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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항쟁의 희생자, 그들은 곧 나 자신이다"
[책동네] 제주의 한, 4ㆍ3항쟁의 전모를 다룬 김시태의 소설 <연북정>
 
김영조   기사입력  2007/05/17 [23:21]
지난 5월 15일 이비에스(EBS) 텔레비전에서 ‘시대의 초상’이란 프로그램은 “굴레를 벗고 거침없이 전진하라, 배우 김부선”편이 방영되었다. 여기서 김부선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억울하게 애로배우, 대마초 배우로 낙인찍혀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것은 물론 그와 함께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얘기 때문이었다.
 
김부선의 어머니는 제주 4ㆍ3항쟁 때 눈앞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뒤 이를 안 군인이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살았지만 오랫동안 입을 다물던 어머니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고 했다.

[관련기사] “에로에서 대마초 배우로, 세상에 할말 많아요” / 김철관
 
나는 제주 4ㆍ3항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시인이 좋은 소설이라면서 건네준 소설 “연북정”은 내 눈을 뜨게 만들었다.
 
▲제주 4.3항쟁을 전면적으로 그린 김시태 장편소설 <연북정>     © 김영조
머리말에서 지은이는 “이 소설은 내 영혼의 ‘길찾기’에 속한다. 그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쪽으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무작정 떠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이 사름아, 하르바님이 걱정이라. 빌레아방이 모셔 갔는디. 저디 어디 간 이실거라.” 소설은 짙은 제주도 사투리의 향연으로 끌어간다. 가끔 사투리의 뜻이 이해가 안 돼 흐름이 끊기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낯선 제주도 사투리가 이렇게 포근한 감성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문학 그것도 소설이기에 가능한 아름다움이리라.
 
이 소설이 그려내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두 주인공의 연가이다. “‘넌 나니까. 나 자신이니까? 너를 부르고 있으면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그것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 그 속의 구절들을 주문처럼 입 속을 외워보았다. 넌 나니까. 나 자신이니까.” 소설에서 주인공 현준과 인숙은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우익과 언론 그리고 미군정청이 빨갱이로 부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했다.
 
그뿐만 아니다. 흔히 빨갱이는 폭도고, 폭도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덧칠해져 왔지만 “연북정”은 그들이 진한 가족애도 있었음을 그려낸다. 소설의 결말부에 제주도당 위원장 지정은이 그의 딸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나온다.
 
“나도 많이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다. 이 산생활이 여자로서는 너무 어렵지 않겠느냐? 한 번 더 생각해 보아라.” 그는 자신의 딸이 산속으로 숨어 다니는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를 생활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피신해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연북정”이 내게 준 가장 큰 매력은 제주 4ㆍ3항쟁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순박한 제주도의 농민, 어민들이 부패한 경찰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다가 자연스럽게 산에 들어가고, 무기를 드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주 4ㆍ3항쟁은 빨갱이들이 일으킨 반란이 아니었다.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혼자서 자지러질 듯 큰소리로 웃었다. 얼마나 크게 소리 내어 웃었던지, 눈에 눈물이 고이고 한 쪽 뺨이 촉촉이 젖고 있었다.”이는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이 소설은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극적인 결말로 끝냈다기보다 우리 겨레의 운명을 처절하게 암시하는 그런 결말이란 생각아 들었다.
 
소설의 흐름이 늦고, 긴장감이 적은 것은 약간의 티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나는 그것이 제주 4ㆍ3항쟁을 가슴에 담고 아파하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제주도 조천면의 연북정, 소설의 중심 무대이다.     © 김시태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조천면과 그 한편 바닷가에 있는 연북정이다. “연북정(戀北亭)”은 유배온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임금에게 절을 하는 정자이며, 역시 소설의 주된 배경 ‘조천(朝天)’은 임금을 뵙는다는 뜻이라고 하던가?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많은 큰 선비들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조천면은 일제강점기 때는 항일 투쟁가도 많이 나왔고, 반골기질이 강했던 지역으로 ‘나타마노조텡’이라 하여 일본 경찰도 무척이나 경계를 했다고 한다. 조천에 있는 만세동산은 1919년 제주도 만세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제주 4ㆍ3항쟁 당시 도당위원장과 지휘관 등 주요 직책을 맡았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 4월 3일은 벌써 제주 4ㆍ3항쟁 59돌이 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우리 겨레가 겪었던 엄청난 피해는 물론 6ㆍ25전쟁이지만, 경찰과 군인의 총칼에 억울한 3만의 양민이 쓰러진 제주 4ㆍ3항쟁과 역시 폭도로 몰려 3천의 비참한 영령이 생긴 광주 5ㆍ18민주항쟁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리라.
 
따라서 무엇이 제주 4ㆍ3항쟁인지 “연북정”을 통하여 가늠해보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생각하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두 손을 모을 일이다.
 
제주 4ㆍ3항쟁의 희생자, 그들은 곧 나 자신이다.
[대담] “연북정”의 지은이 김시태

 
▲ 대담 중 뭔가 골돌이 생각하는 지은이 김시태 ⓒ김영조
- 그동안 시집과 평론집은 다수 펴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소설은 처음인데 어떻게 쓰게 되었나?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그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6살 때부터 19살까지 살았는데 그 어릴 적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났던 제주 4ㆍ3항쟁이 소설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천형인지도 모른다.”

- 머리말에는 “그들은 곧 나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조천이 고향인 나에게 4ㆍ3항쟁 관련자들 중엔 집안사람이 많았다. 당시 항쟁에 관련하여 집안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 그때 제사에 가면 어른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나는 항쟁 전에 항쟁을 비켜난 유일한 지역, 제주읍으로 이사 가서 살았고, 호적도 제주읍에 옮긴 탓으로 무사했을 것이다. 나는 당시 4ㆍ3항쟁에서 비켜났지만 지금도 4ㆍ3항쟁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 “4ㆍ3항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948년 정부수립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들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4ㆍ3항쟁은 그 한국사회를 하나로 요약한 사건일 것이다.” 그는 친일파가 해방 뒤에 청산되었다라면 제주 4ㆍ3항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실화인가?
“4ㆍ3항쟁과 관련한 생존자 중에서 비교적 자세한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때 들은 얘기로는 도당위원장은 김유환이었다고 하며, 조천 봉수동이 항쟁 본부였다고 한다. 그 증언들을 토대로 소설적 구성을 했고, 사건의 연결과 사람 이름, 땅이름 등은 고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주인공의 사랑 애기도 약간의 꾸밈이 보태졌지만 모형은 있었다.”

- 이 소설로 세상에 외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동안 쓰인 4ㆍ3항쟁 관련 책들은 주로 회고담이었고,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주 4ㆍ3항쟁이 자기 한 몸을 바쳐서도 조국을 구한다는 일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적, 행동적 투쟁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또 그런 지도부와 끈끈한 연을 맺고 있던 사람들의 순박한 따름도 있었다. 아직도 4ㆍ3항쟁 관련 생존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연북정”의 지은이 김시태는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이다. 기자와 만난 김시태는 그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였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서 온건하지만 민족정체성은 분명했고, 옛날 민족지도자들의 흔적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의 속내가 소설을 빚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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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7 [23: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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