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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빵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정문순 칼럼] 페미니즘이 음지에서 암약한다고 믿는 음모론
 
정문순

요즘 추억의 과자로 나오는 라면과자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라면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로 만들었다는 오해 때문에 궁핍한 시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 과자는 다른 의미의 궁핍도 담고 있다. 당시 한 제품의 포장지 그림에 간첩끼리 은밀하게 주고받는 신호가 담겨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그 과자 디자인을 담당하는 직원이 간첩이거나 그들과 내통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간첩이 세상 곳곳에 암약한다고 믿었던 시대, 척박한 세상이 낳은 궁핍한 상상력이었다.

 

요즘도 특정한 세력이 주도하는 비밀 암호놀이가 있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 편의점 기업에서 잠깐 논란이 된 사건도 라면과자 암호놀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상황은 라면과자 때보다 더 나아갔다. 라면과자의 경우 포장지를 디자인하는 직원 중에 간첩이 있으니 색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음도 물론이다. 그러나 편의점 사건에서는 해당 편의점 상품 광고 담당자 중에 페미직원들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제품 불매를 선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파가 심했는지 급기야 회사는 사과했다. 그러나 되레 꼼짝없는 증거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을 격려한 꼴이 돼버렸다.

 

해당 편의점 광고를 페미들의 암호놀이라고 본 사람들이 내놓은 근거 중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도 있었다. 한 여성단체가 행사 포스터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이미지로 꾸몄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시중의 보름달빵은 페미 상징 그 자체일 것이다. 페미 상징을 먹고 있다니, 이럴 수가.

 

내가 궁금한 것은, 과자 포장지에서 간첩 색출하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암호놀이가 실제로 있다고 한들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엄지와 검지로 빵을 잡는 광고가 남성혐오를 암시한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남성혐오로 낙인찍힌 한 여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런 손동작으로 한국 남성성을 조롱했기 때문이란다.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도 해괴하지만 그게 맞다고 치자. 그 이미지를 접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혐오에 물들기라도 한단 말인지?

 

암호놀이는 비밀이 생명이다. 70년대 간첩들은 라면과자 그림이 알려주는 지시에 따라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손가락 쥐는 모양이나 달 그림이 페미니즘을 선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호는 어차피 극소수만 알아볼 뿐이다. 소수끼리 알아보는 메시지가 대중을 상대로 뭔가 일을 벌일 확률은 티끌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음모론자들이 들고일어난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 음지에서 암약하는 여자들이 암호놀이로 대중을 기만하고 조롱함으로써 즐긴다는 것이 그들 눈에 문제였다. 결국 그들의 심정은 기분 나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     © tk)부산성폭력상담소


한다. 여자들이 은밀한 곳에서 사람들을 갖고 놀 음모를 꾸민다고 믿는 수준의 상상력을 환골탈태하고 부단히 쇄신해야 한다. 페미들이 몰래 작전을 짠다고 믿으며 눈에 안보이는 것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 색출하려고 하는 이들은, 정작 양지에서 아예 드러내놓고 사이버 공간에서든 게임이든 심지어 국방부 제작 프로그램에서조차 여성에게 혐오나 폭력이 저질러지는 것에는 둔감하다. 어떤 게임은 여성을 성추행하는 동작을 버젓이 담기도 한다. 해악을 따지면 어떤 게 이길까.

  

2000년대 초기만 해도 페미니즘은 새로운 지적 담론으로 다루어졌고 지식인 사회에서 그것을 모르면 망신당하는 풍조도 있었다. 당시 아줌마라는 방송드라마에서 위선적인 지식인으로 나오는 대학교수는 자신의 페미니즘 지식을 자랑하면서 허세를 드러내기도 했다. 속물 지식인이 자신을 포장하는 데 이용할 정도로 고급 지식이론으로 대접받았던 페미니즘은 지금은 자신들에게 도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자들의 활약으로 어느덧 기류가 반전된 상태다. 여기에는 유치한 수준의 음모론도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장도 음모론일까? 아니면 말고.

 

* 526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기사입력: 2021/05/28 [13:1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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