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부는 전력요금의 누진폭을 축소하여 전기를 많이 쓰는 가구의 요금은 내리고, 적게 쓰는 가구의 요금은 크게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식경제부의 담당 국장은 원가 이하 요금은 끌어 올린다고도 했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최저 구간(월 100kwh 이하 사용)의 경우 2배 이상의 요금 인상이 예상된다. 한전 관계자는 “요즘은 사용량이 적은 가정들이 반드시 저소득 가정이라기보다 1인 가정이나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인 경우도 많아 사정도 달라졌다”며 누진폭 축소를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향신문 6월 7일자) 녹색성장론 주장하는 자들 에너지과소비 부추키나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의 생각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다. 공기업이 전계층에 걸쳐 공공요금을 원가 이상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공기업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전관계자의 말 또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사용량이 적은 가정들 중 1인 가정이나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도 많아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1인 가정이나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에게 부담을 더 지우기 위해 저소득 가정을 희생해도 좋다는 말인가.
한전이 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에너지 과소비 쪽이다. 저소득층이든 1인 가정이든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이든 전기를 적게 쓰면 그에 따라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요즘 정부와 공기업의 간부들 입만 열면 ‘녹색경제’ 운운하고 있지 않던가.
정부와 공기업의 간부들은 1인 가정이나 자녀 없는 맞벌이 가정의 공공요금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세제도를 손질해서 이들의 다른 부담을 늘려 공기업 적자를 보전하면 될 일이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가정의 부담을 더 늘리려는 발상 자체도 우습지만 그런 가정들 중에 고소득자가 몇 명 섞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의 저소득층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공요금 폭탄을 투하하려는 시도, 그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전기요금 낮아 에너지 과소비? 전혀 근거없는 억측일 뿐 혹자는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이 낮아 에너지 과소비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 또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는 필자가 한국전력공사의 통계를 토대로 지난 15년 간의 시도별 가구당 전력소비량 증가율을 계산해 놓은 것이다.
▲ (출처) : 한국전력공사의 ‘한국전력통계’를 가공 | |
이 자료를 보면 고소득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전력소비량이 저소득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도시 지역과 농어촌 지역을 비교해 보면 대도시 지역의 전력소비량 증가율이 농어촌 지역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농어촌의 경우 소득 자체가 낮아서 주민들이 누진되는 전기요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와 서울시를 비교해 보면 서울의 전기소비량 증가율이 의외로 낮은데 그 이유는 1990년대 대규모 신도시 건설로 전기소비 증가 속도가 빠른 중간층이 경기도로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의 경우 1990년대 이전부터 가정용 에어컨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구당 전기소비 증가속도는 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중간소득층은 1990년대에 비로소 가정용 에어컨을 구비할 만한 소득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중간소득층이 많은 지역의 경우 전기소비량 증가속도가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
전기요금체계 개편, 비수도권 주민들에 직격탄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방침대로 주택용 전력요금의 누진폭을 축소하여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의 전기료를 대폭 올릴 경우 시도별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래 자료는 필자가 한국전력공사의 통계들을 토대로 2007년 시도별 가구당 전력소비량을 계산해 놓은 것이다.
▲ (출처) : 한국전력공사의 ‘한국전력통계’를 가공 | |
이 자료를 보면 가구당 전력소비량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농어촌 지역의 가구당 전력소비량은 수도권 지역의 절반에 불과하다.
혹자는 농어촌 지역에는 1인 가구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구당 가구원 수에서 지역별 차이는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기요금의 누진폭을 축소하여 전기를 많이 쓰는 가구의 요금은 내리고, 적게 쓰는 가구의 요금을 크게 올릴 경우 수도권의 고소득층들은 이익을 보겠지만 수도권 저소득층과 비수도권 주민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전기 요금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구간은 월 300kwh(전기요금 3만9960원) 이하를 쓰는 구간으로 이 구간은 전체 가구의 79.1%에 이른다. 반면 한 달에 300kwh를 초과해 쓰는 가구(전체의 20.9%)의 부담은 상당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층과 서민에게 돌아가던 몫을 줄이고 대신 고소득 부유층의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주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전기요금 개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90% 국민들의 인내심 한계에 이르고 있다 비수도권 지방 주민들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홀대정책은 융단폭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 대형마트와 SSM 쓰나미로 인한 재래시장 파탄, 그리고 이제는 전기요금 인상까지.
대규모 감세로 인한 지방재정난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09년 추경을 통하여 예산이 변경되면서 지방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4조 4847억원이나 줄어 들었다.
▲ (주) : 소득세·법인세 감세로 인한 주민세 감소분은 제외, (출처) : 정부 자료와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 | |
2010년이 되면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감소액은 10조원으로 올해의 2배에 이르게 된다. 누적액이 아니라 2010년 연간 감소액이 10조원이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는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노라고 여러차례 이야기했었다. 집권 후에도 그는 5대 국정지표 중 하나로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소득 상위 10%를 섬기기 위하여 90%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 이런 정부가 과연 ‘국민을 섬기는 정부’일까.
최근 국민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의 한두 번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준다. 그러나 그 부당한 처사가 시도때도 없이 난타가 되어 날아올 때 그들의 인내심은 폭발한다. 지금이 바로 그것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황은 아닌지 정부가 깊이 심사숙고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