리 마티스     ©김철관
카파는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정치적 박애와 반유대인주의자를 피해 독일, 프랑스 등에서 전전했다. 태어날 당시 이름은 앙드레 프리드먼이었는데, 여자 친구가 미국식으로 개명을 권해 응한 이름이 바로 로버트 카파이다.

지난 2007년 발견한 멕시칸 수트케이스가 공개됐는데, 이 너덜너덜한 박스에 스페인 내전을 포함한 160롤의 필름이 들어 있었다. 이번 사진 작품 중 몇 점은 바로 멕시칸 수트케이스에 들어 있는 작품을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카파가 전선에서 돌아오면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작가, 기자, 예술가들과 우정을 쌓았는데 이들과 조우하며 촬영한 사진들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영화감독 존 휴스턴,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다. 특히 스페인 내전에서 아군의 탱크에 치여 숨진 첫사랑 ‘게르다 타로’를 잊지 못해 당내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뿌리치기도 했던 인물이다.
▲ 카파가 촬영한 존 휴스턴 감독     © 김철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주연 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로버트 카파가 세상을 떠난 후 이런 발언을 했다.

“카파는 사랑하거나 마워할 수는 있어도 결코 무관심 할 수는 없는 남자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그의 죽음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특히 카파에게는 더욱 그렇다. 생전에 그는 아주 활기찬 사람이었기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하루는 너무 길도 힘들었다”고 했고, 매그넘의 동료 작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은 “카파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영광의 정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로버트 카파 주도로 1947년 설립한 매그넘은 보도사진 통신사로서 ‘삼페인을 담은 큰 술병’ 이란 의미를 갖는다. 로버트 카파(헝가리),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프랑스), 데이비드 시모어(폴란드), 조지 로저(영국)가 설립했고, 잠시 로버트 카파가 대표로 있기도 했다. 매그넘의 모토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였다.

▲ 죽기전 카파가 사용한 카메라 기종     © 김철관
▲ 베트남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물러난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촬영한 후 곧바로 대인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 김철관
생전 로버트 카파의 지론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이다”는 지금도 보도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명언처럼 쓰이고 있다.

한편,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사진전은 1974년 로버트 카파의 동생 코넬 카파가 설립한 뉴욕국제사진센터(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가 보관한 소장전이다. ICP는 로버트 카파의 기록과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재단이다. 지난 2007년 5월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로버트 카파전이 열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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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22 [09: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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