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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10년, 꺾을 수 없는 시대의 기록자
[창간10년] 시대의 진보, 민중의 분출을 기록하는 대자보를 기대하며
 
양문석   기사입력  2009/01/28 [15:40]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집니다. 한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말이 쉬워 한 발 한 발, 한 걸음 한 걸음이지, 한 발 내딛기에도 이제는 무겁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힘들지 않겠지 했던 바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한미FTA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싸움판에서 숨을 수 없었습니다. 광화문 대로를 달려가면서 여경들이 치고 있는 1차 방어막을 비켜서, 경찰과 전경들이 막고 있는 2차 방어막을 넘어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지날 때 이미 숨이 턱에 찼습니다. 광화문 앞에 서 있는 수 십대의 전경차를 보면서, 몸이 힘들어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또 얻어맞을까봐 달리지 않는 제 다리를 보면서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앞 서 달려온 저로서는 ‘이순신장군 동상 앞까지만’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들이 제 곁을 달려지나갑니다. ‘이제 나이 생각하셔야죠...’하며 웃으면서 달려가는 후배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얻어맞는다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얻어맞는다고 해야 할 일, 접어서는 안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뛰지 못하고 걸었습니다. 그냥 걸었습니다. 비가 왔습니다. 맞고 걷습니다. 비마저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얻어맞는 것이 두렵지 비 맞아 감기 걸리는 것은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긴 집회가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세찬 비바람이 앞을 가리지만, 걷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달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몰려옵니다. 후배들에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들이 얻어맞기를 각오하고, 웃으면서, 달릴 때, 얻어맞는 것이 두려워 걸었던 그 순간이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만 2년이 다 되어갑니다. 2007년 4월 초.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해에 그랬습니다. 그 고통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2008년 6월과 7월. 지난 해 촛불 때도 그랬습니다. 바로 앞줄에 서 있던 시민들이 경찰들에게 잡혀 갈 때, 손만 뻗혀봤지, 뛰어 들어, 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얻어맞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이 땅의 국민입니다. 아직도 얻어맞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니, 공권력의 폭력이 두려워 양심에 반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 그것이 원통하고 억울합니다.
 
하지만 양심에 반하고, 두려워하며 지금까지 이렇게 견뎌왔습니다.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지지 않는 싸움을 하려고 나름 노력하며 견뎌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이슈별 패배’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견뎌왔습니다. 생존이었지요.
 
지금은 생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많이 하는 편입니다. 생존...생존에 있어서 <대자보/www.jabo.co.kr>는 탁월했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묵묵히, 기록해 왔습니다. 민주주의를 기록했습니다. 통일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기록했습니다. 미디어,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기록했습니다.
 
두툼한, 아주 두툼한 역사책이 되었습니다. 공권력의 몽둥이가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필봉을 꺾지 않았습니다. 아니 꺾을 수 없는 시대의 기록자였습니다. 편집장 한 명으로도 버텼습니다. 여러 명이 취재하며 현장 기록을 남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칼럼니스트들로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신문으로서 자부심과 자존심이 버티기의 힘이던 시절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록자로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고, 이것이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에 버팁니다.
 
모두 힘들어 할 때, 상당부분 꺾여 숨죽일 때, 시대를 뚫고 나갈 지혜를 기록합니다. 반동의 시대에 ‘시대의 반동’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언젠가는 지금의 기록이, 상식이, 될 날을 바라고 기록합니다. 그 ‘언젠가’를 위해, 너무나 막연하지만, 또 언젠가 터져 오를 시대의 진보, 민중의 분출을 기꺼이 기록하기 위해, 오늘도 ‘대자보’는 10년을 넘어 또 다른 10년을 기록합니다.
 

생존해서 기록하는 ‘사가(史家)’로서의 ‘대자보’를 꾸준히 지켜봅니다. 그리고 함께 하려 해 봅니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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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8 [15: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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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독자 2009/01/29 [10:03] 수정 | 삭제
  • 미디어스에서 양문석님의 글 자주 접하는데 다시 대자보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지나가다 2009/01/28 [22:20] 수정 | 삭제
  • 앞으로 대자보에서 양문석 님의 좋은 글 자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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