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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N'Roll Diary] 미성과 탁성, 그리고 유토피아
 
김수민   기사입력  2002/09/22 [03:57]
- 어느 안티-유토피안의 단상 -


* 발성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 엄밀한 의미에서 미성은 아름다운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발성에 대한 논의에서, 미성은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마치 여자처럼 가볍게 음을 올릴 수 있는 남자의 발성을 뜻한다. 가령, 얼핏 탁성으로 들리는 박완규의 목소리도 기본적으로는 미성에 해당한다.

나는 미성을 향한 거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마초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했고, 강타니 조성모니 하는 상업주의의 산물들이 주로 무기로 차용한 것이 미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의 산물들이 흘리는 미성에서 어떤 고뇌도 희열도 느낄 수 없었다. 만일 내가 그들처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면, 강퍅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험난함 앞에서 부끄러워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높고 째지게 올리는 일부 록커들의 미성도 못 마땅했다. 정치적인 올바름은 '음색에는 우열이 없다'라는 명제를 주지만, 미성 지향으로 채색되어가는 프로-아마추어 록 필드가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김 모씨의 발성을 그대로 흉내내며 공연을 채우는 어느 대학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걸음을 떼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일각이었고 거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가장 애착을 가지고 듣는 음반은 'Creed'다. 케이블TV 음악채널에서 그들을 만난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들의 2집과 3집을 번갈아 가며 듣는 나는 그들의 음반이 각각 1000만장과 500만장(3집은 계속해서 팔려나갈 것이다. 2집이 2000과 2001년을 쓸었듯)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크리드의 스캇 스탭은 탁성 보컬리스트다. 탁성 보컬이라 해서 고음을 올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스캇의 노래에서는 고음도 거의 없다. 고음이 흔히 노래방 이용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째 옥타브에 달하는 음이라고 친다면 말이다. 크리드는 음악의 헤비함에서 쉽게 짐작이 안되지만, 한편으로 또한 분위기의 진중함에서 얼마간 예상할 수 있듯, 크리스찬 밴드다.

요즘 들어 크리스찬 밴드의 음악 하나를 더 듣고 있다. 'Stryper'의 곡이다. 스트라이퍼의 보컬리스트 마이클 스위트는 내가 싫어하는 축에 들던 국내의 어느 록 보컬리스트의 전범이다. 그 보컬리스트가 미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이클 스위트도 전형적인 미성 싱어다. 그들의 히트곡, 'I believe in you'의 초반부는 여성의 보이스와 흡사할 정도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귀를 기울인다, 발라드 넘버의 미성에서부터 메틀의 날카로운 두성까지 뻗어 있는 마이클 스위트의 목소리에.

동경은 동전과 닮아 양면을 가진다. 원래부터 자신과 닮은, 그래서 추구하는 것을 동경한다. 또 자신과 다른, 그래서 자신이 가지지 않을 것을 동경한다. 내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탁성이다. 그것은 네 살 적에 녹음한 <바다에 누워>(높은음자리의 노래다)가 증명하고 있다. 즐겨 부르는 레파토리들도 미성과 거리가 먼, 탁성에 가까운 곡들이다. 윤도현, 펄 잼, 크리드, 신성우, 벤 헤일런, 화이트 스네이크, 딥 퍼플...... 나는 탁성을 동경한다. 그리고 이따금은 등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어떤 미성들을 바라본다.

미성은 천국 혹은 천국 지향의 노래소리다. 유토피아(니즘)의 유토피아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노래를 들어보라. 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곳에서 탁성은 자본주의의 찌꺼기로 치부될 정도다. 진보적 성향으로 남북화해를 외치는 록커 안치환이 북한을 방문해도, 그다지 주민들은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유신체제를 만들 무렵에 수령체제를 건설했고, 수령이 죽고 그 아들이 뒤를 이을 당시부터 심각한 식량난이 지속되고 있는 북한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념 속에서 여전히 유토피아는 돌아간다. 소위 '고난의 행군'을 거친 그들을 지탱하는 강력한 집단주의를 원동력으로 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악단의 곱디고운 목소리는 그들의 남은 고집이다. 아무튼 미성이 천국의 소리라는 건 틀림 없다.

나는 탁성이다. 미성은 유토피안의 소리, 내 탁성은 안티-유토피안의 소리다. 안티-유토피안은 디스토피안이 아니다. 안티-유토피안은 안티-디스토피안이기도 하다. 뿌옇게 역사의 전시물이 된 동구권의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법을, 디스토피아의 여정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안티-유토피안은 착취와 소외와 비참이 없어진 사회를,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노래도, 읊지 않는다. 다만 착취와 소외와 비참을, 분노하면서 쓸쓸하고 구슬프게 노래할 따름이다. 나의 탁성은 선천적이고 신체적인 특성이겠지만, 사상을 입밖에 꺼내는 나의 발성 역시 탁성이다. "남을 사랑하기보다, 해치지 않으려고 애쓰라." "선을 추구하기보다 악과 싸우라."

스트라이퍼는 맑고 높은 소리로, 크리드는 굵고 낮은 소리로 독실한 신앙을 내보였다. 그들이 함께 노래한 적은 없지만 그들은 서로 어울린다. 미성과 탁성은 화음의 조건이기도 하다. 미성만으로 채워진 사회는 지향을 위해 싸우는 투사들이 실종된, 거짓 유토피아일 것이다. 탁성만으로 채워진 세계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갑갑한 공간일 것이다. 미성과 탁성이 조화된 사례에 속하는 이재호가 속한 록 그룹, '사하라'(이 그룹은 국제적인 잡지에게 국제적인 실력이라 평가받았음에도, 상업주의의 강풍을 견디지 못한 채 자멸했다.)는 음반 재킷에 이런 말을 끄적여 놓았다. "세상의 처음에서 우리는 하나였다(...)" 하나 밖에 없는 세상은 하나일 수 없기에 우리는 복수(複數)를 환영한다. 그리하여 결국 미성과 탁성은 '하나'다.

p.s. 후반에 언급된 '사하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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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9/22 [03: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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