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더 많이 고용해서 생산력을 높인 경영인. 세전 수입 10억원 중 5억원을 사회활동기금으로 내놓은 시민사회활동가. 두 딸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하는 아빠. 회사 수익의 1%가 아니라 매출액의 1%를 나무심기에 투자한 경영인. 직접 가방 들고 전철 타는 기업총수." 오마이뉴스발 문국현 바람 불어… 최근 오마이뉴스가 대문에 건 '문국현 대통령 되면 이민 준비합니다'는 낚시성(?) 댓글기사에 등장한 내용이다. 얼마 전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전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에 대한 찬송가. 댓글 기사에 댓글이 지난 주말부터 수없이 달리고 있다. 제목에 낚인 독자들이, 낚시제목이었음을 알고도 줄줄이 걸려들고, 줄줄이 댓글을 이어 붙인다. 특이한 것은 비판적인 댓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거의 '대안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국현과 이인영의 대담', '오연호의 김헌태 인터뷰' 기사는 문국현 바람을 미풍에서 태풍으로 바꾸고 이런 댓글은 태풍의 순간풍속을 증폭시킨다. '오마이뉴스발 문국현 바람'은 적어도 지금 인터넷에서는 '태풍'이며 문국현은 '태풍의 눈'이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나와 자식, 가정의 미래를 위협 받으면 안 된다. 대기업에서 지난 10년간 무려 100만 명이 해고됐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그런 대기업을 짝사랑하고 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100만 명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을 당했나. 대기업이 대량 해고사태를 만들었는데도 우리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850만 명이며, 전체 근로자의 55%인데도 마치 전세계가 모두 우리처럼 비정규직이 많은 것처럼 호도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월급만 적은 게 아니라 평생학습 같은 체계도 없다. 이런 사회를 만든 지도층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100만 명을 해고할 때 사회지도자는 뭘 했는가.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일자리의 88%가 중소기업인데도 중소기업들을 천시해왔다. 대기업에 붙어 있는 그런 사회 지도층을 누가 좋아하겠냐." (오마이뉴스 8.24, 문국현·이인영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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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에 대한 집중보도를 통해 문국현 바람의 진원지가 된 <오마이뉴스>, 그러나 그에 대한 검증은 철저했는지 자문할 일이다. © 오마이뉴스 8월 26일자 초기화면 |
"법정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고 교대 조를 추가할 경우 일자리가 400만∼500만 개 생긴다. 노사문제는 지도층이 부패할수록 해결하기 힘들고 지도층이 투명할수록 풀기가 쉽다. 산업재해로 연 15조 손실을 입는 나라가 2조8000억 수준의 노사분규 손실을 걱정하는 게 더 우스운 것이다." (월간 말 7월호. '문국현, 구원투수 될까? 간판투수 될까?')
이명박과 대비되는 '진짜 경제' 강조한 주장들 소개 '진력' 최근 몇 개월 사이 문국현의 이와 같은 주장은 다양한 매체에 소개돼 왔다. 문국현이 이른바 콘텐츠를 갖고 있는 대통령후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가짜 경제-이명박' 대 '진짜 경제-문국현'을 대립 축으로 놓고 '환경파괴-경부운하' 대 '환경보존-나무심기'에서부터 일자리 창출의 방법론까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정책보다는 후보검증에서 이명박과 대비되는 문국현의 삶, 첫 문단에서 언급한 지금까지 그의 삶이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을 흥분시키고 열광케 한다.
'가슴 한 켠이 뭉클하다. 절망에서 희망을 봤다. 포기했던 2007 대통령선거에서 새로운 대안이 등장했다. 다시 한 번 시작하자'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환호, 그 환호 가운데 불안감이 몰려온다. 노무현 신드롬이 그렇게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유시민의 개혁당이 만들어지고 개혁당원들은 노무현 태풍을 만들어내며 노무현을 태풍의 눈으로 '둔갑(!)'시켰던 5년 전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엘리트-이회창' 대 '서민-노무현'이라는 대립구도를 잡아 놓고 거의 모든 영역을 이 틀 속에 투입시켜 대립각을 세웠고, 이에 네티즌들은 열광했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넷 판을 노무현지지자로 돌려세웠다. 심지어 오프라인에서도 똘똘 뭉쳐 노무현을 지지했던 기억. 하지만 노무현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했던 정책결정은 '이라크 파병'이었고, 이어 '새만금공사 지지'였으며 '부안핵폐기장 반대투쟁 물리적 탄압'이었다. 그리고 '한미FTA 체결'이었다.
지금 인터넷에서 일고 있는 문국현 바람, 이른바 '문풍'이 제2의 노무현, 제2의 지지자 배신의 전주곡이 되지 않을까 무섭다. 막연한 두려움은 문국현의 한미FTA에 대한 입장에서 어렴풋이 확인된다.
제2의 지지자 배신 전주곡 될까 무서워 "내부적 동의 과정이 없었다. 농촌문제를 경제의 관점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개성공단의 인정은 매우 중요하다." 월간 말(7월호) 인터뷰에서 문국현이 한 말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과 의료시장 개방이 빠진 것은 아쉽다. WTO 하에서 FTA는 당연한 순리다"며 한미FTA에 대해 조건부 찬성(혹은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적어도 대선 후보 중 민주노동당 후보들과 범여권의 천정배 후보만 빼고 이 정도의 비판적 관점을 보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교육과 의료시장의 개방론을 펼칠까? 문국현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비정규직, 양극화의 극단에 서 있는 극빈층들이 그나마 현재의 교육제도와 의료제도의 공공성으로 인해 생존할 수 있는데. 교육과 의료는 몇 안 되는 양극화의 완충지대인데, 이를 미국에 개방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을까?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이 되지 못한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을 바탕으로 '공공성 대 반공공성'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바닥에 깔려 있는 '극빈층'을 밟고 가서는 안된다.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깃발은 공공성 강화다. 특히 미디어를 비롯해 교육과 의료는 공공성, 즉 국민이면 누구든지 혜택을 누려야 할 공적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결코 시장개방으로 '돈 놓고 돈 먹기 판'이 돼서는 안 되는, 양극화의 완충지대로서 그나마 남아있는 최후의 보루다.
극빈층 보듬는다면서 극빈층 짓밟는 입장 피력 그런데 문국현은 '비정규직 850만 명'을 수없이 읊조리는 등 한국의 극빈층을 말하면서 한 편으로는 극빈층을 짓밟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두렵다. 노무현에게 절망했던 이유가 철학의 빈곤이었다. 문국현, 그도 또 다른 노무현처럼 빈곤한 철학을 '아이디어'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국현 바람에 바람이 있다면,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보다 명쾌한 해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