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봄, 나는 장편소설 한 권을 출간했다. 제목은 <신의 눈물>. 개신교의 독선과 배타로 인한 사회갈등이 한반도 종교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제기한 소설이지만, 북한 핵 문제도 담겨 있다.
요즘 미국과 남북한이 하고 있는 짓을 보면 3년 전 그때 썼던 내 글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러다 한반도가 괴멸되는 건 아닐까?
아래 글은 <신의 눈물>에 나오는 장면의 일부다. 대화는 필요 없고 힘으로 북한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미국을 천사의 나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소용없는 짓인 것 같아 슬프다. 읽어야 할 사람들은 무시하고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관심을 기울여줄 것 같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거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미쳐가는 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토해낸 상우의 탄식에 하림이 흐흐 웃으며 말을 받았다.
"두 놈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지. 탈북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구! 내 생각엔 아주 정곡을 찌르고 있어. 북은 미쳤고 남은 썩었다! 들어봤냐?"
(중략)
"상우야, 탈북자들이 하는 말에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담겨 있어. 미친놈 피해서 왔더니 썩은 놈들 세상이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지! 탈북자들 중에는 차라리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아, 남이나 북이나 참 큰일이다!"
"하림아, 너 너무 기우는 거 아니냐? 쟤네들 사정은 귀로 듣고 여기 사정은 눈으로 보면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싶은 게 좀 걱정된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해! 오히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남쪽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담겨있어. 네가 기독교를 정신없이 비판해대면서도 예수정신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남쪽은 비판할 정도가 되니까 비판하지만 저쪽은 아예 비판할 수준도 못된다 그거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북을 비판하는 건 아무 실익이 없어. 쟤네들은 수십 년을 자존심으로 버텨온 친구들이야. 역사적 정당성은 자기들에게 있다는 거지. 남쪽이 매춘부처럼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그저 일본놈 미국놈 뒷구녕이나 닦아주고 번 돈으로 조금 살게 되었다고 해서 꿀릴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게다가 저쪽은 쌀은 없어도 무기는 차고 넘쳐난다구. 아무리 재래식이고 낡았다 해도 남쪽에 쏟아부으면 깡그리 갈아엎고도 남을 무기들이야.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겠다는 거야. 남쪽에 완승을 거둘 수는 없겠지만 같이 죽을 힘은 충분히 갖고 있어!"
말을 잠시 중단한 하림이 돼지갈비 더미에 죽 칼질을 하고는 한 쪽을 집어들며 말을 이었다.
"다 잃어버린 놈을 코너로 모는 건 좋지 않아! 같이 죽자고 자폭하면 잃을게 많은 놈이 더 억울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상우도 갈비 한쪽을 집어 입에 몰아넣었다.
"그래, 어차피 죽게 되었는데 아직 쓸만한 무기가 남아있다면 어떻게 하겠니? 게다가 꼴보기 싫은 놈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거 신나게 써보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냐구?"
하림이 다 발라먹은 갈비를 툭 던졌다. 또 한 쪽을 집어 입에 가득 넣고 빙글빙글 돌려 살점을 뜯어가며 하림이 말을 이었다.
"요걸 그냥 씹어먹을 순 없잖아, 가운데 박힌 뼈가 있는데! 살살 돌려가면서 발라먹어야지!"
"무슨 말이야?"
"감정대로 처리할 일이 아니란 거야. 자존심 팔아가며 열심히 일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마련해놓은 게 꽤 있는 놈 입장에선 같이 죽으면 훨씬 더 억울하지 않겠어? 지금 저쪽을 자극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구. 이러다 한 방 터지면 남북은 그냥 다 죽는 거야. 상대만 죽이고 살아남을 힘은 어느 쪽에도 없어, 그냥 다 가는 거지! 어린애도 다 아는 상식 아니냐?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하림이 다 발라먹은 돼지갈비 조각을 툭 던지며 상우를 쏘아보았다.
"북이 지금 핵을 몇 개나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더 문제가 되는 건 그걸 장착한 북의 탄도미사일 사정거리가 계속 길어지고 있다는 거야. 지금은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지만, 조금 더 지나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라구. 미국으로선 마지노선에 접근해오는 북을 그냥 둘 수 없는 이유가 되겠지."
"그냥 둘 수 없다면, 어떻게 한다는 거야?"
▲ 한반도 종교전쟁을 막기위한 류상태 목사의 고언이 담긴 「신의 눈물」(부제 : 한반도종교전쟁)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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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포기하는 거지. 핵을 장착한 탄도 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오기 전에 그냥 북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거! 물론 북이 가만있지 않겠지. 그러나 본토를 공격할 수 없는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너, 지금 소설 쓰냐?"
"응, 실현 가능한 소설을 쓰는 거지, 결코 현실화돼서는 안될!"
하림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생각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 있겠니?"
상우가 마지막 남은 돼지갈비 한 쪽을 들어 하림에게 건네며 말했다. 빙긋이 웃으며 갈비쪽을 받은 하림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거꾸로 접시에 세우며 말을 이었다.
"그건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보다 훨씬 더 우선순위에 있는 국가비상사태가 될 수 있는 문제야. 미국은 북의 핵미사일이 자기네 본토로 날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남을 포기하더라도 북을 없애려 할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될 경우, 휴전선 북방에 있는 장사정포가 일제히 포천이나 의정부에 집결해 있는 미군부대를 향해 불을 뿜겠지.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삼만의 주한미군이 문제가 되겠고, 그건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휴전선 가까이 있는 미군을 평택으로 옮기려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여차하면 평택항으로 집결해서 재빨리 빼돌리면 되니까. 게다가 평택은 평상시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좋은 위치에 있어. 주한미군의 본거지로 평택을 선정한 건 그들로선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중국과 러시아는 어떻게 달래고?"
"걔네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북이 괴멸된 후에 군사적으로 미군이 압록강이나 두만강 부근에 주둔하는 상황이 되는 걸 거야. 생각해 봐,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에 주둔한다면 미국 기분이 어떻겠어? 그러니까 미국으로선 사정거리가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개발되는 시점까지 가면 미군 철수를 비롯해서 모든 걸 양보하더라도 북한을 쓸어버리려할 가능성이 있다구!
"한반도가 괴멸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미군도 모두 철수한다?"
"그래, 중국이나 러시아로선 괜찮은 거래가 되겠지. 특히 중국으로선 골치 아픈 경쟁자 하나 사라지는 거구! 러시아나 일본도 정치적으로 손해볼 게 없어. 거의 정글이나 다름없는 중립지대가 들어서는 거니까. 그냥 한반도만 수십 년 공들인 탑이 무너지고 깨끗이 제로 상태로 돌아가는 거지. 미국이 불만이 있겠지만 본토가 핵을 얻어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