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박보검씨가 이단논쟁에 휘말렸다. 그가 가족과 함께 다녔다는 예수중심교회의 이초석 담임목사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보검씨 부친의 증언에 의하면 박씨는 어렸을 때 중병을 앓았고 이초석 목사의 기도를 받은 후 완치되었다고 한다.
교회행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SNS에 올린 것으로 보아 그 교회가 소위 보수정통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찍힌 교회라는 걸 박보검씨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한번 이단으로 낙인찍히면 화형이나 참수형을 당했던 중세시대가 아니라 다행이다. 하지만 대중의 스타로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 정통은 ‘밥통’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모르몬교, 신천지, JMS, 구원파 등 수없이 많은 기독교(정확히 말하면 개신교) 분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 주류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낙인찍힌 조직이다.
그러면 정통이란 무엇이고 이단은 무엇인가? 글자의 뜻으로 풀이하면 정통이란 ‘바른 이음’을 의미한다. 창시자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가르침을 올바로 이어온 교회가 정통이고 그 가르침을 바꾸어 다르게 가지를 친 조직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통은 밥통’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이른바 ‘보수정통’이라는 주류 교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은 조직이 아니라 밥통으로, 즉 힘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조직을 장악하여 스스로 ‘정통’을 자처한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왜냐 하면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은 오늘날의 ‘보수정통’이 주장하는 배타 교리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주장은 아니다. 한국의 주류교회들이 핵심교리로 내세우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즉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선하게 살고, 아무리 종교적으로 수양을 쌓아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배타 교리가 예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는 현대 신학자들은 거의 없다.
하여 정통과 이단을 제대로 가리려면 ‘예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가?’라는 신학적 주제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난 2천년 동안 싸워온 끝없는 논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 짧은 지면을 통해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2.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단’이 아니라 ‘사이비종교’를 가려내는 것
우리 사회는, 그리고 박보검씨를 좋아하는 팬들은, 이단논쟁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정통과 이단에 대한 논쟁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종교조직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종교조직이 있는지 잘 분별하여 정통이건 이단이건 관계없이 사이비종교가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사이비종교란, 종교라는 이름은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종교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조직을 말한다. (사이비라는 말이 ‘비슷하지만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해를 끼치는 ‘해로운 종교’를 사이비종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예수중심교회가 교인들을 속여 금품을 갈취한다거나 가정을 파괴하는 등의 사회적 범법 행위를 한다면 사이비종교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한다거나 주류 교회들이 인정하지 않는 교리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사회가 휩쓸릴 필요는 전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개신교라는 종교 내부의 일일 뿐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개신교 주류 교회들은 건전한가 하는 문제다. 사실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들은 교리적 독선과 배타성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극우적 입장에서 정치적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종교인납세문제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아 뜻있는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저항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렇게 반사회적 성격을 띠는 개신교 주류 교회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권을 장악하고 통제해 온 소위 ‘보수정통’ 교단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회적 안녕과 평화를 해치는 종교조직을 ‘사이비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이단으로 낙인찍힌 교회들보다 개신교 주류 교회들을 먼저 사이비종교로 단죄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정한 교회들도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들이다. 이들 교회는 대부분 작고 가난하다. 이들 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0% 내외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 교회들은 다수의 주류교회들로부터 견제를 받거나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뛰어온 섬돌향린교회와 임보라 담임목사가 주류 교단들로부터 이단 심사를 받고 있는 현상이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명확히 말하고 싶다. 내 눈에는 예수중심교회 역시 ‘보수정통’을 주장하는 배타적 주류교회들과 같은 범주에 들어있을 뿐이다. 그들은 세부적인 내용에서 주류 교회들과 다른 교리를 갖고 있지만, 핵심 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오직 예수만’이라는 독선과 배타에 기초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초기 교인들의 고백은 ‘고백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몇 달 전에 치른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낼 사람은 오직 000 후보밖에 없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말은 그렇게 믿는 그들 자신에게는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강요하면 사회에 큰 혼란과 위기를 부르게 된다.
3.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오늘날 ‘오직 예수’를 부르짖는 교회는 개신교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라는 것을 지난 2~300년에 걸친 치열한 연구와 논쟁을 통해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독교 신학자와 교인들이 동의하고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혹독한 검증과 비판을 거쳐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진 낡은 교리가 개신교 후진국인 미국과 한국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 개신교의 30~40%, 한국 개신교의 80~90%는 여전히 ‘보수정통’ 교회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믿는 교리만이 절대 진리라고 타인에게 강요하며 사회에 끝없는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다시 박보검씨 문제로 돌아가 보자. 그는 연예인이다. 내 아내도 그의 팬이다. 우리 집에도 그의 사진이 있다. <구름이 그린 달빛>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아내를 위해 내가 구해준 사진이다.
아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 생겼고 귀엽고 연기를 매력적으로 잘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영화배우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것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한가?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박보검씨가 어떤 종교를 택하건 그건 그의 자유다. 그 종교를 통해 그가 행복할 수 있다면 팬들도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꺼이 인정해주어야 한다. 팬들이 그 종교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건 별개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종교조직이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분별하며 감시하는 일이다. 그가 선택한 교회가 사이비종교라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법적 징벌도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단논쟁은 종교 기득권자들에게 맡겨두자. 그건 그들 내부의 파워게임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