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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순국 100돌, 효창원에서 처음으로 제례행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 등 시민단체 중심으로 추모행사 열어
 
김영조   기사입력  2010/03/27 [12:15]
“1910년 3월 26일 아침 10시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새 한복을 단정히 입고 안중근은 교수대로 향했다. 아아, 그리운 조국의 하늘 땅 형제들! 안 의사 나이 서른둘. 아 가슴이 찢어진다. 분단 65년. 항일 독립의 화신. 안중근! 그 이름 일월과 더불어 영원하리”

위는 지난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원 안중근 의사 허묘 앞에서 있은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에서 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이봉원 회장이 낭송한 이기형 시인의 헌시 <안중근의 순국기도> 중 일부이다.  

▲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서 초헌관으로 첫 잔을 바치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김영조
이날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돌을 맞은 날로 나라 안팎에서 추모행사가 줄을 이었다. 우선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중앙추념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거행됐으며, 배화여고 등 서울시내 10여 개 학교에서는 1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 공적과 헌시 낭독, 안 의사께 바치는 글, 손도장 찍기 행사 등을 펼쳤다.

또 안중근의사추모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도 이날 뤼순 감옥에서 남북공동추모식을 열었고, 안 의사를 기리는 행사는 미국 뉴욕 등 나라밖에서도 줄을 이었다.

▲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재배를 하고 있다.     © 김영조
 
 
▲ 읽은 축문을 태우는 "분축"으로 추모제례는 끝났다.     © 김영조
 
 
▲ 헌시 <안중근의 순국기도>낭송하는 이봉원 회장(왼쪽), 진혼무를 추는 이삼헌 씨     © 김영조

하지만,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서울 효창원 안중근 의사 허묘 앞에서 있은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일지도 모른다. 효창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 의사의 묘소를 만들면서 미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봉환해올 것으로 믿고 만들어둔 허묘(虛墓)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 허묘에 유해가 없기에 한 번도 제사를 지낸 적이 없다. 그러다 이번 안 의사 순국 100돌을 맞아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효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주관으로 안 의사의 위패를 처음 모시고 추모 제례를 지낸 것이다. 이 추모제에는 민족정기구현회, 청년백범 등 20여 개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행사는 먼저 이삼헌 씨의 추모진혼무가 추어지는 가운데 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이봉원 회장이 낭송한 이기형 시인의 헌시 <안중근의 순국기도>가 낭송되었다. 이어서 선비문화학회의례단이 주관하여 전통제례 행사로 치러졌다. 이 제례에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으로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이, 아헌관으로는 효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김영삼 운영위원이, 종헌관으로는 효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박기서 대표가 맡았다. 

제례를 주관한 선비문화학회의례단(이상만 회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대제(문묘제례)에 능통한 단체로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문묘제례 시연도 주관한 단체이다. 주최 측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제사니만큼 제대로 된 제사를 올려야만 그동안 구천을 떠도셨던 안 의사의 혼백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례는 축문을 불태우는 “분축”을 끝으로 엄숙하게 끝냈다. 

이어서 본 행사 추모제가 열렸다. 먼저 추모사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효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박기서 대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김원웅 회장, 시민 대표 청년 체게바라의 순서로 이어졌다. 

▲ 추모사를 하는 김자동, 임헌영(윗줄 왼쪽부터), 박기서, 김원웅, 청년체게바라(아래 왼쪽부터)     © 김영조


▲ 분향과 꽃바치기를 하는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     © 김영조

추모사에서 임헌영 소장은 “그동안 구천에서 떠돌던 안 의사의 혼백이여, 이제 여기에 편히 잠드십시오!”라고 했으며, 백범을 살해한 안두희를 응징했던 박기서 대표는 울부짖는 목소리로 ”안 의사 유해를 찾아서 모실 수 있도록 대통령은 일본에 요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전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김원웅 회장은 ”이 땅에 아직 수많은 이토 히로부미가 판친다.”라며 외세로 말미암아 분단된 조국이 하나 되도록 도와달라고 비손했다.

이후 정경화 씨의 크라리넷 연주를 배경으로 참석자들은 분향과 꽃바치기를 했다. 이날 목발을 짚고 행사에 참석한 다음 <민족반역자처단협회> 카페지기 아나키스트(아이디) 씨는 “그동안 안 의사를 기리는 행사는 많지도 않았지만 그것도 국민과는 거리가 먼 보여주기 행사에 그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참여단체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진정성 있는 행사이다. 안 의사 추모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이곳 안중근 의사 허묘에서는 앞으로 28일까지 분향을 할 수 있다. 분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이날 추모식은 무덤의 주인이 없는 쓸쓸한 추모식이었지만 안 의사의 허묘 앞에 모인 많은 시민은 안중근 의사의 투철한 나라 사랑 정신을 높이 기리며 안 의사가 찾고자 했던 완전한 독립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길 저마다 가슴속에 향을 사르듯 새겼다. 하루속히 무주구천을 떠돌 안 의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와 내년 101주기 때는 제대로 모시고 추모식을 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허묘(虛墓)와 가묘(假墓)

그동안 안중근 의사 묘에 유해가 없다 하여 많은 사람이 가묘라 불러왔다. 하지만, 그것은 가묘가 아니라 허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상해가정부라고 하여 가짜정부라고 했었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안 의사 묘에 유해가 없는 것일 뿐 가짜묘라고 할 수 없기에 가묘라고 해서는 안 되며, 허묘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신시민운동연합 육철희 의장은 주장한다. 허묘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허묘도 한자말이기 때문에 토박이말 “빈뫼”가 더 좋은 말이라고 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이봉원 회장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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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27 [12: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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