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87년 체제’의 발전이 아닌 붕괴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시대의 반동’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노심초사다. 왜 시대의 반동이 이렇게 가시권 안에 들어왔을까? 최근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발간한 <민주화20년의 열망과 절망>은 이렇게 분석한다. “진보 개혁세력 위기의 출발점은 노무현정부이다. 하지만 그 위기가 단순히 노무현이라는 외생변수의 결과는 아니다. 진보 개혁세력의 상당수가 민주화 20년간 사회의 주류, 권력의 핵심, 기득권집단으로 성장해 왔지만 거꾸로 진보 개혁의 본래 기치와 가치는 점차 희석돼 가고 있다. 결국 돌아온 것은 이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광범위한 불신이다. 그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실망과 광범위한 불신. 그것이 뭘까? 크게 보면 “노무현 정권은 보수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인가? 노무현 정권 자체가 주요 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며 보수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세력으로부터는 좌파 정권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보수 쪽의 선전은 먹혀들었다. 노정권은 본의 아니게 좌파정권 대접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돼 온 것이다. 한국 정치의 희극이자 비극이다.”는 위의 책의 지적처럼 ‘한 몸에 대한 두 개의 정반대의 평가’로 인해 국민들이 그 정체성을 의심한데서 비롯됐다. 진보 개혁세력과 노무현 정권이 동일체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배 아픈 것도 노무현 때문이고 배 고픈 것도 노무현 때문이라는 ‘노무현 증후군’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더 큰 문제는 진보 개혁세력 안에 있다. 수구언론의 왜곡 과장 보도 등으로 인해 진보 개혁세력의 이미지가 악화되었을까?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20년간의 사회진화에 따른 자기진화에 실패한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이다. 최근 발생한 언론노조의 소위 ‘회계부정의혹사건’을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진보개혁세력의 내부분열의 실상은 최소한 내부의 민주적 논의과정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의 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적인 직책도 없는 사람들이 내부 회계장부를 조사하고, 공식적인 의결기구에서 의결마저 거치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위원장’이 ‘독단’으로 검찰에 자기 조직을 고소하는 일은 내부의 민주적 절차마저 안정화되지 않은 오늘의 진보개혁세력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
▲ 7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제4기 출범식이 열렸다. 전임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에게 받은 언론노조 깃발을 흔드는 신임 이준안 위원장 © 대자보 |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20년의 역사를 가진 언론노조의 자체 회계감시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절차보다 내용이 더 후진적이었다는 비판 앞에 언론노조는 통렬히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 이유다. 비록 그 달 그 달 살아가는 수많은 진보개혁단체들이 존재한다. 회계감시시스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조직들이다. 언론노조 역시 한 동안 그런 어려운 살림살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재원구조를 갖고 상대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해 온 조직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따져왔다. 언론개혁의제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까지. 그런데 이게 뭔가?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제 눈 속의 ‘대들보’보다 남의 눈 속의 ‘티’ 하나에 집착하는 수구언론이라는 언론노조의 비판이 무색해 진다. 수구언론은 잔칫집 분위기다. 하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 없다. 다른 진보개혁진영 마저 수구언론 특유의 뻥튀기 보도에 매도되고 있지만, 진보개혁진영이 잔치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의 못된 짓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사소한 일일지라도.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 지금 언론노조는 그 어떤 성명서 하나 반성문 하나 없는 상황이다. 내부의 복잡한 문제와 관계가 얼기설기 엉켜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국민과 조합원 앞에 용서를 빌고, 다시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적인 조직으로서 언론노조로 거듭나야 한다. 새롭게 정비된 조직으로 수구언론의 못된 짓을 비판하고 진보개혁의 비전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오늘의 치욕을 녹여내야 한다. 언론노조뿐만 아니라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광범위한 불신’을 녹여내는데 선봉에 서야 한다. ‘처음처럼’...시대의 반동에 맞서야 한다. 언론노조여! 다시 일어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