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연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논 딸' 문제와 관련해 일부 네티즌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연대의 비판은 <문화쟁점>이란 칼럼섹션에서 김상철씨가 기고한 <권리와 계산을 넘어선 ‘모녀의 삶’>이란 글을 통해 이뤄졌다. 몬화연대는 칼럼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며 그런 씁쓸함은 "한국일보의 ‘장명수 칼럼’과 맥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칼럼은 '장명수 칼럼'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이 화제가 된 후 김대중 전대통령이 재임하던 2000년에 목숨을 끊었던 내연의 처에 대한 이야기와 마치 ‘거지’처럼 생활비를 받으러 동교동으로 향했던 딸의 이야기는 묻혀지고 있다고 지적한 후 "세상의 어떠한 권력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담보로 할 만큼 정당한 것은 없으며 만약 그러한 것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것이라 한다면 범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런 점에서 SBS의 보도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음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숨겨진 모녀의 삶을 더욱 비극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두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버린 것은 애뜻한 ‘사랑’으로 합리화 할 수 있는 것도 공인의 보장받아야 될 ‘사생활’로 보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이 칼럼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이번 사건이 현재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계산에 열중하는 모습"이라며 "그 명민한 계산 하에서 행여나 그 모녀의 삶이 또 한번 고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며 민주당 지지자들과 일부에서 나타난 '조작설'과 '음모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뒷 배경이나 의혹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의 일차적인,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없는 행위는 결국 정당하지 못한 법"이라고 글을 맺었다.
다음은 문화연대 '문화쟁점'에 오른 본문이다. 전직대통령의 허리하학적인 이야기가 화제다. 요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정부기관의 보호 속에 그동안 은폐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SBS의 ‘뉴스추적’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되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과거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자의든 타의든 걸치게 된 도덕성의 이미지에 비춰 보면 꽤나 충격적인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아랫도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하좌우의 차이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를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겨레>의 지난 26일자 기사를 통해 해당 보도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보도하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는 알권리와 사생활보호의 의견이 45:54인 반면, 파란의 즉석투표에서는 52:45의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이는 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사생활 보도에 대한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감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이런 공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보호와 알 권리의 충족이라는 가치가 격돌한 사례는 적지 않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황수정 등 일부 연예인의 섹스 비디오 문제에서부터 ‘그때 그 사람들’의 궁정동 내실 문제, 그리고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묵주게이트 같은 경우가 사안의 차이가 있더라도 큰 맥락에서는 같은 논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해외의 사례를 보자면 클린턴 미 전대통령의 ‘지퍼게이트’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숨겨논 딸 논란이 최근의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위의 사례 전부가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라는 첨예한 가치의 충돌을 야기했지만 당사자 본인에게는 공인의 진퇴에 대한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내실에서 수많은 연예인들을 찍어가며 놀았다는 사실이 박정희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경향은 찾기 어렵고 정형근이 그때 그 묵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
위의 모든 사안들은 결국 ‘저널리즘’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견해이다. 사람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사화된 내용은 주워 담을 수 없으며 결국 그에 비판하는 쪽이든 옹호하는 쪽이든 결과적으로 그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일조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례는 진승현 게이트라는 정치적 비리에 연관된 것은 물론 국정원 등의 정부기관에서 조직적으로 관리 은폐해왔다는 사실을 들어, 후속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타당한 지적이다. 정치인과 연관된 문제에 비정치적인 원인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례도 분명 정치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 특히 정부기관이 조직적으로 관리 은폐해왔다면 응당 그의 타당성은 물론 진행 과정에 대한 공개가 마땅하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런 씁쓸함은 한국일보의 ‘장명수 칼럼’과 맥을 같이 한다. 장명수는 25일자 한국일보에 ‘숨겨진 모녀의 파괴된 삶’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를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생활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숨겨진 모녀를 객체화시키고 있으며 이들의 비극적 삶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재임하던 2000년에 목숨을 끊었던 내연의 처에 대한 이야기와 마치 ‘거지’처럼 생활비를 받으러 동교동으로 향했던 딸의 이야기는 묻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권력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담보로 할 만큼 정당한 것은 없으며 만약 그러한 것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것이라 한다면 범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SBS의 보도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음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숨겨진 모녀의 삶을 더욱 비극으로 만들고 있다.
흔히들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건과 같은 것을 ‘스캔들’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장애물’이나 ‘덫’의 의미를 지닌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어원에 따른다면 스캔들은 당사자가 극복해야 될 것이나 피해가야 할 것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런 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버린 것은 애뜻한 ‘사랑’으로 합리화 할 수 있는 것도 공인의 보장받아야 될 ‘사생활’로 보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 기관이 나섰다면 더욱 그렇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이번 사건이 현재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계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명민한 계산 하에서 행여나 그 모녀의 삶이 또 한번 고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다시 한번 클린턴의 예를 든다면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에 있어 가장 많이 지탄 받았던 것은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라 임시방편적으로 끊임없이 내뱉은 거짓말이었다.
이번 SBS의 보도에 대해 뒷 배경이나 의혹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의 일차적인,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이 김대중 전대통령의 행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없는 행위는 결국 정당하지 못한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