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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대한민국 거덜난다
정부 내부에서부터 손발 안맞는 난맥상 표출, 공공영역 죄다 무너질 판
 
황진태   기사입력  2007/02/06 [00:37]
* 본문은 2월 5일 대구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와 관련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본문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관한 외교통상부 최경립 교섭관과의 <한겨레> 지면공방을 좀더 구체화 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Q. 먼저 지금 FTA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해 아직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제도인지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A.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A라는 군부독재국가가 있습니다. 이 A국가에다 B국가의 한 기업이 공장을 세웠는데 이 공장을 군부에서 국유화를 시킨다는 명목 하에 공장 소유권을 뺏은 겁니다. 이렇게 외국 기업이 타국에 투자를 했을 때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방어막 역할을 투자자-국가소송제가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의미가 있는 제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근대 국제정치에서는 앞선 사례처럼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인하여 일개 사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소송제는 국내법, 국제법에 기대지 않고 일종의 국제적 로펌 법조인들로 구성된 국제중재기구를 통한 자의적인 규칙에 의해 소송이 진행되어 앞선 사례처럼 군부독재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정도의 방패가 아니라 한 국가의 국내법을 통해서 보호받아야 마땅한 공공사업 영역까지 공격하는 창으로도 바뀐다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Q. 지금 투자자 국가 소송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얼마 전 한 언론에 보도된 자료(정부의 투자자 국가 소송제 점검 태스크포스 회의록)에 의하면 정부 측에서도 이 투자자 국가소송제도에 대해 이미 문제의 가능성을 인정을 했다는데?

A. 한미FTA 체결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외교통상부와 달리 법무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등이 반대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앞서 말했지만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일국의 법을 무력화하고, 공공사업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창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가의 근간인 법, 공공사업을 지켜야 하는 방패를 누가 맡을까요. 당연히 이를 담당하는 부처인 법무부, 재경부, 건교부에서 방패막이 되어야 할 게 자명한데 타짜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무모한 도박에 순순히 응하겠습니까. 
 
Q. 그렇다면, 정부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수용하는 이유가 뭔지?

A. 정부 측, 그러니까 통상교섭본부에서 주장하기로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진출했을 때, 국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듭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체결된 BIT 즉, 양자간 투자협정을 체결했을 때 협정체결 이전과 이후에 해외투자 변화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요. 더불어 얼마 전 언론에선 한-칠 FTA 체결 이후에 한국의 칠레에 대한 투자가 미미하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오히려 이해영 교수의 말마따나 투자자-국가소송제를 장착한 FTA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내자본시장의 투기화를 가속화하고, 투기성 자본의 보호장벽을 강화해줄 것이라는 게 더 적확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죠. 
 
Q. 얼마 전 한 신문에서 기자님이 우리 정부측의 투자자 국가 소송제에 대해 외교통상부 담당관과 반론과 재반론을 펼치셨는데.. 그렇다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에 대한 외교통상부 즉 정부의 인식은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A. 타국을 상대로 치열한 협상을 해야 할 외교 실무자들이라고 하기에는 일반 국민들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비합리성을 미국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통상교섭본부만의 신념 때문인지 현실과 정책 사이에 안이한 인식이 놓여져 있다고 봅니다.
 
Q. 정부측의 인식은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에서 우리 투자자들도 보호받기 위해서라도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가 필요한 것이며 소송제기시, 분쟁 해결과 판정은 국제 중재기구에서 하게 되는 것이므로,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한 가지만 강조하면 될 거 같습니다. 미국과 나프타를 체결한 나라들의 경우 명백히 나프타 조항에 명시된 환경권조차도 국제중재기구가 기업의 이익 침해가 더 중요하단 판결을 내려 멕시코 등의 사법기관을 무력화시킨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국가의 헌법 위에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미국은 각 주정부 법률이 나프타로 인해서 무효가 될 수 없도록 연방 실정법과 주법으로 명시되어 있고, 국제중재기구도 이를 따라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FTA라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두터운 갑옷을 입은 미국과 제대론 된 보호구 하나 갖추지 못하고서 게임을 시작한 한국이라고 볼 수 있겠죠.
 
Q. 정부측에선 투자분쟁의 경우 일반인에게 제대로 공개가 되고, 그 과정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도 있다는데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이미 정부측과의 논쟁에서 밝혔듯이 나프타를 체결한 국가 간에 진행된 소송과정은 공공영역에 대한 어떤 법에 통제도 받지 않고, 소송과정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비밀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것을, 시민단체를 필두로 한 끊임없는 정보공개 압박을 통해서 얻어낸 결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 침탈당할 수도 있는 소송제에 대해서 시민단체가 제출하는 의견자체는 결정적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죠. 주권을 보유한 일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마저도 무시되는데 하물며 시민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즉, 적당한 수준에서의 일부 정보 공개는 소송과정의 비밀주의를 가리기 위한 장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Q. 정부와 황 기자님의 반론제기 중 예로 들었던 것이 미국기업인 벡텔과 볼리비아 정부 사이의 투자분쟁이었는데요. 그 투자분쟁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주신다면?

A. 간단히 말해서 지난 1997년 한국이 IMF 체제하에서 경험했던 공기업의 민영화가 볼리비아에서도 IMF 체제를 겪으면서 똑같은 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도사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금지시켰는데, 때마침 미국의 벡텔이란 기업이 볼리비아 코차밤바시의 수도사업을 2만 달러라는 헐값에 구입했고, 이후 수도사업에 대한 서비스 개선은커녕 인수한지 1주일만에 볼리비아 국민 1일당 월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도값을 올렸습니다. 결국 볼리비아 민중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까지 선포하는 등의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자, 정부가 수도사업을 다시 벡텔로부터 환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걸었던 것이죠. 
 
Q. 정부의 경우 벡텔의 경우 투자분쟁 소송을 제기했다가 아무런 배상을 아무런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취하했고, 볼리비아에서는 벡텔이 떠난 지금도 빈민들은 여전히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지 못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먼저 벡텔이 분쟁 소송을 걸었다가 아무런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취하했던 이유는 벡텔의 치명적인 수도값 인상에 따른 볼리비아 민중의 봉기에서 한 소년이 자국의 군대로부터 얼굴에 총을 맞아 사망하는 등 총 6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게 됐습니다. 더욱 점입가경인 것은 벡텔에서는 봉기한 민중들을 폭도로까지 폄하 했었죠. 이후 볼리비아에서 철수한 벡텔은 막대한 소송금을 투자자-국가소송제에 걸었지만, 반세계화 운동단체에서의 벡텔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기업 이미지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결국 벡텔은 소송을 취하하게 된 거죠. 다음으로 수돗물 공급에 대해서는 만약에 벡텔이 지금까지 수도사업을 경영했었더라면 볼리비아 민중들은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우리 정부의 논조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애초에 미국에서 이들 볼리비아 민중들의 식수를 진정 걱정했더라면 IMF를 통한 무리한 구조개혁보다는 인도적 측면에서의 지원이 선행됐어야 하죠. 그렇지 않아도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볼리비아의 경제상황에서 공기업의 민영화는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일일뿐 정작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게 아니지요. 애초에 방법부터가 틀렸습니다.   
 
Q. 정부측에서는 반대론자들이 투자자 국가 소송제가 공공정책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기본인식이 문제라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기자님은 문제의 본질은 수용의 개념이라고 하셨습니다. 설명을 해주신다면?

A. 예컨대 국가에서 도로를 건설해야 하는데 부득이하게 일반 주택을 통과해야만 했을 경우 합법한 절차를 거쳤다면 공공의 목적으로 인해서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사적소유권만을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주를 선택해야 하겠죠, 이때 주택과 토지 소유권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 즉, 이러한 책임의 범위를 '수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어디까지 수용을 하느냐에 있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서는 자의적인 수용 범위를 설정하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사실 수용이라는 개념은 미국이 추구하는 FTA협정에서 나온 통상 법률적인 개념인데, 통상 법률 단어를 단순히 수용이라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A. 한글로 마땅한 단어가 없으니까 expropriation을 수용이란 용어로 대신했던 거구요. 용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수용이란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수용의 범위는 가시적인 물적자산에 한정되었는데 반면에 최근에 나프타 조항에서는 그 범위가 '간접적 수용'이라 일컬으며 비가시적, 추상적인 수준으로까지 확장됐다는 점이죠. 그러니까 가령 국민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우편, 수도서비스 등 공공영역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두고서 일개 사기업이 진출해서는 자신의 사업에 불리하다며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국가가 수용해야 한다는, 즉, 점유율마저도 국가가 응당 책임져야할 수용의 범위에 두는 것입니다. 
 
Q. 결국 수용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해석하느냐, 또는 어떻게 범위를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아주 많은 상황이 새롭게 나올 수 있는데요. 우리 정부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민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A. <한겨레>에서의 논쟁에서 정부 측 관료가 공공영역 침해는 없다고 단언했는데, 그 근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안에 공공영역에 대한 보호조항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프타 등의 선행사례에서도 보호조항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메탈클래드 사건이나 유피에스, 마이어스 사건 등에서 확장된 수용 개념으로 인하여 국제중재기구는 환경권보다도 기업의 이익이 우선되는 판결을 내렸고, 이는 공공영역의 침해를 받았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Q. 결론적으로 정부측에서도 투자자에 의한 국가 소송제도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고, 그렇다면 현재 한미FTA가 막바지 협상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지금이라도 명백한 원칙을 세워 협상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A. 앞으로 어떻게 협상에 나서야 하는 가하면, 호주와 미국간에 체결된 FTA 협정에서 호주 의회와 국민이 합심하여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을 철회시킨 선례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 정부 내부에서도 통상교섭본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들이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반대하고 있음이 드러났고요. 지금이라도 통상교섭본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게 협상에 나서는 최선의 원칙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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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06 [00: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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