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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이 父 "딸 죽인 미군 장병, 이젠 원망 안해"
심수보씨 "촛불 집회, 폭력시위로 변질되지 않기를..."
 
이완복   기사입력  2008/06/12 [20:51]

"단순 교통사고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제는 사고를 낸 미군 장병에 대해서도 원망을 하고 싶지 않아요."
 
고(故) 심미선의 아버지인 심수보씨(55)는 미선, 효순양 추모 6주기를 이틀 앞둔 11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마을회관에서 CBS와 기자와 단독으로 만났다
 
"6년 전 사고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더는 흘릴 눈물마저 메마른듯 했다.
 
외부와의 연락끊고 살아…어려운 설득끝에 말문 열어
 
그는 딸의 사고 직후 2년까지는 추모식 등 외부 행사에 참석했지만 그 뒤부터는 거의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이날 인터뷰도 몹시 어려운 설득 끝에 이뤄졌다. 만난 뒤에도 심씨의 말문을 여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사고현장에 있는) 추모비를 볼 때마다 딸아이가 생각나요. 그래서 한때는 공원묘지 등 적절한 장소가 있으면 옮겨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자식은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 했지만 사고 현장에 있는 추모비를 지나칠 때마다 딸 아이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괴로운 듯했다.
 
어렵게 말문을 연 심씨는 그러면서 13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미선·효순 양 사망 6주기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13일에는 평소처럼 가족끼리 추모비를 방문하고 딸을 생각하며 조용히 보내고 싶어요."
 
이제는 가슴속에 묻은 딸을 서서히 보내고 싶은 듯했다.
 
'따님이 언제 가장 보고 싶으세요?'라고 묻자 "항상 보고 싶지만 무엇보다 가족 행사와 생일 때죠"라며 애써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던 심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촛불 심정 이해가지만 과격 시위는 자제했으면...
 
시민사회단체가 딸을 위해 추모식을 마련 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반미감정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듯 했다.
 
심씨에게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으로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 6년 전 자신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당시 미선·효순양 사건으로 촛불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열기 속에서 친구 생일 잔치에 가기 위해 나섰던 중학생 미선·효순 양이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고는 국민에게는 단순한 사고사로 끝날 뻔했다.
 
그러나 숨진 이들의 사연은 인터넷을 타고 휴대폰 문자로 이어졌다.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자 같은 또래의 중학생 아이들이 하나 둘 촛불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촛불은 손에서 손으로 아이들에서 어른들로 이어졌고 결국 미군 당국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이슈가 됐다.
 
심씨는 쇠고기 촛불문화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에서 정치구호가 나오고 격렬한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촛불문화제가 장기화 하면서 순수성이 약해지고 대통령을 길들이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고 모욕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제발 순수성을 잃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제 참가자가 10만이니 50만 명이니 그날그날의 참가 숫자보다 그 뒤에 4천만 명의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폭력 시위를 자제해야 합니다."
 
지난 2002년 그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생각대로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비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자신을 위해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 문제 등 각종 시국사건마다 '미선·효순'이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만나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미선이 아버지는 기자와 현 시국을 이야기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싶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자신과 효순 부부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로 부른 적이 있다고 한다.
 
"노무현 당선자께서 불러서 경기도 양주시 효촌 2리 집에서 서울 당사로 갈 때는 당선자께서 승용차를 보내줬지만, 면담이 끝나고 나서는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실무자들의 실수였겠지만) 저희 부부는 길도 모르는 서울에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고생 끝에 돌아왔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매우 섭섭했어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 보다는 미선·효순이의 죽음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고 여·야나 시민 사회단체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더는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뜻에서 과거의 얘기를 털어 놓는듯 했다.
 
심 씨는 6년 전 숨진 딸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지만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위해 조용히 살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이날 심씨와의 인터뷰는 심씨가 거주하고 있는 효촌2리 마을 회관 앞에서 1시간 가량 이뤄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본 사고 현장인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효촌리 마을 앞 지방 도로는 길폭이 확장되고, 보행자를 위한 인도도 설치되어 있었다. 또 신효순·심미선 추모비 앞에는 미 2사단에서 보내온 추모 조화가 놓여 있었다.
 
6월의 오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논에는 못자리에서 갓 자란 새파란 어린 모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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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12 [20: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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