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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배고픔에서 돋아난 그 아픔의 정치
[독자의 소리] 23일을 넘긴 단식, 민생정치의 새날을 열어주길 바라며
 
에큐메니안   기사입력  2007/04/18 [18:22]
천정배 의원의 단식을 "봄맞이용 모꼬지(MT)”(전여옥 의원)라고 놀리고 있네요. 천성산 지율스님이 단식농성을 할 때에 퍼부은 누리꾼들의 온갖 저주와 비아냥에 비하면 외려 점잖네요. 여의도 시궁창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말들은 사탄의 혓바닥에 그 족보를 대고 있습니다. 부자신문의 논설위원(이규민)은 '단식을 모독하지 말라'며 '시일야방성대곡'조로 놀고 계시네요. 기름끼 떠다니는 글은 부자들의 식성에나 어울리지 민생엔 별 도움 안 됩니다. 예수님 단식 때도 사탄들의 유혹은 극성을 떨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이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복음) 
 
  사순절도 한참 지났습니다. 참된 단식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그 영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성서기행을 떠나봅니다. 이사야서에 여장을 풀고 밑줄을 긋습니다. 이사야는 ‘야훼는 구원이다’를 뜻하는 히브리식 이름으로, 그는 국제정치의 역학구조를 꿰뚫어 보았으며, 역사발전의 방향을 정확히 내다본 영감의 소유자로 신약종교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입니다. 이사야서 58장 6절에서 8절에 나오는 복음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주리라. 」
 
  천정배 의원의 단식농성은 FTA 후유증을 심하게 앓게 될 가난한 사람들과의 하방연대란 점에서 ‘빈자의 일등’입니다. 의원 한 사람의 고군분투가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수백의 금뱃지들보다 값져 보입니다. 우리들도 천의원님 마음을 닮은 촛불을 켭니다. 비록 협상이 졸속으로 타결되었다고나 하나, 한 정치인의 고군분투 덕에 브레이크 없이 막나가던 한미FTA 추진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또한 싸움 판세를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곧 청문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비준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23일에 걸친 천정배 의원의 단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     ©에큐메니안
 
  세상의 온갖 조롱과 야유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반성하고 성찰하시는 모습에서 정치인의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천의원님의 용기에 찬 단식은 앞으로 힘 모우고 뜻을 합쳐 정책과 비전 중심으로 뭉친 민생평화개혁세력이 함께 나눌 큰 희망의 밥상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달의 단식과 다섯째 달의 단식, 일곱째 달의 단식과 열째 달의 단식은, 유다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의 때가 되고 흥겨운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여라.”
 
  ‘위로와 소망과 영광’의 선지자 즈가리야가 쓴 구약의 즈가리야서 8장 19절 말씀이었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했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약속하지 않은 공약을 어떻게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윽박지르며 밀어부칠 수 있단 말입니까. 국민이 대통령이라더니, 대통령이 왕으로 퇴화했단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 강행은 지지자에 대한 모반입니다. 반짝 지지율 상승에 희희낙낙하며 딴나라당과 봉선화 꽃물 들일 때가 아닙니다.
 
  을사늑약 땐 민영환, 조병세, 김봉학 어르신의 자결이 있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2차 장차관 워크숍’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 도입의 문제점을 제기한 전윤철 감사원장 외에는 제2의 한규설이 없었습니다. 국무회의가 아니라 금수회의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장님은 그러면 개방 안 하고 살 수 있습니까. 개방 안 하면 그런 피해가 없습니까?”(한겨레)라는 대통령의 강변에 누가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대꾸를 했겠습니까. 없습니다. 농민들을 명퇴시킬 살농협상을 해놓고 노통의 오른 편에 앉아 농정을 보고 있는 농림부장관 보면 참 낯짝 두껍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을 대신한 참여정부의 퇴임 장관인 천정배(김근태) 의원이 있어 다행입니다. 우리는 단식이라는 속죄의식을 통해 진실과 평화의 정치인으로 거듭난 천정배를 사랑합니다. 24일을 넘긴 단식이 ‘자업자득’이었다구요? 단식농성은 당신 스스로 반성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기 정죄의식이었습니다. 사순도 지나 부활영광으로 이어지는 힘겨운 자기고난의 수행기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못하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복음) 밥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대로 산 24일이었습니다. 정치인의 한계를 넘어 인간 한계에 도전한 그 기백으로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새싹처럼”(신영복) 민생정치의 새날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초인적 단식 끝에 잉태되는 축제의 날을 예감하며, 이젠 고난의 시간을 멈추시고 더 큰 싸움을 위해 옥체를 돌보는 용단을 내리시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단식 끝내고 일어나 인도의 지도자 간디처럼 갈등의 한 복판에서 둥글게 둥글게 민생정치를 영도하십시오. 

▲천정배 의원이 우리시대 촛불이 될 것인가...     © 독자 에큐메니안 제공

   신동엽 시인의 장편 서사시 『금강』의 7장을 읽으며 천의원님 단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 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절대(絶大)한 거.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철들면서부터 그 지루한 30년, 50년을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굶주린 아들 딸애들의 그, 흰 죽사발 같은 눈동자를, 죄지은 사람처럼 기껏 속으로나 눈물 흘리며 바라본 적이 있은  사람은 알리라. 뼈를, 깎아 먹일 수 있다면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주고 싶은, 그 아픔을 맛본 사람은 알리라. 」
 
  요르단 강 근처의 산에서 40일의 단식과 기도를 통해 예수는 분노하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비애를 아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 거듭났습니다.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주고 싶은” 그 아픔의 정치’를 맛보고 싶습니다. 한 달여 일 자리 잃은 노숙자처럼 살아본 ‘그 아픔의 정치인’으로 살아나기 바랍니다. 예수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배고픔에서 돋아난 그 아픔의 정치인이 되어주십시오. *
 
[덧글]  빈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프랑스의 ‘행동하는 성자’아베 피에르 신부는 “내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라 했다. 지금 국민의 가난을, 20대 80으로 굳어져 가는 사회 양극화를 자신의 수치로 받아들이는 정치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서울의 택시운전사 허세욱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못살게 구는 한미FTA 물러가라. 서울에서 아메리카까지 한미FTA 강요하는 그 모오든 껍데기들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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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18 [18: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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