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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체결, 당신 입장은 무엇인가
[책동네]FTA 논의 준거점 제시한 우석훈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홍기빈   기사입력  2006/08/27 [02:00]
우석훈 박사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가 출판되었다.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를 받은 저자는 그간 정부 부처와 출연 연구 기관 등에서 일한 바 있으며 특히 무역 관련 국제 경제 기구에서 여러 협상 과정에 참여한 바 있는, 흔히 찾을 수 없는 문성을 갖춘 이이다.
 
안목 있는 출판사와 역량있는 저자가 만나 적절한 시기에 논란이 되는 현안을 분석하고 관점을 제시하는 책을 내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 책은 그러한 기능을 넘어서 좀 더 근원적인 문제, 즉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 엘리트들의 지적 정책적 무능력과 질적 저하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사태를 용인한 사회 전체의 지적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라는 질문을 건드리고 있는, 눈에 보이는 크기보다 더 커다란 책이다.
 
300쪽도 채 되지 않는 책이 어떻게 그렇게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첫째,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문제 즉 현재의 한미 FTA라는 주제의 심각성 때문이요, 둘째, 저자가 그 주제가 가진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관련 쟁점들을 기술적 디테일과 사상적 조감이라는 풍부한 원근법으로 그려내는 것에 성공하고 때문이요, 셋째, 그가 지적하는 바대로 현재 지배 엘리트들이 보여주는 무지, 오만, 독선이 (온건하게 말해서)상상력을 비웃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현실의 맥락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서두를 말하고 보니 이 책이 둔중한 문체의 무거운 산문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으나, 막상 책을 열면 필체는 아주 가볍고 경쾌하다. 비분강개나 선동적 수사 따위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읽는 사람이 절망과 분노로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에서도 필자는 시종일관 냉냉하게 분석적이다. 그런데 경제적 문제를 분석하면서 차가운 문체를 구사했던 미국 경제학자 쏘스타인 베블린의 경우처럼 우 박사의 이러한 표면적인 냉정함도 결국 읽는 이의 머릿 속에서는 더 뼈아픈 아이러니가 되고 만다. 
 
▲한국FTA 협상의 허술함과 치명적 독소를 예리하게 해부한 우석훈 박사의 저서     ©녹색평론, 2006
FTA 체결에 즈음하여 연간 소득 6천만원 이하 4인 이상 가족 가계의 최선의 선택은? 저자가 담담하게 충고하는 바, 다른 나라로의 이민이다. 정부가 줄창 외쳐대는 것처럼 서비스 업종은 FTA 를 통해 과연 업그레이드 될 것인가? 저자가 희망찬 어조로 생존 가능성을 제시하는 유일한 서비스 업종은 "동네 미장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든든히 믿고 있는 바는? 그래봐야 이민 갈 배짱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란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벼운 재치즉답이나 말재주에 호소하는 "지적 엔터테인먼트"인 것은 아니다. FTA를 둘러싼 수많은 쟁점들 - 수리 경제 예측 모델, 분야별 쟁점과 전망, 국제 협상 과정과 미국의 특징, 한국 관료 기구의 현 상황 등 - 을 오가면서 수없는 디테일과 통찰력있는 관찰 그리고 논리적인 추론 등을 풀어놓으면서 읽는 사람의 두뇌를 헐떡이게 만드는 빡센 책이기도 하다. 그렇게 쏟아지는 논리와 예증과 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 한반도 남단에서 상연되고 있는 이 한미 FTA 연내 체결 추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부조리극을 장면장면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먼저 정부와 정부 출연 기관이 내놓은, 한미 FTA의 혜택에 대해 수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단 하나의 문서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보고서가 해체된다. 이미 월간 <말> 4월호에서 지적된 바가 있지만, 대외경제연구원은 FTA  체결 후 대미 무역 흑자 감소 규모 숫자를 절반에 가깝게 대폭 축소했다는 조작 의혹이 있어왔다. 이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나서서 "나중에는 쌀시장 개방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모델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였다.
 
우 박사는 보고서에 나온 몇 개의 수치들의 일관성을 간단히 비교한 후, 결국 그러한 해명은 "쌀 개방을 않으면 수입이 줄어 국제 수지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2조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하게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명제로 귀결된다는 점을 밝히고 만다. 읽는 이가 민망하여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자는 강한 의혹에서 멈추고 있지만, 읽는 이로서는 결국 이 수치는 그냥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결국 FTA를 통해 우리 경제가 무슨 혜택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수리적 근거는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 다음에는 한미 FTA 추진 세력의 무지와 준비 부족에 메스가 가해진다. 과연 이들은 미국 시장의 현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주정부 연방 정부의 분권과 삼권 분립 등의 권력 체계를 이용하여 복잡하게 짜여져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미국의 무역 보호 체계와 시장 구조에 대한 분석은 있는가. 혹시 미국 내의 무역 관련 주요 50개 단체의 명단과 조직 체계에 대해서나마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가.
 
IMF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정부 기관 인력 대폭 감소를 거친 지금, 각 산업 부문에 따라 어떠한 전망과 조건과 기회가 있고 약점이 어떠한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현재 정부의 역량은 어느 만큼이나 되는가. 혹시 노무현 정부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뭘 물어봐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을" 지경의 무지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FTA의 혜택 분야라고 그토록 외쳐대는 한국의 서비스업 현황과 전망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저자의 결론은 아마도 정부가 알고 있는 것은, "한국 영화 못보고 병원 좀 못 간다고 국민들 다 죽는 것 아니다" 정도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지에 싸여 있는 정부가 FTA 연내 체결이라는 거사를 그토록 용감하게 감행하는 현재의 활극은 어떻게 벌어지게 된 것일까? 여기에서 저자의 비판의 화살은 정부 관료와 지배 엘리트들을 한바퀴 휘돌아 사회 전체의 "식자들"에게 날아와 꽂힌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솔직히 털어놓는다. 자신이 배운 경제학은 "수단을 선택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일 뿐이라고. 사회가 어떠한 가치에 기반한 어떤 모델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가치 합리성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자신처럼 20세기에 경제학을 배운 이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한다면 사실 월권이 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문제는 누가 답해야 하는가.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사회가 90년대 후반 이후에 들어오면서,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정치 경제 모델에서 새로운 모델로 넘어가야 하는 전환기를 맞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치 경제 모델의 전환과 선택은 단순히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 불리한가"와 같은 기술적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 할 것인가 - 노동자의 복지와 노동 안정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경쟁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또 생태적 농업의 가치와 전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등 - 에 대한 심층적인 사회 철학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토론과 합의에 기반하여 스웨덴 모델이건 네델란드 모델이건 미국 모델이건 스위스 모델이건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근거가 생겨나며, 경제학자들은 그때부터 비로소 그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의 방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의 대목에서 우리는 솔직히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식자층"들은 이 실로 중차대한 문제, 우리의 정치 경제 체제가 지향해야 할 근본적인 가치와 목표라는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였는가? 90년대의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들의 삶에 직결된 이 정치 경제의 문제는 골치 아픈 "기술적 문제" 혹은 아예 "거시 담론"이니 하는 엉뚱한 딱지가 붙은 채 아주 편리하게 지적 담론의 영역에서 제거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따분한데에다 실로 골치 아픈 주제를 부여잡고 해답을 내놓는 부담스런 작업의 멍에는 대부분 피해가지 않았던가?
 
저자의 화살은 이제 다시 관료들과 지배 엘리트들에게 돌아온다. 그들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지적 공백과 천박성을 이용하여 뻔뻔스럽게 외친다. "우리의 미래는 미국 모델이다!"라고. 저자가 보기엔, 수리적 근거도 또 현실 파악의 확실성도 없는 현재의 지배 집단이 그토록 저돌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신앙과 같은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 말한 "철학자"들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료들도 지배 엘리트들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가치에 대해 나름의 철학과 견해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문제는 그들이 그러한 철학과 견해를 형성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과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옛날 일본 개화기의 신사유람단은 근대 일본의 나아갈 바가 네덜란드 모델이냐 독일 모델이냐를 놓고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고 이러한 자세는 일본 국가 형성 과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에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지배 엘리트들은 단지 철학과 경제학의 논리를 대충 반쯤 씩 섞는 박쥐와 같은 행태로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시키려고 든다는 것이다. 사회 철학이나 정치 사상의 차원에서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이 이 "미국 모델 전략"의 가치에 의문을 표하면 이들은 갑자기 경제학자인 양 돌변하여 "당신들이 경제학을 아는가"라고 경제 논리 운운하면서 그 논의를 묵살해버린다. 그리고 막상 경제학자들이 그들이 가진 박약한 경제학적 논리를 논파하고 질문해 들어가면 느닷없이 "일본 모델 전망 없다. 미국 모델만이 살 길이다"라는 사이비 사회 철학적 논지에 호소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 지식 사회의 무능력의 간극을 타고서 그 독선적인 관료 집단과 지배 엘리트들이 대한민국의 방향타를 독점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포복절도할만한 부조리의 상황에 미래를 저당잡혀버린, 그 "연수 6천만원 이하의 4인 가족" 국민들이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는 것인가. 저자는 현재 노대통령과 외교부의 독주를 허용한 "87년 체제" 9차 개정 헌법의 시스템 오류를 거꾸로 해석함으로서 답을 찾고자 한다. 헌법 52조는 이러한 명제를 포함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사를 받아 국민투표에 붙일 권리(부의권)을 갖는다라고. 이 명제는 찬찬히 보게 되면 대통령의 권리를 규정한 것인 동시에 국민들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기도 하다. 즉, 부의권이란 국민들이 이 FTA 에 대해 국민투표에 붙일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 대통령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이자 권리이지 노대통령이 흔히 주장하는 "인사권"과 같은 자기 재량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국민투표를 행한 바 있고, 여기에서 "유전자 조작 음식물(GMO)"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정해지는 등 협상에서 오히려 유리한 입지점을 확보하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우리도 국민투표를 요구하자. FTA 를 찬성하는 쪽이건 반대하는 쪽이건 그 장에서 서로서로 토론과 설득을 통하여 국민들 모두가 함께 스스로의 경제적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하자. 책의 말미를 저자는 이렇게 맺고 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협상안을 직접 보고 스스로 투표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면, 서로 모르는 국민들끼리 "협동"을 통해서 하나의 "진화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그마가 아니라 상식이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질문이다. 그야말로 "이 폭주가 멈추는 날, 진화가 시작되리라"는 새로운 경구가 필요한 순간이다." 
 
역사의 대목대목마다 간혹 "동시대인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뺏어버리는 책"을 볼 수 있다. 소위 "시대적 의식적 한계" 등을 핑계로 하여 자신들의 무지와 나태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목전에서 벌어진 비이성과 부조리에 대한 책임에서 발뺌해버리는 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책이다.
 
우 박사의 이 짧은 저서도 우리에게 마찬가지의 도전을 던진다. 이제 "개국이냐 쇄국이냐" 혹은 "서비스업이냐 제조업 및 농업이냐" "일본식 모델이냐 미국식 모델이냐" 등등의 허구적인 쟁점에 기대어 FTA 문제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취하면서 익명성 속에 숨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이미 그러한 허구적 쟁점들과 여러 가지 정치적 수사학과 프로파갠다에 대한 짧지만 날카로운 논파, 그리고 무엇이 더 중요한 쟁점이며 또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방향인가에 대한 분명한 준거점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FTA를 추진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이 책을 통해 깨끗이 닦여진 접시 위에서 새로 자신의 때깔과 맛을 뽐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2006년에 출판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겐 이미 훗날 "2006년 당신의 현장 부재 증명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캐물을 대심문관을 따돌릴 여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자. 그리고 이 책과 맞서서 자신의 견해와 거취를 결정하고서 옆 사람에게 토론을 청하자. 정부가 내건 FTA 체결 시한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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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27 [02: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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