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림픽과 젊은이들
평창올림픽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어제(2018년 2월 10일)는 쇼트트랙 남자 1500미터 경기에서 우리나라의 임효준 선수가 첫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옛날과 많이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적어도 금메달에만 목을 매는 분위기는 아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가 쏟아진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도 감지된다. 우리나라 선수단에 파란 눈과 하얀 얼굴을 가진 젊은이들이 섞여있다. 귀화한 선수들이다. 그들을 보는 시선 또한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겉모습이 어떻건 그냥 우리 선수로 대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내 또래, 그러니까 나이 60이 넘은 세대들이 과연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눈앞의 성적을 위해 조국을 팔아먹은 놈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런 변화가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그래, 자유로운 젊은이들이여! 그렇게 그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라. 국가와 민족이란 그저 개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위해 설정해놓은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이 그대들의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면 과감히 뛰어넘으라. 넘을 수 없는 벽이라면 부숴버리는 것도 괜찮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못하고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2. 젊은 그대들의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어라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관습이 바뀌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벽이 무너지는 걸 보는 나는 행복하다. 그런 현상이 지구마을 여기저기서 들불처럼 일어나면 좋겠다. 기꺼이 국적을 바꿀 수 있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인종이나 민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류의 이름으로 하나 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젊은이들이 내 주변에 넘쳐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을 얽어맸던 틀을 부숴라. 그대들의 자유와 행복을 억눌렀던 불편한 옷들을 벗어던지라. 종교도 바꾸고 싶으면 바꾸어도 좋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종교가 행복을 주지 못하면 과감히 떠나거나 그대의 성향에 맞는 종교로 바꾸어라.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에 혼란을 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는 인류의 행복과 번영이라는 이름 앞에 사라지게 하라!
하얀색 피부를 가진 젊은이와 노란색 피부를 가진 젊은이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면 망설이지 말고 결혼하라. 노란색 피부를 가진 젊은이와 검은색 피부를 가진 젊은이도 그렇게 하라. 젊은 그대들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한국인과 중국인이, 중국인과 일본인이, 미국인과 이란인이, 결혼하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사랑이 최고의 가치다. 서로 사랑한다면 국적이나 민족, 인종 따위는 과감히 넘어서라.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민족이니 인종이니 국가니 종교니 하는 것들이 아무 제약이 되지 않는 세상, 그저 사람이면 그것으로 족한 세상을 만들어가라. 지구마을에서 ‘어느 나라 사람’ ‘어느 민족’ ‘어느 종교’ 이런 조건들은 그저 문화의 다양성을 의미할 뿐 더 이상 그 사람의 인생의 족쇄가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라.
3. 기성세대로서 젊은 그대들에게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
왜 진작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했느냐고? 미안하다. 못나서 그랬다. 몰라서 그랬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그 못난 것들이 절대가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반공’이라는 이름의 국가이념에 이의를 제기하면 붙잡혀갔고 그렇게 붙잡혀간 이들 중에는 사형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그때는 북이 남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았지만 그런 사실을 말하면 체포되었다. 김일성의 얼굴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박정희보다 훨씬 잘생긴 그의 얼굴사진을 소지하거나 공개하면 반공법에 걸려 감옥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 노태우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이어졌다.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무조건 남한이 북한보다 좋고 우월하며 북한은 악의 화신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고무 찬양 죄’가 되어 그 무서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생을 망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세뇌되어 살아왔다.
그게 우리 꼰대세대의 한계다. 그래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런데 젊은 그대들에게 미안함을 넘어, 부끄러움을 넘어, 엎드려 사죄해야 할 일이 있다.
어제는 한반도 역사에 길이 기억될 날이 될 지도 모른다. 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평화의 메시지를 들고 남으로 왔다.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사적 행보가 이 올림픽 기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이 오가면서 서로 축하해주고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놀라운 일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해괴한 짓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거의 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60대 이후의 세대들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조금 더 변명을 하고 싶다.
그들 중에는 진심으로 “북의 간교한 꾀에 넘어가 대한민국이 절단 나는 걸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애국자가 많다. 그들이 배워온 바에 의하면, 북은 언제나 악하고 언제나 간교하기에, 북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악과 타협하거나 악에게 속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받은 세뇌교육이 북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북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철저히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국가가 주도하여 벌인 이른바 ‘반공교육’의 주요 내용이었지만 그 안에는 ‘미국은 천사의 나라’라는 암시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시위를 한다는 사람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시위현장에 나타나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세뇌된 사람들이 거리 뿐 아니라 정치인 중에도, 국회에도, 심지어 법조계에까지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곳곳에는 그렇게 세뇌된 사람들, 불쌍하게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아예 박탈당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기란 너무나 어렵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그렇게 어려운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 살아왔어도 제 자식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젊은 그대들에게 부탁하는 거다. 이런 못난 짓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게 해 달라. 그대들은 아무쪼록 모든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대를 살아가 달라.
아니, 하나의 이념은 필요한 것 같다. 그 어떤 이념과 종교와 가치도 사람보다 더 앞서가면 안 된다는 단 하나의 이념 말이다. 올림픽정신의 궁극점도 결국은 그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