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터넷 실명제는 거부하고 ‘익명’을 살려내라
[시론] 언론통제 닮은 실명제, 표현과 언론, 정치사상의 자유 억압 안돼
 
황진태   기사입력  2006/05/24 [06:36]

소비에트연방의 멸망을 예견한 조지 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에서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농장주(인간)를 물리치고 '동물농장'을 세운다. 혁명의 성공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직후의 강령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의 기수였던 스노볼(트로츠키)은 쫓겨나고 '지도자' 나폴레옹(스탈린)이 등극한다. 이 권력쟁취의 합리화를 위해 스퀼러라는 돼지는 온갖 동물들의 기억과 여론을 조작한다. 여기서 소설의 내용을 장황하게 말할 것은 없고, 소설의 말미에는 혁명 초기에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강령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로 바뀐다.

"어떤 돼지는 턱이 다섯 개, 어떤 돼지는 네 개, 또 어떤 것은 세 개였다. 돼지들의 얼굴에서 뭔가 녹아내리고 변하는 거 같은데, 그게 뭘까? 그러자 응접실의 박수와 환성이 잠잠해지면서 그 안의 인간과 돼지들은 중단했던 카드게임을 다시 계속했고 밖의 동물들은 소리 없이 정원을 빠져나왔다" 즉, 혁명의 실패다. 여기서 스퀼러는 무엇을 풍자했을까? 바로 '진리'를 의미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였다.

중도 보수적 노선에서 '계몽의 기획'을 좇아가는 정치학자 황태연은 다음과 같이 여론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년 맑스는 일찍이 시민적 여론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꿈꾼 바 있다. 자유언론을 통한 사회적 공동업무의 "숨김없는 공개적 공론화"에 의해 전개되는 "진정한 공론(MEW : Marx Engels Werke 1,192)"은 국가관료의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공민적-시민적 정치이다.(MEW 1,61) 엥겔스는 원시공산사회에서도 유일하게 정통적인 '강제수단'은 '여론'이었다는 사실(MEW 21,164)을 강조하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의 희미한 정치적 해방기획을 해독해보면 '정치적 국가의 사멸'은 국가의 계급억압적 '지배' 기능의 사멸과 민주-여론정치의 완전한 발전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황태연, 칼 맑스의 정치철학과 혁명사상, 계몽의 기획, 332쪽)

'프라우다'가 내세운 진리는 "두 발은 나쁘다"를 "두발은 더 좋다"로 바꾸는 '왜곡의 진리화'였다. 소비에트연방 해체의 결정적인 이유는 여론의 입막음에도 있었다. 그래서 맑스와 엥겔스의 해방기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완숙기의 맑스와 엥겔스에게는 '비상(非常)정치'인 혁명투쟁 이외에 민주적인 '정상(正常)정치' 및 여론정치의 관점이 완전 결여되어있다. 더구나 이 민주-여론정치를 국가사멸론과 접맥시키는 논리도 전무하다. 맑스의 유물론적 해방기획이 공산당국가의 언론탄압 논리로 뒤집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치명적인 이론적 결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황태연,  칼 맑스의 정치철학과 혁명사상, 계몽의 기획, 332쪽)

공직선거법 제82조 6항에 의거해 인터넷언론사를 대상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됐다. 오늘날 군사정권하의 언론탄압 수준의 강도를 체험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소비에트 연방의 '프라우다'를 끌어올 수 있냐는 반문이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진보매체 <참세상>의 인터넷 실명제 거부와 관련된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보인권 등은 어느 하나도 등한시할 수 없는 중요하고, 보편적인 민중의 권리이다. 때문에 이는 진보적 언론이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소명이다"는 말처럼 소통을 방해하는 정부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인터넷 진지였던 <서프라이즈>가 성장하게 된 주 원동력은 익명의 누리꾼들의 '칼럼'과 '댓글' 참여에 있었다. 인터넷의 특징 중 하나인 '익명성'의 장점을 노 대통령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정권시절의 언론탄압만이 탄압의 전부는 아니다. 인터넷 언론에 익명의 댓글이 없다면 그 매체는 단지 '게시판'에 불과하다. 이는 돼지가 네 다리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에 배반하는 의식을 갖는 것을 일컫는다. 재차 말한다.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며 악법의 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대자보는 선거기간 선관위가 강제하는 실명제 실시를 거부하며, 이에 대한 항의표시로 게시판 폐쇄 및 댓글달기를 달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대신 정론직필에 입각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내용을 보다 충실히 전달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사과드리며,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문의 및 수정사항:
web@jabo.co.kr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5/24 [06:3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