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반찬 많이 나오는 음식점이 싫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4년 후에 태어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0년대였다. 그때 우리나라는 정말 지독히도 가난했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다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았기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계층 간 갈등은 별로 없었다.
그때의 추억 하나. 어린 내가 또래 꼬마들과 놀던 동네 한 편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청소하는 아저씨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입으로 열심히 불어대기에 ‘저게 뭔가’ 하고 한참 쳐다보았다. 허연 연탄재가 가득 묻은 돼지 껍데기 한조각이었다. 연탄재를 다 털어낸 아저씨가 한 입에 냉큼 집어넣고 씹어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시절 내가 먹어봤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건 단연 ‘꿀꿀이죽’이었다. 그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건 이모네 집이 미군부대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안산 바닷가 작은 동산 위에 미국의 공군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그 부대에서 먹다 남은 음식 잔반을 모아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 먹으라고 준 건 아니다. 돼지 사료로 쓰라고 주었기에 그 이름이 ‘꿀꿀이죽’이었다. 하지만 당시 보통의 한국인으로서는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기에 배급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잔반을 얻어 큰 솥에 넣고 펄펄 끓여 온 가족이 먹었다. 미군들이 먹다 남긴 고기덩어리, 각종 과일들, 치즈와 계란, 우유 등이 혼합된 꿀꿀이죽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 시절 북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경제적으로 잘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북한은 하루에 한두끼 강냉이(옥수수)죽으로 겨우 연명한다”고 배웠다. 김일성은 얼굴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박정희보다 훨씬 잘 생긴 미남이었다는 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의 사진을 소지하거나 보기만 해도 붙잡혀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 어려운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풍요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누어지지 않는 풍요’ 또는 ‘남아 버려지는 풍요’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음식물이 남아 버려지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반찬이 많이 나오는 음식점에는 나 혼자서는 결코 가지 않는다.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국물이 남으면 버리기 아까워 남겨두었다가 다음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2. 작은 도둑 큰 도둑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 중에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말이 있다. “체제보장만 된다면 뭐하러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습니까?” 어렵게 살더라도 핵을 갖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핵보다 어렵게 사는 것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인가? 그리고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핵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보수층에서는 북을 믿으면 안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늘 하던 상투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정말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진실이 아니면 어떤가? 진실이건 술책이건 그가 한 말 자체가 액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며칠 후면 조미정상회담이 열린다. (‘북미’가 아니라 ‘조미’라고 하는 이유는 ‘한미정상회담’에 어울리는 말은 ‘조미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한때 회담이 불발될 뻔한 적이 있었다. 북이 심술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미국이 심술을 부렸다. 북이 ‘온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자 미국에서 생화학무기와 인권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나도 북의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또한 핵은 물론 생화학무기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예 무기 없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 칼을 내려놓으려는 자에게 무릎까지 꿇으라고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너 죽고 나 죽자”고 버티다 처자식 생각에 “그래도 살아야지” 하고 자존심 누르고 칼을 내려놓겠다는데 무릎까지 꿇으라면 어떻게 나올까?
그래도 칼을 내려놓으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고 나오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 것인가. 물론 미국은 조선(북한)을 지도에서 깨끗이 지울 힘이 있다. 그러나 미국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게다. 한국은 조선과 함께 죽거나 불구가 되겠지...
어쩌면 미국은 이 모든 걸 계산에 넣고 있지 않을까? 한국이 없어지더라도 미국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생기기 전에 손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을 것 같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이웃이 걸린 암보다 내 손에 난 상처가 더 아프다는 얘기 말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 하나. 알렉산더 대왕 앞에 해적 두목이 끌려왔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는 대왕 앞에서 해적 두목이 했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은 대왕이 하는 일과 같은 것이오, 다만 나는 작게 해서 해적이 되었고 당신은 크게 해서 대왕이 된 것 뿐이오.”
솔직히 핵이 위험하고 해로우면 다 같이 내려놓아야 한다. 왜 누군 가져도 되고 누군 가지면 안 되는가? 북이 계속 주장했던 논리다. 논리적으로 틀릴 게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세계가 불합리한 선택에 동의한 것뿐이다. 이제 북도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그 논리에 동의하려 한다. 큰 고민 끝에 칼을 내려놓으려는 건데 그의 자존심 좀 세워주면 안될까?
북의 인권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기의 적절성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무데나 배변을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가 있는 거다. 백일 갓 지난 어린 아기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아이가 알아서 한다.
3. 김정은 위원장에게
당신과 당신의 나라를 어린 아이에 비유해서 미안하다. 하도 말길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기에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한 말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나는 당신의 나라 조선이 한국보다 역사적 정통성이나 체제상으로 우월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때가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게 되기를 원한다.
미안한 점 또 하나. 당신을 미친놈이라고 욕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도 똑같이 욕했으니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지금은 당신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형과 고모부를 잔인하게 죽인 독재자라고 누군가 당신을 욕하면 조선 임금 태종과 세조를 예로 들면서 당신을 변호하기도 한다.
당신은 내 아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 어리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편견일 게다. 내가 평생의 멘토로 모시는 예수님도 당신과 비슷한 나이에 활동하셨고 더 이른 시기에 돌아가셨다(고 전해진다). 하여 당신의 젊음이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와 번영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추진력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어렸을 때는 당신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잘 살았다. 그런데 연유가 어찌되었건 지난 20여 년간 너무나 혹독한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당신과 조선의 인민들은 잘 견뎌냈다. 그에 대해 당신과 조선의 인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비핵화에 대한 당신의 약속이 진심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신의 정치와 외교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인민들이 부유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에 남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주시기를 진실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