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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진실' 마침내 공개…검·경 '치명타'
[종합] 檢 수사기록 2천쪽 공개, 김석기 "혹시 소방관옷 있나?"…파문 예고
 
이석주   기사입력  2010/01/15 [17:11]
지난해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는 경찰 특공대의 무리한 진압 때문에 발생했으며, 참사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다면 특공대 투입을 중지시켰을 것이라는 경찰 수뇌부의 진술이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에 담긴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변호인단이 진실규명의 결정적 단초로 간주돼온 검찰의 핵심 수사기록을 전격 공개한 데 따른 것으로, 최근 검찰이 '기피신청'을 해가면서 까지 공개를 반대했던 이유가 이날 변호인단 발표로 명확히 밝혀진 셈이다.
 
■ 당초 진입계획 완전히 뒤바껴…"작전 지휘부, 부하들에게 책임 떠넘겨"
 
김형태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이날 오후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공개 수사기록 3천여 페이지 중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2천여 쪽을 공개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13일 용산참사 수사기록 중 이제까지 공개되지 않은 2160여 쪽 분량의 열람과 등사를 허용했으며, 변호인단은 이를 '복사' 등의 방식으로 14일 저녁 입수한 뒤 안에 담긴 내용을 '밤새도록' 검토했다.
 
▲ 김형태 변호사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참사와 관련한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을 전격 공개했다.     © CBS노컷뉴스

이날 김 변호사에 따르면 참사 당시 경찰은 사전에 정해놓은 '망루 진입작전'을 변경해 가면서 진압을 서둘렀으며,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경찰의 진술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일당 건물 옥상과 4층 창문, 지상 순으로 진입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이 '지상 투입 후 옥상 진입'의 순으로 완전히 변경됐다는 것. 특히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현장 상황을 보고받은 지도부는 이같은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진압에 대한) 사전교육 조차 없었다'는 현장 투입 경찰의 진술이 들어있다"고 밝혔으며, 특히 이와 관련해 경찰 수뇌부는 검찰 조사에서 "특공대가 (작전을 성공하겠다는) 공명심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또 "결정권자였던 저희가 '망루 안에서 시너와 화염병을 투척하는 것'을 보고받았다면, 작전을 중지시켰을 것"이라는 경찰 지휘부의 진술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기자회견에 앞선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상황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며 "(지휘부는 서울청에서) CCTV와 무전기 등을 통해 현장 상황을 보고받았다. 밑에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 화재원인은 화염병?…경찰 "화염병과 상관없는 불, 망루 밑에서 나왔다"
 

1심 재판부가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결론 내린 '화염병에 의한 화재' 역시 이번 참사의 발화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경찰의 진술도 있었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김 변호사가 밝힌 수사기록 내용 중에는 사건 당시 망루에 진입했던 경찰관 2명이 "화염병이 던져져서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또 다른 화재 진압 요원은 "화염병과 상관없는 불길이 망루 밑으로 흘러 나왔다"는 진술이 있었다.
 
김 변호사는 "화염병에서 나온 불길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불길이 (망루) 처마 틈 쪽으로 번졌다는 경찰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진압 경찰들은 "화재의 원인이 화염병과 무관하다"는 진술을 검찰 조사과정에서 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이날 공개된 검찰의 수사기록에는 '참사의 원인이 화염병 때문이 아니다'라는 경찰 진술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BS노컷뉴스

김 변호사는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망루 천장으로 던질 리가 없다. 이는 발화 원인을 화염병으로 규정한 검찰 주장과 다른 증거"라며 "(항소심에서) 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향후 재판과정에서의 자신감을 피력했다.
 
■ 용산구청, 농성자 대화 요구 거절…김석기 "소방관 옷 빌릴 수 있느냐?"
 
한편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농성자들을 포함한 전국철거민연합회 중앙위가 참사 발생 전 날인 2008년 1월 19일 '6자 대화'를 요청했으나 구청 측에 거절당했으며, 김석기 당시 서울청장은 실질적 대화에 나설 의지 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농성자들의 대화 요구에 용산구청 측이 일축 의사를 밝힌 이후 경찰과 용산구청은 "19일 22시 까지 무조건 해산하라"고 지시했던 것. 김 변호사는 이와 관련,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기 전) 대화와 설득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고 성토했다.
 
특히 이과정에서 김석기 전 서울청장은 "현장에 시너가 많으니 소방관 옷을 빌릴 수 없느냐"는 질문을 기동본부장에게 전화로 문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공개 수사기록'에 해당 기동본부장의 진술 형식으로 담겨져 있다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를 조사한 검찰이 시간이 지나면서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인정하려는 방향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참사 발생 이후 범대위와 유가족이 줄기차게 주장한 이른바 '표적 수사' 의혹이 사실로 굳어진 셈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경찰은 '정보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특공대 투입은 중지했어야 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 일부는 농성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과잉진압 추궁 강도가 점차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일부 경찰은 '자신이 지휘권자였다면 더 이상 진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는가 하면, 일부 지휘권자들도 무리한 진압을 인정하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부 경찰은 시간과 장비 부족으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 향후 항소심서 상당한 영향 미칠 듯…범대위 "철거민들 당연히 무죄"
 
용산참사 문제의 '핵'으로 자리했던 검찰의 핵심 수사기록이 이날 공개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참사의 전말이 밝혀짐과 동시, 이충연 위원장 등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향후 재판부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용산 범대위는 논평을 내고 "망루사건으로 구속된 철거민들의 법적 방어권이 최소한의 수준이지만 보장받게 되었다"며 "경찰 수뇌부와 철거용역을 수사한 기록은 경찰이 적법한 행동을 하였는지를 밝힐 중요한 증거"라고 밝혔다.
 
범대위는 "정당하지 못한 공무집행이라면 철거민들은 당연히 무죄"라며 "만약 경찰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이뤄진 일이라면 살인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집단적으로 은폐하려고 한 검찰과 관계당국 또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날 '수사기록'의 공개는 향후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항소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철거민들을 유죄로 인정한 1심 재판부 모습. 당시 고 이상림 씨의 부인이자 유죄가 선고된 이충연 씨의 어머니 전재숙 씨(가운데)는 재판부 결정에 항의하며 오열했다.     ©CBS노컷뉴스

나아가 "그 동안 검찰이 은닉한 수사기록은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척도였으며 법치국가의 수준을 웅변하는 상징이었다. 뒤늦었고 아쉬움도 많지만 법원의 수사기록 공개결정을 통해 용산참사의 진실이 다소간이라도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정치권, 김석기 재조사 촉구…"더이상 '눈가리고 아웅' 안돼"
 

정치권에서도 그간 수사기록을 감춰온 검찰의 행태와 참사 당시의 과잉진압을 인정한 경찰에 분노를 표출하며 이명박 정부를 향해 강도높은 비판을 가했다. 특히 김석기 전 서울청장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 백성균 부대변인은 변호인단 기자회견 직후 논평을 내고 "결국 검찰과 경찰이 합작하여 용산 철거민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며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충연씨의 누명이 검경의 작품이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과 경찰은 더 이상 눈가리고 아웅해선 안된다"라며 "김석기 전 서울청장에 대해서는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한다. 당시 현장에 직접 지시했다는 정황도 있었는데 검찰이 형식적으로 넘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오전 브리핑에서 "희생자들이 어떠한 상황에 내몰리고 저항할 수 밖에 없었는지, 끝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는지, 경찰의 진압은 정당했던 것인지 그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논평했다.
 
특히 재판부에 기피신청을 제기한 검찰을 향해 "진실을 밝히는데 왜 검찰이 그토록 공개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검찰은 진실을 밝히는 본연의 임무를 다해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억울한 심정을 풀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도 "경찰 수뇌부조차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고백하는 증언을 감춰두고 철거민들을 살인범으로 몰아간 것은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라며 "이것이 '공익의 수호자'라는 검찰의 모습이냐"고 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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