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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마신 전통차, 알고보니 한국보리차
만만디에서 '현대속도'로, 중국대륙의 심장 베이징을 가다(1)
 
홍성관   기사입력  2004/03/01 [22:48]

이른 아침 자취방을 나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면서 정작 국외로는 나가보지 못했던 기자가 난생 처음으로 중국에 가기위해 여행용 가방을 들고 나서는 길이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중국에 가서 무엇을 보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게 될까,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두 학기동안 중국과 관련된 수업들을 들으면서 발전해가는 중국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천안문     ©브레이크뉴스

베이징 현지시간으로 11시 40분. 하늘에서 내려다본 베이징 시내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온통 탁한 색의 건물들이 모나지 않게 잘 정돈 되어있는 모습에서 사회주의국가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베이징 공항 근처에서도 그런 인상은 바뀌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는 택시나 사람들의 옷과 표정들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인 중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한국의 7,80년대와 흡사한 분위기도 연출되었다. 발전하는 대륙의 단상을 찾고자 발을 디딘 기자로서는 실망스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서양인들이 7,80년대 한국을 관광하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 다수가 역시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 라며 무시하는 투로 받아들였을 것이란 답을 스스로 구하면서 약간 서글펐다.

이곳에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베이징 사람들의 의상이었다. 베이징 시내의 건물들은 서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만큼 세련됐는데, 사람들은 왜 한결같이 탁한 색의 옷을 입고 있나 궁금했다. 그 때 중국에서 1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는 일행 한 명이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심해 밝은 색 계통의 옷은 금방 더러워져 못 입는다고 설명해줬다.

▲천안문 광장에 나와있는 중국인민들     ©브레이크뉴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베이징에서의 첫 코스는 점심식사였다. 베이징 시내를 빠져나와 ‘순위빈관’이라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했다. 이왕지사 남의 나라에 온 거, 그 나라 음식부터 먹는 게 도리 아닌가 싶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일행이 한 명 있어 의사소통에 지장 받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한번은 차(茶)의 이름을 두고 일행 몇 명이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건 보리차니, 아니 다른 중국의 전통차라느니 말들이 많아 종업원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보리차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중국보리는 맛이 한국과 다르군, 이라고 말했더니, 글쎄 이 종업원이 한국보리로 만든 보리차란다.

식사를 마치고 현대자동차 베이징공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공장은 아니었다. 현대차와 베이징기차투자공사가 50 대 50으로 투자한 합자회사였다. 다른 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기업이 진출해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들었다. 노재만 공장장의 환영사를 듣고, 이어 홍보영상물을 본 후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왜 ‘베이징 현대기차’라는 표현을 쓰는지 궁금했는데, 중국에서는 차를 기차로, 기차를 화차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현대차는 중국진출과정에서 유례없이 초스피드로 진행했다. 02년 2월에 의향서 체결하고, 5월에 계약서체결, 12월에 생산을 개시하면서, 통상적으로 중국에서는 2년 반에서 3년 걸리는 과정을 10개월 만에 끝내는 등 진척이 빨랐다. 그리하여 진출원년에 자동차 5만대 생산판매라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현대차의 이런 추진력을 중국에서는 ‘현대속도’라 칭하며, ‘어떤 일을 추진할 때에는 ‘현대속도’로 해라‘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만만디’로 알려져 있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베이징 현대자동차     ©브레이크뉴스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베이징 현대기차는 부지 24만평, 주재원 63명, 현지 노동자 2052명으로 7만대 수출효과를 낳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함에 따라 관세가 06년 이후, 쿼터제도가 05년에 폐지되기 때문에 향후 전망은 밝은 편이다. 현재 소나타, 엘란트라의 두 차종을 생산하고 있는 베이징 현대기차는 내년에는 투싼을 추가생산하고, 앞으로도 매년 한 차종씩을 추가할 예정이다.

베이징 현대기차 관계자는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로 진출해야 잠재력이 크다면서, 일단 중국에서는 여자월드컵, 올림픽의 스폰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2조 2교대로 24시간을 풀가동하면서 하루 600대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베이징 현대기차를 보면서 ‘현대자동차가 중국 자동차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실감이 갔다.

▲베이징 현대자동차의 현지노동자들     ©브레이크뉴스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간 ‘금도구원’에서 처음으로 중식을 맛볼 수 있었다. 화려한 식당 인테리어에 최상의 서비스까지 ‘금도구원’은 최고급 식당이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음식들은 한결같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은 한국음식에 입에 맞는 법. 맛있긴 맛있는데, 많이 먹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경극을 보러 갔다. 여전히 중국 서민들은 경극을 좋아한다고 한다. TV로만 접했던 경극을 직접 눈으로, 그것도 맨 앞좌석에서 관람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극장 안에는 많은 서양인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경극은 중국 서민들이 여전히 즐기는 오락인 동시 하나의 관광상품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창이나, 판소리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런 관광상품으로 살리지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자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은 분명 중국인에게서 배워야 할 덕목이었다.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중국에서의 밤을 지낼 쿤룬호텔로 돌아왔다. 쿤룬호텔에서 또 한번 중국인들의 자국 문화를 지키는 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방 때문이었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농구스타 야오밍이 모델인 광고판 아래로 간간히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쿤룬호텔 1124호의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18일. 간밤에 있은 약간의 헤프닝(^^)으로 인해 일정이 조금 지연됐다. 일행이 찾아간 곳은 베이징의 서북쪽 하이디엔(海淀)구에 위치한 중관촌(中觀村). 이곳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중국 과학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430만 평방미터에 인구 224만 명으로 외형에서는 발전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중관촌의 저력은 클러스터 개념이 도입된 산학연계에 있다. 칭화대, 베이징대, 인민대, 북경외국어대가 모두 이 지역에 몰려있고, 그 외에도 60여개의 대학과 중국과기원 및 산하연구기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 중관촌은 중국정부가 하이테크 개발구로 지정하면서 세금 감면 등 여러 혜택을 부여하고 있고, 외국투자기업만 해도 1170여개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삼성을 비롯해 30여개 기업이 중관촌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이공계 수난시대’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도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었다. 회의장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받으면서 한국과 다른 문화를 접했는데, 그것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차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물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에선 물이 귀한가보다.

▲중식당 회진루에서     ©브레이크뉴스

점심식사를 위해 회진루라는 중식식당을 찾아갔다. 전날 저녁에 맛본 중국음식의 느끼함 때문에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남의 음식문화를 접해보는 것은 귀한 경험이긴 하지만, 그것도 오래도록 하기에는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회진루의 음식은 그다지 느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견디지 못한 몇 명은(기자를 포함해서) 준비해온 고추장을 식탁위에 꺼내야 했다. 고추장에 비벼먹는 밥이라니... 이래서 외국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되나보다.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행은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랑팡 경제특구 조감도     ©브레이크뉴스

중국이 교육도시 건설을 목표로 랑팡 경제기술개발구역내에 개발 중인 1200만평 규모의 신도시 동방대학성에 이르러서는 왜 백문이불여일견(百聞以不余一見)인가 깨달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교육도시였다. 교육시설을 집중해서 지식을 넓게 선전하고 공유하기에 유리하다는 현지가이드의 설명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학들을 아예 한 곳에 몰아넣어 시너지 효과를 노리다니, 거대한 땅덩이를 가진 대륙 국가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넓은 토지에 갖춰진 체육시설들을 보다 못해 ‘여기 학생 1인당 1개의 농구골대가 있나’싶을 정도였다. 수업 중인지 밖에 나와 자유롭게 체육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중국이 선진국 같았다. 또 이렇게 넓은 땅덩이에서 만만디 사상이 어찌 나오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한국에서처럼 ‘빨리빨리’를 외치다가는 화병에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랑팡 경제특구를 관할하는 기관     ©브레이크뉴스

랑팡 경제기술개발구역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대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랑팡 경제기술개발구역은 국제선 항공과 항구, 열차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기타 지리적 여건이 탁월한 곳이다. 외국기업이 소액 투자를 할 때 서류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등 국가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투자비용이 적게 소요된다는 것이 현지 공무원의 설명이다. 언제부턴가 중국이 경제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민주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민주적’이라는 용어는 부적절하고, 그보다는 ‘중국이 경제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시장 친화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간부급 공무원이 한국의 대학생들에게까지 주위에 투자할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할 정도인 것을 보면서 이 말을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랑팡 구역은 92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공장이 1000집, 외국투자기업이 170개이다. 한국에서도 LG, 오리온 등이 투자를 하고 있다.

저녁은 비원이라는 한국식당에서 먹었다. 역시 한국인에게는 한국맛이 최고다, 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일행은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 뒤 예정에 없던 발마사지를 받으러 이동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고 마사지를 받는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더구나 허름한 차림의 그들 표정에서 내가 마치 뭐라도 된 듯 불편한 심기가 가라앉질 않았었다. 하지만 마사지사들은 많은 손님들을 상대해왔던지, 능수능란하게 발마사지를 했고, 돌아다니느라 피로한 몸이 완전히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또 내가 마사지 받던 방에는 중국어를 잘 하는 일행이 있어 그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단체로 배웅까지 나오는 그들 모습에서 왠지 친근함과 서글픔이 교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부정 거리     ©브레이크뉴스

일행은 이후 북경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왕부정 거리’로 옮겼다. 한자로 쓰인 간판만 제하면 서울의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확 트인 거리가 시원한 느낌마저 주었다. 거리를 오가는 중국인들의 모습에도 웃음이 만연했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깨이는 순간이었다. 왕부정의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중국만의 색깔이 드러났다. 전갈꼬치, 매미유충꼬치, 썩은 두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 본 기사는 기자가 현대자동차의 (Be Global Friends!) 중국편에 참여해 베이징에서 머문 동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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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3/01 [22: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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