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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뭔가 달라지는 걸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보라
[책동네] 네그리의 『다중과 제국』, 지구와 자본주의 변화 짚어내
 
이인   기사입력  2011/11/01 [17:48]

살면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내팽개치지 않고 신문과 책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요새 갸웃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이것저것을 돌아보고 이모저모를 둘러볼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요. 시대는 늘 변해왔고 그때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는데, 지금 또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     ©갈무리
끝날 줄 모르고 쭉 갈 거 같던 막무가내 금융경제가 뒷방으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2008년에 한국에서 나타난 촛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세계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자연재해들, 그리고 지구의 눈길을 받고 있는 월가시위에서 나타나듯 예전과 똑같은 체제는 먹힐 분위기가 아니죠.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론 어떻게 될까요? 눈 감고 귀 막고 살지만 않는다면 저절로 궁금함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 모든 걸 설명해내는 단 하나의 풀이는 아닐지라도『다중과 제국』은 솔깃한 설명을 해주는 하나의 풀이는 되어줄 듯싶습니다.
 

이 책은 안토니오 네그리의 강의와 그 강의에서 미처 얘기하지 못했거나 같이 읽으면 좋을 글을 엮은 책입니다.『제국』과『다중』으로 지구의 지식인으로 떠오른 네그리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지구인들의 달라짐과 자본주의의 변화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네그리의 책을 읽기 전에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맑스, 푸코, 들뢰즈를 두루 안다면 훨씬 잘 읽히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네그리를 통해 그 친구들도 ‘더불어’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한 지성과 접속하면 잇따라 세계역사의 지성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죠.
 
네그리는『다중』에서 ‘전쟁’에 대한 글로 시작하는데, 이 책 또한 전쟁에 대한 여러 성찰들을 들려줍니다. 생각해보면 지난날처럼 나라와 나라가 자신들의 총력을 기울여 대결하는 전쟁은 이제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최첨단 폭력에 맞선 테러가 있거나 두 나라 사이의 치고받음이 아닌 으르렁거림만 있거나 한 나라 안에서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사이의 갈등만 있는 것이죠. 이런 상태를 나름의 평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리어 나름의 전쟁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은 전쟁과 평화가 섞여버린 채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만약 평화가 더 이상 전쟁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이는 전쟁과 평화가 융합하여 삶정치라는 하나의 단일한 모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탈근대적 전쟁은 근대적 전쟁보다는 덜한 어떤 것이지만, 그것은 또 근대적 치안보다도 더한 어떤 것입니다. 탈근대적 전쟁은 - 괴물과도 같이 - 일종의 사회적인 것을 생산하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197쪽
 
탈근대시대의 전쟁은 ‘내전’의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치안이 중요해졌습니다. 여느 사람들에겐 군인의 군홧발보다 경찰의 물대포와 방패찍기가 더 무섭고, 정보국들의 뒷조사가 더 으슬으슬한 사회로 변해갔습니다. 전쟁은 ‘우리 나라’와 ‘너희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전쟁입니다. 요즘 시민들은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전쟁의 법칙을 따르는 병사들처럼 되어버렸죠. 이 전쟁을 통해 사람들이 움직이고 사회가 굴러갑니다.
 
기성세대가 잘 살아보자면서 땀 뻘뻘 흘리며 청춘을 바쳐 만든 21세기는 자유롭고 행복한 공동체가 아니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안절부절못하며 보내는 전쟁터입니다. 소름 끼치고 끔찍한 일이지만 시나브로 이렇게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각개전투’를 치르고 있죠. 옛날엔 신라와 고구려 같은 나라들이 전쟁을 벌여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면 오늘날엔 너와 내가 싸우면서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전쟁 같은 세상은 사람들의 생활마저도 확 바꿔버렸죠. 산업화된 공장노동이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던 근대와 달리 오늘날엔 사회가 공장이고 노동시간은 삶시간과 겹쳐지고 있습니다. 일터와 삶터는 딱 나뉘지 않고 어느새 모든 게 노동이 되어갑니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나의 하루 전체를 노동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네그리는 근대의 물질노동에 견줘 탈근대의 비물질노동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비물질노동은 자본이 공장에서 노동의 착취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착취하는 결과이죠. 하지만 이와 함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놀라운 잠재성은 드러나며 그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고 분석합니다. 정보혁명이라 불리는 기술의 발달로 SNS나 여러 매체들을 통해 내 삶과 사회가 달라지는 걸 느낀 사람이라면 네그리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이젠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통의 그물망’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여기가 다시 뛰어야 할 ‘로도스 섬’이 되었으니까요.
 

▲   '점거하라'(OCCUPY) 시위의 모습  ©갈무리

이제 비물질노동은 명령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네트워크 형태로 이루어지는 지성의 확산은 그것이 직면한 장애의 총체에 대하여 잠재적으로 초과로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비물질노동의 다중은 초과, 엑서더스를 통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비물질노동 및 엑서더스의 장치(즉 관계 그리고/또는 연쇄적 연관)에 대한 우리의 주장에 두 번째 정의가 추가됩니다. 이 정의는 오늘날 노동이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공통적’이어야만 한다는 사실, 즉 협동의 네트워크에 의해 생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158~159쪽

* 글쓴이는 꺄르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는 젊은이입니다. 누리집 주소  http://blog.ohmynews.com/specia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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