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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총격참사, ‘한국인’에 매달린 언론의 국가주의
[언론비평] 국제적 참사도 국적문제로 몰아가는 언론보도는 지양돼야
 
이창은   기사입력  2007/04/18 [23:09]
미국 현지시간 16일 오전 7시15분 경 미국 버지니아주의 명문으로 알려진 버지니아 공과대학 1학년 학생 기숙사인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4층에서 두 명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으로 시작된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 사건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더구나 이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계 1.5세대 23살의 조승희 씨로 밝혀지자 대한민국 뿐 아니라 미국교포 사회도 함께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언론 보도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자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 사건을 연일 1면 톱기사로 보도하는 등 일제히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총기류 소지 허용에 관한 규제의 문제점, 교내 안전강화 대책 등 이번 사태가 일어날 수 있게 한 자국의 규제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은 2면 사이드 톱으로 "총격 사건 주인공은 한국 출신"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사진을 보도했다. 온라인판에서는 또 "대량학살이 총기 소지 논란 촉발"이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정부가 이 같은 총격 사태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온라인 포럼을 열어 네티즌 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자 1면에 "버지니아에서 32명 총격으로 사망; 미국 역사상 최악의 난폭 행위"라는 제목으로 사망자를 옮기는 사진과 함께 사건 개요를 상세히 보도했으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등은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NYT 온라인판에서는 "버지니아 총잡이 재학생으로 밝혀져"라는 기사를 통해 조씨가 지난 1992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영주권자라는 사실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대체로 미국의 언론들은 수많은 총기사건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지가 여전히 허용되는 문제, 그리고 교내안전에 관한 방법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범인의 인종이나 국적보다는 범행동기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가 전해지면서 한국의 언론들은 미국 현지 미확인 보도를 통해 범인이 ‘중국계’라는 사실을 거의 기정사실화 했다. 또 이 사건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면서 누리꾼들의 반응은 ‘당연’하다는 등 중국계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짱깨’ 등 중국인 비하 용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가판을 발행하는 일부 신문의 경우 가판에선 미국 '시카고선'지의 보도를 인용해 용의자를 중국계 이민자로 추정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일보>의 경우 17일자 가판(10판) 1면 <미 "어떻게 이런 일이">에서 "범인은 지난해 이 대학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이며 대학 내 기숙사에서 여자친구와 다투다 격분해 여자친구와 싸움을 말리려 달려온 기숙보조원을 사살한 뒤 노리스홀로 이동해 학생들을 즉결처분하듯 대학생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용의자가 중국인임을 기정사실화 한 셈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용의자가 한국계 이민 1.5세대 재학생임이 밝혀지자 언론의 호들갑은 극에 달한다.
 
일부 성미급한 언론은 한-미 관계의 악영향을 운운하며, 비자면제 협정에도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등 우려의 시각을 아무 근거없이 전하는 등 이번 사건의 주체를 한국이라는 국가 단위로 집어 넣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이번 총기참사로 ‘한미FTA 체결 우려’라는 기사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총기난사 범인이 한국학생이라는 것을 강조한 서울신문 1면. 대부분의 언론이 이런 제목을 달았으며 한겨레와 경향도 한국학생임을 명기했다.     © 서울신문 4월 18일자
 
단적으로 언론은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진 것과 별개로 대한민국 전체가 전전긍긍하면서 일종의 ‘패닉(공황)’ 상태에 빠진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히려 미국 사회와 정부는 (당연히) ‘범인의 범행과 한국이라는 나라는 별개’라며 한국민과 교포사회를 진정시키는 웃지못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미국내 교포사회의 충격과 공포는 엄청나다. 미국 특유의 유색인종 차별과 양극화 현상으로 불만의 창구를 히스패닉이나 동양계로 돌리는 현실에서 참사 사건의 용의자로 한국인이 밝혀지면서 ‘이유없는 분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한 상태에서 국내 언론이 오히려 더 부채질을 한다면 불안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국과 한국 시각으로 나누어 살펴야 한다.
 
그토록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미국사회에서 ‘총기규제’가 안되는 이유, 이로 인해 사회적 불만세력이나 일탈세력이 총기난사로 이어진 것은 수차례 반복된 것이다. 따라서 용의자 조승희 씨의 극단적 행위도 미국 사회구조 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벌서부터 2008년 미국 대선의 쟁점이 ‘총기소지’ 논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적 시각에서 볼 때 한국계 이민 1.5세대에 의한 총기참사는 자녀교육을 위해 무작정 떠나는 해외이민과 묻지마 조기유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의 정체성과 미국 사회와의 부조화에 의한 적응의 문제를 새삼 일깨워 준 것이다.
 
이민가정의 증가, 유학생의 폭증으로 미국내 한인 사회 역시 복잡다단하게 됐다. 일부 한국인들의 ‘눈물겨운 성공’ 사례 뒤에 있는 ‘나만 잘 살면, 내 자식이 1등이면 된다’는 생각, 주변 소수민족과의 조화 아닌 배타적 경제행위로 불만의 대상이 된 것(92년 LA 로드니 킹 사건의 배경도 이같은 한인 커뮤니티의 폐쇄성과 무관치 않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광기수준의 교육열 등 한국인들의 독특한 이민문화가 어쩌면 ‘조승희’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좀더 냉철한 시각으로 구분해서 접근 할 사안이었지만, 일부 언론의 호들갑에 의해 '개인 조승희' 아닌 '한국인 조승희'로 몰아간 것이다.
 
어떤 말을 하든 이번 참사는 비극이며, 미국이든 어디든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인종이나 국적 같은 문제는 범행의 동기나 환경의 일부일 뿐 그 자체가 아니다.
 
국제적 참사조차도 국적문제로 몰아가는 국내 언론의 보도행위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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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18 [23: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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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이토 2007/04/20 [20:31] 수정 | 삭제
  • 한국 주류 미디어와 많은 정치인들은 국제 감각 너무 없는 우물 안 개구리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