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풍의 언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아온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장편 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프라미싱 영 우먼’의 에머랄드 펜넬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겼다.
1847년 출간된 ‘폭풍의 언덕’은 당시 지나치게 거칠고 과감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으나, 20세기들어 영국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재평가, 세기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가 세상의 전부가 된 두 사람의 사랑, 신분과 현실의 벽 앞에서 어긋나는 감정과 상처와 분노, 집착과 광기로 치닫는 관계는 시대를 앞서간 서사로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켰다.
‘폭풍의 언덕’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의 캐시(마고 로비)와 히스클리프(제이콥 엘로디) 두 사람의 폭풍처럼 강렬하고 파괴적인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영화는 사랑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복수라 하기엔 지나치게 집요한 감정의 잔혹극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을 응시한다.
황량한 요크셔의 외딴 저택 폭풍의 언덕에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가 들어온다. 주인의 딸 캐시와 히스클리프는 마치 하나의 영혼을 나눈 것처럼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분과 현실의 두터운 벽은 두 사람 사이를 잔인하게 갈라놓는다.
결국, 캐시가 이웃의 대부호 에드거(샤자드 라티프)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되고, 버림받은 히스클리프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자취를 감춰버린다.
5년 후, 폭풍의 언덕의 새 주인이 되어 나타난 히스클리프는 이미 에드거의 아내가 된 캐시 앞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그녀의 삶을 거침없이 뒤흔들기 시작한다.
영화 ‘폭풍의 언덕’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풍경으로 체현한다는 점이다. 광활한 황야,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 음울한 하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정념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특히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기보다 바람과 지형의 질감을 강조한다. 사랑은 인물의 표정이 아니라 자연의 격렬함으로 번역된다.
히스클리프는 낭만적 영웅이 아니다. 그는 상처받은 타자이자, 그 상처를 타인에게 되돌려주는 복수의 화신이다. 캐서린 역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계급적 욕망과 자기애, 그리고 파괴적인 사랑 사이에서 스스로를 소진한다. 이 관계는 서로를 구원하지 못한 채 서로를 파괴한다. 영화는 이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집요함을 차갑게 응시한다.
황량한 요크셔 황야, 자신을 둘러싼 자연처럼 거침없고 변덕스러우면서도 아름답고,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캐시 역은, ‘빅 볼드 뷰티풀’(2025), ‘바비’,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의 마고 로비가 맡아, 변화무쌍한 그녀의 삶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인 히스클리프를 향한 격렬한 사랑을 연기 한다.
캐시의 아버지 언쇼가 술김에 충동적으로 데려온 길 위의 소년, 신분을 뛰어넘은 영혼의 단짝으로 성장하는 히스클리프 역은, 영화 ‘프랑켄슈타인’(2025), ‘오, 캐나다’(2024)의 제이콥 엘로디가 맡아, 세상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불안정하고 냉소적인 성격이지만 ‘캐시’에게만은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격정에 빠지는 역으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로망을 자극한다.
2021년 첫 장편 연출작 ‘프라미싱 영 우먼’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과 영국 아카데미 영국 작품상·각본상을 수상해 놀라움을 안긴 후, 차기작 ‘솔트번’을 통해 파격적인 연출을 이어가며 할리우드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지닌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에머랄드 펜넬 감독은 ‘폭풍의 언덕’에서 탄탄한 서사와 강렬한 캐릭터, 압도적인 영상미와 트렌디한 음악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에머랄드 펜넬 감독은 단순한 고전의 재현을 넘어, 두 남녀의 파괴적인 사랑을 특유의 대담하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그의 연출은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어, 과장된 음악 대신 바람 소리와 침묵이 공간을 지배한다.
이 침묵은 인물들 사이의 단절을 드러내는 동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암시한다. 그러나 서사의 밀도가 높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과, 감정의 폭발은 강렬하지만, 인물의 내적 변화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순간들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의 영화라기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기록에 가깝다. 이 작품은 낭만적 환상을 철저히 거부한다. 사랑은 서로를 완성하는 힘이 아니라, 서로를 잠식하는 에너지로 묘사된다.
동시에 이 영화는 계급과 배제의 서사이기도 하다. 외부인으로서 끊임없이 밀려나는 히스클리프의 분노는 단순한 개인적 상처를 넘어 구조적 폭력의 산물처럼 읽힌다. 그가 선택한 복수는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다시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결국 폭풍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다.
‘폭풍의 언덕’은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 인물에게 쉽게 감정 이입하도록 유도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남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허무다.
‘폭풍의 언덕’은 고전의 재현이 아니라 고전의 감정 구조를 재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폭풍은 지나가지만, 그 언덕 위의 상처는 오래 남는다는 교훈을 남기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