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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진단, 졸속 처방, 이상한 ‘취재 지원’
[진단과 대응] 참여정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문제점과 대안
 
양문석   기사입력  2007/05/30 [12:21]
* 본문은 30일 언론연대, 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이 주최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긴급토론회의 양문석 박사(언론학, 언론연대 정책실장) 발제문입니다. 최근 논란이 심화되는 있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통해 올바른 취재지원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언론연대의 동의아래 발제문 전문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오늘 토론회에서는 정치적 평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전투구식 정치적 상호비난은 출발이야 어떠했든 언론개혁의 중요한 계기를 상실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발언 중 몇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그것부터 출발해보자.
 
▲언론연대와 한국PD연합회,언론노조는 30일 오전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박철홍
 
노대통령의 29일 발언 중 “요즘 일부 언론은 세계 각국의 객관적 실태를 보도하지 않고, 진실을 회피하고 왜곡하는 비양심적 보도를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기자실이 없는 나라가 많이 있다는 걸 보도하지 않으면 비양심적 보도인가. 한국의 공무원처럼 정보를 심각하게 통제하는 나라도 많지 않음을 대통령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진실을 회피하고 왜곡하는 비양심적인 대통령이라고 욕하면 인정하겠는가. 그것도 객관적인 실태조차 제대로 학습하지 않고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의 어제(29일) 발언 중 “많은 선진국들은 송고실도 두지 않는다. 한꺼번에 바뀌면 너무 불편할까봐 브리핑실 외에 송고실까지 제공하려는 것인데,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도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 
 
▲양문석 언론연대 정책실장     © 박철홍
국정홍보처가 지난 5월 발표한 선진국 취재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한 27개국 중 무려 7개국이 송고실을 두고 있다. 미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스웨덴·포르투갈·체코 등이 기자실 또는 기사 송고실을 두고 있음은 정부자료에 버젓이 나타난다. 소위 한국과 비교해  ‘선진국’이라고 통칭될 수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기자송고실을 두고 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원리원칙이 뭔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생각은 원리원칙이고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의 주장은 비원리비원칙이라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분명한 것은 언론학에서는 송고실 운영 여부를 두고 합의된 ‘원리원칙’은 없다. 과문해서 묻는다. 행정학이나 정치학에는 ‘송고실운영’에 대해서 원리원칙이 있는가? 협박도 웬만하면 명분을 갖고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많은 선진국들은 송고실을 두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착각인 것이 드러났다. 한국정부의 조사대상국가 27개 중 7개국, 그것도 한국정부가 ‘글로벌스탠다드=미국’으로 종종 착각하는 미국도 기사송고실을 두고 있으니. 미국의 기자실에 대해서 설명하면...
 
미국의 경우는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상무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행정부처들이 모두 기자실인 ‘프레스룸’과 ‘브리핑룸’을 운영하고 있다. 백악관은 인터넷 시대에 맞춰 프레스룸과 브리핑룸을 개선중이다. 현재 운영중인 25평 정도의 임시기자실에도 비좁긴 하지만 상주기자 100여명의 부스(기사 송고석)가 마련돼 있고, 방송사들을 위한 편집실을 따로 두고 있다. 이곳은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해 머무르는 공간으로 통신망 등 송고시설이 갖춰져 있다.
 
국무부와 국방부(펜타곤)도 정례 브리핑이 이뤄지는 150여석의 브리핑룸 옆에 주요 통신·신문·방송사 상주기자들을 위한 부스(송고석)가 설치돼 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국방부 직원이나 군인들과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며 취재한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진급의 불이익 등에 대한 피해의식 없이 기자의 취재에 응할 수 있다.
 
의회의 상·하원에도 신문과 방송이 따로 상주 기자실과 브리핑실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주기자단위원회가 관리한다. 이곳 역시 송고 등 취재 편의를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미국이 브리핑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단순한 정부 홍보 차원의 브리핑이 아니다. 국무부의 경우, 차관보급인 대변인은 새벽에 출근해 주요 이슈들을 챙기고 그날 정례브리핑에서 예상되는 질문을 각 부서로 보내 답변을 받아 준비하는 등 철저하게 브리핑을 준비한다. 국무부는 올해부터 정례브리핑에 앞서 매일 대변인실에서 비공식적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각 부처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장관 또는 고위 관리들의 기자회견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수시로 연다.1)
 
요즘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다음 정부에 유난히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인다. ‘방송통신융합기구설치법만 만들어 놓고 운영은 현 정권에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밀실행정 졸속발의를 강행하고...또 ‘개방형 브리핑제도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힘들더라도 좋은 제도는 정착시켜 다음 정부에 넘겨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결정했다’고 발언하는 등...
 
순결성, 아니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진정성’을 ‘아무 때나’ 강조하는 정치적 테크닉이다. ‘나는 남는 게 없다. 다만 다음 정부에게...’ 뭐 이런 식이다. 국회 언론발전연구회(대표 고흥길 의원)가 29일 ‘참여정부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그 허와 실’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이보경 기자협회 부회장(MBC 시사토론팀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언론 문제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지 않으면 다음 정부가 힘들다는 논리를 펴는데 개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의 고정 좌석을 줄이는 별것 아닌 일을 하면서 순교자적 발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취재지원선진화방안에 대해서...
 
기본방향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보개방확대를 통해 정부와 언론간의 투명성 제고/브리핑제도 운영 및 취재지원 효율화/실질적 대언론 서비스 강화’라는 이런 기본방향에 대해서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사가 있으면 그 곳이 이상하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합동브리핑센터 설치라는 방법론이 문제라는 의미인데...
 
‘권역별 합동브리핑센터 설치, 취재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문제는 개방형 브리핑제도 실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브리핑의 내실화’에 대한 개선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잘 짜여 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장관 또는 발표자가 불러주고, 기자들은 초등학생처럼 받아쓰기만 하라고 강요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개방형 브리핑제도’다. 질의/응답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상문제를 뽑아 놓은 수험생처럼 모범답안을 준비해 읽어주거나 답변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의에 대해서는 답변을 유보하거나 ‘그 질의에 대답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정부안에 ‘브리핑내실화방안’도 있는데...
 
질의응답 중심의 브리핑 실시, 브리핑 실시 평가(기관평가) 등이 있다. 방법론으로 겨우 내 놓은 안으로 ‘전자브리핑 시스템 활용, Q&A중심 브리핑 활성화, 브리핑서비스 여론수렴 및 개선, 우수 브리핑사례 정책홍보 평가 반영’이 고작이다.
 
정부부처가 브리핑으로 자기 부처에 불리한 내용을 공개하겠는가? 아니 이제까지 스스로 공개한 적이 있는가?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브리핑해 준 ‘정보수준’을 기억해 보라. 심지어 협정문까지 작성해 놓고도 ‘세이프가드 1회만 사용’ 등의 내용을 정부협상단은 숨겨왔다. 협상을 잘못했다는 지적을 면피하기 위해서였다. 손해 본 협상이 아니냐는 질의에 오히려 한국에 유리한 협상이라고 주장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를 아주 태연하게 한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고, 이런 식의 브리핑이 위의 4가지 방법론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권력과 정부관료들의 의식수준이 변해야 하고, 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일의 순서가 문제가 되는 이유다.
 
기자실통폐합의 문제에 대해서...
 
이 부분은 대통령의 인식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의 출발점이 뭔가. 대통령이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 기사내용을 담합한다’는 식의 발언에 이어 기자실문제를 연구하라는 지시가 출발점이었다.
 
대통령 발언에 심각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기사내용의 담합’의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혐의는 있으나 증거가 없다는 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정당한 것이냐를 먼저 정부가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설령 ‘기사내용의 담합’이 있었더라도 일반성이냐 특수성이냐를 따져야 한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사례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기사내용의 담합이 기자실의 문제냐 몇 몇 언론사 소속의 몇 몇 기자의 문제냐를 따져야 한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기사내용의 담합을 한다면,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논조가 전혀 다른 언론사 소속의 기자들이 같은 방에 있다. 대통령의 주장과 반대로 기자실은 오히려 담합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정기능이 더 강한 공간이 된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애초부터 대통령의 잘못된 진단이 ‘선진화방안’이라는 처방을 내 오게 된 것이다.
 
결국 잘못된 진단에서 출발하여 황당한 처방으로 이어지고 만 사건이 이번 ‘선진화 방안’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개방 공평 정보공유의 원칙’은 정치권력이나 정부관료들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달달 외우는 ‘국민을 위해서’와 같은 말이다. 언론사별로 빈익빈 부익부 과정을 거쳐 양극화로 고착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돈 없는 언론사들, 특히 인터넷언론사 소속의 상당수 기자들은 정부부처와 근거리 공간 확보의 어려움에서부터 정보접근권 자체가 훨씬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학연 지연 혈연의 구태의연한 정보원 취재원 접근방식이 활개를 칠 수 있다. 촌지나 향응접대 빈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서울 8개 경찰서의 기자실도 폐쇄한다는데...
 
기존의 다른 기자실을 폐쇄/축소하는데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면대면커뮤니케이션’, 즉 얼굴을 보면서 말을 섞으면서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극단적으로 축소시키는데 문제가 있다. 얼굴의 표정과 말투에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공개적인 브리핑과 전자브리핑이 줄 수 없는 수많은 정보와 그 정보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정치권력과 관료권력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내용을 획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경찰서의 경우, 사실상 기자들만이 인권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재 한국적 구조다. 또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백번 양보해서 인정하더라도 경찰기자들이 ‘죽 때리고 앉아서 기사내용을 담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런데 왜 폐쇄하는가?
 
그렇다면 기존의 기자실문제 또는 출입처 관행에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논의를 구분해야 한다. 기자실 또는 기사송고실은 문제가 없다. 출입처 관행도 효율적인 취재방식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기자단의 폐해다. 그 동안 이들이 ‘간사’를 두고 저질러 온 폐해는 악질적 수준이다. 기자단의 폐해 핵심 주체는 둘이다. 메이저 언론사와 정부관료들. 기사내용의 담합이 있다면 바로 일부 부처의 왜곡된 기득권층으로서의 기자단과 그 기자단을 물심양면과 고급정보까지 지원하며 음성적이고 부적절한 관계를 관행처럼 유지해 온 일부 정부 관료들이 그 주범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공식적으로 브리핑제도 잘 돼 있지만, ‘외신기자’들이 취재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한국언론들만의 ‘기자단’이 외신기자에게는 벽인 셈이죠. 한국언론과 외신은 전적으로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함에 불구하고 한국기자단은 뉴스를 독점하는 경향이 크죠.”...외교부와 통일부, 재경부는 외신기자에게는 어려운 출입처다. 정부가 정해 둔 몇 몇 기자들에게 배경에 관해 브리핑하기를 원하는 것...서울에서는 외신기자들이 다 떠난 후 국내 기자만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해 일종의 ‘소외’를 느끼기도 한단다.2)
 
버트 허먼 AP통신 한국지국장의 눈에는 ‘국내기자’와 ‘한국기자단’이 동일체로 보이겠지만, 한국기자단에는 국내기자 중 특정 언론사들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그리고 한국기자단만 벽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관료집단인 외통부와 재경부 등도 분명히 벽이었고, ‘기자단’에 소속되지 못한 국내기자들도 이들 관료집단이 벽이다.
 
버트 허먼의 말처럼, “한국은 공식적으로 브리핑제도가 잘 돼 있지만...”이다. 공식적으로 잘 되어 있는 브리핑제도가 있는데 왜 외신기자들이나 ‘기자단’에 포함되지 않은 국내기자들은 취재하는데 어려움이 따를까? 대통령이 보지 못한 지점이다.
 
이번 사건은 바로 기자단의 폐해를 털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모기 잡으려고 도끼를 휘두르는 우’를 범하면서 전혀 다른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비화되었지만.
 
다시 정부안을 돌아와서 전자브리핑제도를 평가하면
 
정부안을 보면, “브리핑 내용을 동영상으로 실시간 온라인 송출하여 브리핑룸을 찾지 않아도 등록기자는 누구나 취재 가능하도록 시스템 구축, 언론의 개별적인 질의 답변 창구로 활용, 각 부처 ‘전자대변인’제도 운영, 브리핑 내용 속기 서비스 제공 추진”으로 되어 있다. KTV, 청와대브리핑, 국정브리핑에 이어 온라인 송출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동안 KTV 청와대브리핑 국정브리핑의 내용이 어떠했는가를 평가해 보면 심각성은 절로 드러난다.
 
한미FTA 사례를 다시 들어 보자. 찬반의 입장을 떠나서, 한국민의 과반수 정도가 반대했고,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선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35%가량이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이들 매체에 반영된 적이 있는가. 적어도 참여정부는 35%의 국민들은 자국의 시민이 아니라 ‘적’이었고, 적으로 간주해왔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고, 선동선동에 역으로 이용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부는 한미FTA의 실상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고, 공개해도 거짓말했고, 숨겼다. 전자브리핑제도를 실시하면 이런 기존의 행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까?
 
아주 공식적인 자료만 공개될 것이다. 갑자기 공무원이 ‘대오각성’하고 정보공개를 작심하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지금까지 해 온 방식 이상의 내용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순서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정부 정책이 대통령의 ‘욱’해서 나온 ‘희한한 발언’ 한 마디 때문에 ‘팔랑거려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하고 논의해 보자. 적어도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이런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첫째, 참여정부 초기에 ‘개방형 브리핑제’를 시행할 때 약속했던 ‘정보공개법’을 훨씬 더 탄탄하게 보강해서 개정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했다.
둘째, 개정된 정보공개법의 정신을 ‘개방형 브리핑’에 반영함으로써 실질적인 ‘브리핑 내실화’를 일정정도 실현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과정을 통해서 기자실의 ‘기자단’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함과 더불어 ‘선진화 방안’류가 아닌 훨씬 더 구체적인 취재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순서’였다.
 
대통령의 ‘짜증’ 한 마디에서 출발한 취재지원정책은 일의 순서에서도 엉망이 되어버렸고, 민주적 의견수렴과정 등 사회적 합의라는 민주적 방식마저도 짓뭉개버린 것이다.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하면서 정보공개법도 2003년에 개정되었는데...

정보공개청구제도는 1996년12월에 제정됐다. 그리고 1998년부터 시행되었고, 2003년12월에 한 차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뭔가? 정보공개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비밀보호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 온 법이다. ‘국가안보상의 이유로...보안업무이기 때문에...’라는 단서만 붙으면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 공개여부를 두고 분쟁이 일면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가 심의/의결한다. 누구 편을 들겠는가?
 
동일한 사안도 부처에 따라 공개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 있다. 정부 부처별로 각각 다른 공개기준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정보 가진 자가 ‘엿장수’다. 그래서 정보공개 여부는 ‘엿장수 마음대로’다.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청구를 접수시키면 10일 이내에 결정처분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보도를 위해 촌각을 다투는 사안에 대해서 정보공개를 요청했을 경우에 대한 보완책이 전혀 없다.
 
즉 정보공개법은 공개의 범위와 시간에 대한 보완책이 집중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부처별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데, 이를 통일시켜야 한다.
 
사례를 보면...
 
“...기자가 원하는 정보 대부분이 비공개대상이 됐는데, 특정 사안이 한 부처에선 공개된 반면 다른 부처에선 비공개 결정이 내려져, 기자를 의아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정부에 대한 취재 접근이 갈수록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하고도 합법적인 정보접근 수단인 정보공개청구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정한 출입처가 없어 ‘공개된 경로’를 통해서만 취재 접근이 가능한 탐사기획팀 기자들에게 정보공개청구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은, 우리 언론계에서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탐사보도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 언론에서 정보공개청구는 취재기자에게 상당히 매력적이고 유용한 카드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여전히 ‘잠긴 문에 노크하기’인 것 같다.”3)
 
“...자료가 없다거나 다른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줄줄이 나열됐다. 법대로만 따지자면 공무원들에겐 공개하지 않아도 될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산자부 담당자는 한번도 그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다고 얼버무리다가 소송을 내겠다고 하자 ‘알았다’며 자료를 보내왔다...”4)
 
위 사례의 의미는...
 
위의 두 사례는 2005년도 사례다. 이미 한국언론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신문과방송>에서 정보공개법의 문제를 기획으로 실을 정도로 정보공개법의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이 때도 정보공개법에 대해서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김형구 기자의 글 중 “일정한 출입처가 없어 ‘공개된 경로’를 통해서만 취재접근이 가능한 탐사기획팀 기자들에게 정보공개청구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은...탐사보도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의 시사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출입처를 없애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공개된 경로’를 통해서만 취재접근하라는 의미로서, 취재접근의 폭과 범위를 ‘선진화 방안’은 대폭 축소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해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이미 2005년에 이런 주장이 나왔다는 점을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둘째, 출입처 제도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보도자료 받아쓰기, 브리핑 받아쓰기’라는 취재관행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탐사보도를 주장하는데, 한국 현실에서 정보공개법의 부실로 인해 탐사보도 자체가 제도적 틀 안에서 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고, 그나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출입처제도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연대는 이런 것을 바란다...
 
대통령과 정부에게 바란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실행을 연기해야 한다. ‘오기’로 할 일이 아니다. 민주적 절차와 더불어 일의 순서에 입각한 정책추진이 왜 필요한지를 깊게 되돌아보는 계기로 이번 ‘선진화 방안 파동’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최소한 정보공개법 개정과 브리핑내실화를 기할 수 있도록 정부 관료들이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해 준 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취재지원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기자에게 바란다.
 
출입처제도의 장점을 활용한 다양한 정치권력과 정부감시기능을, 만약 정부가 8월에 강행한다면,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유감없이 발휘해 출입처 제도의 정기능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정부가 이 제도를 만약 연기한다면, 기존의 취재관행을 답습함으로써 이번과 같은 정부의 엉뚱한 돌출변수를 허용하지 말고, 출입처의 효율성과 장점을 발전시킴으로서 구호로서의 ‘국민의 알권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국민의 알권리’에 기여하길 바란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솔직히 한국언론이 이토록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신경을 쓰며 취재하고 보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특히 ‘기자단’은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해소시킴으로써 특정 언론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음습하고도 부적절한 관계 관행을 끊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정부안에 찬성하며 많은 네티즌들이 오히려 언론을 향해서 던진 수많은 ‘돌팔매질’의 의미를 ‘단지 그들이 몰라서’라고 치부하지 말고 다시 한 번 깊게 새겨야 할 것이다.
 
언론사에게 바란다.
 
더 이상의 난타전은 의미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국사회와 한국언론이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고민하길 바란다.
 
국회에 바란다.
 
정부의 정보공개법 개정논의와 관계없이 국회가 정보공개법 개정을 서둘러 시행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부고발자보호제도에 대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정부 내 내부 고발자 보호제도5)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부고발자란 정부 등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내부자로서 조직의 불법이나 부정거래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불투명성 특히 정책의 불투명성을 제거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시민사회와 언론에 내부 정보를 던져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내부고발자보호법'이 제정되어있으며, 우리나라는 현재 2002년에 제정된 부패방지법에 내부고발자보호제도가 일부분 수용되어 있지만, 이는 ‘부패’와 관련된 사안에 한정되어 있다. 정책 등에 대한 내부고발자의 보호를 위해서 이 제도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각주]
 
1) 류재훈, 이재명(한겨레신문 기자), “미 백악관·주요부처, 기자실·송고실 갖춰,” 한겨레인터넷판, 2007. 5. 29.
2) 강혜주, 주한특파원에게 듣는다-버트 허먼 AP통신 한국지국장 “한국기자단, 외신기자들에게 벽으로 다가와 월간 신문과방송, 2007.3. pp. 93-97.
3) 김형구(세계일보기자), “정보공개청구의 걸림돌-공개기준 제각각, 비공개결정남발,” 월간 신문과방송, 2005.11. pp. 56-58.
4) 정남구(한겨레신문논선위원), “택시회사의 부가세 감면분 착복실증,” 위의 책, pp. 58-60.
5) 내부고발자는 '딥 스로트(Deep Throat)'와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라고도 불린다. '딥 스로트(Deep Throat)'란 명칭은 1972년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에게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의 단서를 제공했던 정보제공자의 암호명이었는데, 이 후 'Deep Throat'란 내부고발자, 밀고자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또한 미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즉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토론회 기사 이어집니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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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30 [12: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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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류 2007/05/31 [11:13] 수정 | 삭제
  • 기자실과 기사송고실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가 없네요? 유비쿼터스 시대에 꼭 필요한가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해야지..그냥 '문제없다'라고 하는건 논리가빈약하다는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 양박사님의 글도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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