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를 놓고 말이 분분하다. 여당이 압승인 가운데 영남에서는 여당 바람이 힘을 못썼다는 진단이 대세를 이룬다. 그러자 한겨레에서 반박 기사를 냈다. 영남의 민주당 득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올랐다는 것이다. 비록 영남 지역의 민주당 지역구 의석은 지난 총선보다 줄었지만 민주당의 득표율은 지난 대선 이후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나는 지역구도론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영남의 민주당 득표율을 분석하면서 의미를 두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민주당 지지율은 24.4%였는데 이번에는 28.5%라고 한다. 미래통합당의 본거지에서 ‘무려’ 4.1% 상승. 엄청난 일일까? 영남의 민주당 지지가 조금 오른 것을 지역구도 완화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있을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 숫자는 별반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졌다면 영남이 조금이라도 동반하여 오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상식적이다. 영남의 민주당 지지율이 의미를 얻으려면 영남을 뺀 지역에서는 정체되거나 떨어졌는데도 영남은 그것과 따로 놀 때뿐이다. 별 의미가 없는데도 의미를 꿰맞추려는 건 영남의 심각한 반민주당 정서를 외면하는 데 불과하다.
또 다르게 보자면, ‘표심’이라고 일컫는 투표 결과는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민주당이 넉넉하게 이길 것이라는 짐작이 우세했다. 내가 대구경북 유권자라고 치자. 민주당을 결코 찍을 일이 없는 내가 어차피 투표해 봤자 투표장 갔다 오는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권을 함으로써 대구의 민주당 지지율 28.5%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이 숫자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기권이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득을 보게 하는 한, 그 유권자의 ‘표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구경북 또는 범영남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치공학을 가뿐히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민주당 지지율 추이로 이들의 정치 성향을 분석하려고 드는 것은 숫자놀음의 위험이 늘 따른다. 이들은 여론조사나 선거 예측을 가볍게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992년 대선에서 저 유명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누구나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김영삼의 민주자유당의 참패를 예측하자, 영남의 유권자들은 이를 되레 지지율 상승의 반전으로 삼았다. 민자당에게 악재가 터지지 않았다면 달라질 수 있는 결과가 뒤집혔다.
이번에도 영남 지역에서는 그랬다. 언론에서 호남 지역의 사전투표율이 매우 높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필이면 호남을 콕 찍어서 언급한 보도가 영남 유권자들에게 신호를 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호남의 높은 사전투표율 또는 민주당이 이길 거라는 여론조사는 낙심하던 영남 유권자에게 집에서 잘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암시하는 계시가 된다. 역대 선거에서 이런 일은 흔했다. 2004년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열린우리당이 초반에 승기를 잡고 부산에서마저 열린우리당 후보 들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고 부산의 열린우리당 후보들 중 몇몇은 선거 후반에는 선거운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지하는 정당이 이길 것 같으면 그냥 놔두면 되고, 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면 차돌 같은 응집력으로 판세를 뒤집는 어벤저스에게 그 어떤 정치공학을 들이대더라도 효력이 듣지 않는다. 불패의 정당을 만드는 유권자에게 어떤 이론이 먹혀들까.
기실 정치공학을 무색하게 하는 영남 유권자의 정서는 철저한 반호남·반김대중을 축으로 삼고 있다. 지역구도나 지역감정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호남과 김대중을 뼛속 깊이 혐오해마지 않는 영남 유권자들은 전라도에 근거를 둔 정당을 용납하지 못한다. 대구경북은 호남을 총칼로 철저히 유린하고 상종 못할 사람들로 인종차별을 가한 군사정권의 수혜를 집중 받은 곳이다. 반호남정서가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쌀밥과 김치가 단군 시대부터 먹어온 것이 아니듯 사람들이 오래 되었거나 원래부터 그랬다고 알고 있는 것들은 연원이 길지 않은 것들이 많다. 1960년대만 해도 호남차별은 없었다. 1960년 3.15의거의 김주열은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을 넘어 옛 마산에 유학 온 학생이었다. 영남과 호남 간의 교통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불편했음에도 지금 영남인들이 느끼는 마음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감정’이라는 이상한 말에 가려진 호남차별은 박정희 정권 이후 역대 군사정권의 정치공작이 빚은 산물일 따름이며, 군사정권과 그 계승자인 미래통합당+조선일보가 거점으로 삼은 대구경북이 반호남주의에 묶이면서 정치의식도 철저히 수구화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애써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TK정권한테서 받은 것도 없는 부산과 경남 사람들도 호남 배척 정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1990년 3당합당을 통해 호남을 배제한 정당들이 한 집안이 된 게 결정적이었다.
영남의 호남 혐오 정서가 꺾이지 않는 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영남에서 당선되는 일은 앞으로도 힘겨울 것이다. 부산과 경남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낳은 대구와 경북에 비해 호남 배제 의식이 덜하므로 그나마 민주당이 선거를 해볼 만한 지역은 되었을 뿐이다. 호남 혐오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한 내세울 것 없는 극우 세력이 혐오정서에 기대어 영남에서 승승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박정희를 청산하고 군사정권의 유산을 역사 저편으로 보내는 것과 호남 차별을 이기는 일은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 정권이 정치 공작을 자행하던 시절에 젊은 날을 보낸 영남인들은 밥상머리에서부터 자식들에게 전라도 혐오를 가르쳤다. 그렇게 성장한 나 같은 경상도 사람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는 감수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정치가 달라진다.
* 4월 21일 경남도민일보 게재 칼럼을 손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