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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퍼런 박정희 정부, 한글전용 정책 주도한 사람들
[발굴]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가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게 했다
 
리대로   기사입력  2024/10/30 [15:32]

2005년에 문화재청장이 광화문에 걸린 한글현판이 박정희 독재정치 상징이라며 그 현판을 떼고 정조가 쓴 한자를 모아 한자현판으로 바꿔달려고 해서 한글단체가 그건 잘못된 말이기에 반대했다. 그러니 문화재청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 걸렸던 잘 보이지도 않는 한자현판 사진을 본떠서 한자복제판으로 단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나와 함께 한글운동을 하던 내 동갑내기 두 뜻벗이 지난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살아있을 때에 누가 1968년에 광화문을 세우고 그 한글현판을 달게 했는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그 한글현판은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를 일으키라는 건의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 건의를 받고 한글전용 정책을 펴기로 하면서 1967년에는 탑골공원 문에 ‘삼일문’이라는 한글현판을 달았다. 그리고 1968년에는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세우고 ‘광화문’이라는 한글현판을 달았다. 그 한글현판은 국어운동대학생회가 한글과 세종정신을 살리고 빛내어 자주독립국을 이루라는 건의를 정부에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정책을 강력하게 펴기로 하고 그 한글현판에 그 뜻을 담았기에 그 한글현판은 민주, 자주정신 실천 상징이었고 한글을 빛내자는 깃발이었다. 그렇게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정부에 그 한글현판을 달게 만든 증언을 소개한다.  

 

▲ 1968년 정부가 경복궁 정문{광화문}을 세우고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써서 단 현판.   © 리대로


1. 1967년 10월 이은상 선생 증언 –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부가 광복 뒤부터 한글로 만들던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태어난 국어운동대학생회가 1967년 한글날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전용 정책을 펴서 나라를 일으키라는 선언식을 하려다가 경찰이 막아서 못했으나 그 사실이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 보도를 박 대통령이 보고 이은상 선생에게 그 일에 대해 물었다. 그때 이은상님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존경하는 역사상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니 박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고 말해서 그 두 분을 왜 존경하느냐고 물으니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고 국토를 잘 지켰으며,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만들고 왜적을 물리쳤기에 존경한다고 말하더란다.

 

그래서 이은상님이 그 정도로는 두 분 정신과 업적을 잘 알 수 없고 한문으로 된 세종실록과 이순신장군이 쓴 난중일기를 읽어봐야 한다며 그때 자신이 난중일기를 국역하고 있는데 전쟁터에서 한문 초서로 쓴 한문이라 한자를 많이 아는 자기도 읽기 힘들다고 박 대통령게게 말했고 국민 모두 세종실록을 읽어봐야 그 분이 나라를 일으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 정신과 역사를 알 수 있다며 대학생들 말대로 한문으로 된 책들을 빨리 국역하고 한글전용 정책을 펴야 옛 선조들 업적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대학생들 말을 들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역사상 존경받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니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서 한갑수 선생에게 설명하게 했다고 이은상님이 한글단체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밝혔다.

 

▲ 1967년 한글날에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전용 정책을 펴라는 선언식을 하려다가 경찰이 막아서 못했다는 신문보도와 1968년 한글날에 덕수궁 세종대왕동상에 꽃을 바치려고 모인 국어운동대학생회 학생들.  © 리대로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 이봉원 회장도 그 자리에서 이은상님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탑골공원 정문에 ‘삼일문’이라고 한글로 문패를 달았고, 다음 해인 1968년에 세종대왕동상을 덕수궁에 세우고, 이순신장군동상은 광화문 앞에 세웠다. 그리고 그해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세종대왕이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곳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세우고 그 현판을 한글로 ‘광화문’이라 써서 걸었다. 또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신 날에는 그 두 분 무덤이 있는 영릉과 현충사를 해마다 참배했으며 현충사 현판도 한글로 써서 달았고, 세종대왕 무덤인 영릉에 세종업적을 알리는 ‘세종전’을 짓고 영릉에 들어가는 문을 세운 뒤에 ‘훈민문’이라고 한글로 문패를 써 걸었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박정희 대통령 흔적을 지우려고 광화문과 여주 영릉 ‘훈민문’을 때려 부수고 세종대왕동상을 덕수궁에서 몰아냈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못된 자들이다.

 

2. 1967년 12월 22일 정인섭 교수 증언 - 정인섭 교수는 국어운동대학생회가 1967년에 개최한 청주 강연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국어운동대학생회 건의를 듣고 한글전용 정책을 펴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 탑골공원 현판을 ‘삼일문’이라고 한글로 써서 달았으며 대학생들이 대통령에게 국가 대표로 외국에 나갈 때나 조약에 서명을 할 때에는 한자로 이름을 쓰지 말고 한글로 쓰라고 하니 앞으로는 한글로 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대학생들은 우리 늙은이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국어운동대학생회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고 자랑스럽습니다.”리고 증언했다.

 

  © 리대로


그리고 1968년 3월14일 박정희 대통령이 앞으로 한글전용 정책을 펼 생각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국어운동대학생회 대표들이 3월 17일 동숭동 서울문리대 교정에서 박정희 대통령 생각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명동과 종로 광화문 지하도에서 한글전용 정책을 빨리 시행하라는 전단을 뿌리는 거리 행사를 했다. 그때 정인섭 교수는 우리 대학생들을 종로 ‘한일관’ 음식점으로 모이게 하고 맛있는 밥을 사주시면서 “오늘 여러분이 한 기자회견과 거리활동이 방송과 신문에 보도되었으니 박정희 대통령도 이제 한글전용 정책을 안 펼 수 없게 되었다. 애썼다. 기쁘다.”시며 그 식당에서 아리랑 노래를 크게 부르시고 우리 학생들에게 답가를 하라고 하셔서 나와 함께 참석한 동국대 국문과 김윤진 여학생이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부른 일이 있다.

 

그런데 서울문리대 교정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에 내가 학생 대표로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했는데 “왜 정부는 세종대왕이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분이며 한글은 세계 으뜸 글자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정부는 한글전용법을 안 지킵니까? 왜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물리쳤다고 자랑하면서 오늘날 철갑선 군함도 못 만듭니까? 이게 제대로 딘 나라입니까?”라고 한 내 말이 하루 종일 뉴스에 나왔다. 그때 텔레비전 인터뷰는 나와 함께 참석한 동국대 국문과 김윤진 후배가 했는데 그때 텔레비전은 보급된 때가 아니어서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으나 자료는 있을 것이다. 정인섭 교수님은 그 뒤 외대에서 한 육영수 여사 강연회에도 가서 그 분에게 한글전용을 강조하는 질문도 하신 열성 한글운동가였다.

 

  © 리대로


3. 1968년 6월 6월 27일 한갑수 선생 증언 –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두 번 째로 다음해에 연  청주 강연회에서 “며칠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단체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을 먹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자신은 지금도 한자혼용이 편하고 좋은데 전문가(이은상 한글학회 이사) 이야기를 들으니 한글전용을 안 하면 안 되겠기에 한글전용정책을 펴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니 정인섭 선생이 박 대통령에게 5년 까지 끌지 말고 당장 시행하라고 명령하시오라고 말해서 엄숙한 그 자리가 서먹서먹하게 끝났다. 그래서 내가 정인섭 선생에게 너무 심하게 말하지 않았소라고 물으니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하기에 하나도 지나친 것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인섭 선생은 올해 예순다섯 살이신데 아주 바른 말을 잘 하신다.”라고 증언을 했다.

 

이은상 선생이 박 대통령에게 국어운동대학생회 말대로 한글전용 정책을 펴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역사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하니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서 한갑수 선생이 그 때 군인들이 좋아하는 도표(차트)에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한글 붓글씨로 멋있게 써가지고 가서 설명하니 대통령이 듣고 당장 그대로 하라고 담당부처에 지시했는데 정인섭 교수는 5년까지 끌지 말고 당장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박 대통령 생각이 바뀔까봐 걱정스럽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정인섭 교수 말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가 말한 대로 1970년부터 강력하게 한글전용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하고 학교에는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구호를 써 붙이고 한글과 세종정신을 살리고 빛냈다. 국민의 바른 소리를 귀담아 듣는 참된 지도자였다.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는 1950년대부터 한국방송에서 ‘고운말 바른말’이라고 방송을 수십 년 동안 해서 우리 국민들이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고 바르게 쓰도록 했으며 붓글씨를 잘 썼다. 그래서 일제 때 초등학교 선생을 하면서 붓글씨 쓰는 것을 좋아한 박정희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책 자문을 해주었는데 내가 다닌 예산농고 한인수선배가 주장한 농촌부흥운동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해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게 했다. 그래서 한인수 선배가 5.16민족상 1회 때 상을 받게 되었으며 한갑수님이 그 선배가 만든 농촌복지원(가나안 농민학교 닮은 사설교육기관) 총재도 맡기도 했다. 한갑수 선생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과 새마을 운동을 하게 해 나라를 일으키게 자문한 분이기도 하다.

 

  © 리대로


4. 1990년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의 때 한갑수 선생 증언 – 1990년 노태우 정부는 경제단체가 공휴일이 많아 나라 살림이 어렵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했다. 그래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그 대책회의를 했는데 그때 한갑수 선생은 “걱정할 거 없다. 청와대는 국어운동대학생회 말이라면 꼼짝 못한다. 그 젊은이들에게 맡기자.”라면서 “ 박정희 대통령은 대학생들이 한글전용을 하라는 말을 듣고 한글이 우리 자긍심이고 자존심임을 깊이 깨닫고 어느 날 미국 국무성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하는 정책을 못하게 막으려고 온다고 하니 그 미국대표가 오기 전날 저녁에 나에게 한자로 쓰인 청와대 집무실 이름을 모두 한글로 바꾸라고 해서 밤새 한글로 써서 바꾼 일이 있다.”라고 증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는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을 만든 민족이라는 것을 내세워 우리도 자주국방을 할 수 있다는 증거로 한글을 내세우려고 한 것이다. 아마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몰래 국방 연구시설을 만들려는 것이 발각되어 박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으려고 온다고 하니 그에 맞서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국어운동대학생회 소리를 듣고 박 대통령 문화특보로 활동하던 이은상 선생과 한갑수 선생 이야기를 듣고 한글을 우리 자긍심이고 자존심으로 여겨서 미국에 “우리는 세계 으뜸 글자를 만든 민족이니 자주국방을 할 자신이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고 맞서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증언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갑수 선생이 그때 85세로 나이가 많아 노태우 정부도 박정희 정부처럼 대학생들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착각하신 거 같다.

 

그때 그 자리에서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 내가 한갑수 선생 말씀을 들었고 한글날을 지킬 다른 대책이 없어서 그 뒤 내가 전국 40여 대학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들을 이끌고 이어령 문체부장관을 만나 한글날 공휴일을 지키라고 면담 신청을 하고 갔는데 경찰기동대가 우리를 외워 싼 뒤에 이어령 장관은 차를 타고 청사를 빠져나가고 우리를 문체부 식당으로 밀어 넣은 뒤 최진용 어문과장과 직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그때 문화부장관이 책임지고 한글날을 지키라고 말하고 그러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 며칠 뒤 눈발이 내리는 날에 탑골공원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한글독립선언식’을 한 뒤에 명동까지 거리 시위도 했으나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빠져서 그 뒤 나는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에 앞장을 서게 된다.

 

▲ https://youtu.be/V6SS6-Fu15c?si=HJisiEEj7Qf5W1SH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펴고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게 된 것을 알려주는 증언 움직그림(동영상).  © 리대로

 

이렇게 국어운동대학생회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하고 광화문에 그 뜻을 담아서 단 한글현판은 40여 년 동안 걸렸고 그 현판은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가 일어나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노벨문학상을 타는 나라가 되게 하는 깃발이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대학생들 건의를 무시하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면서 한글과 세종자주정신을 살리고 빛내지 안했다면 한글은 오늘날처럼 쓰이지 못했고 우리 자주문화가 꽃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일본 식민지 국민 세대인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세 분은 그 한글전용 정책을 못하게 해 우리는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그들과 치열하게 투쟁해 한글을 지켰는데 요즘  대통령들은 미국말을 지나치게 섬겨서 나라말이 짓밟히고 국민 자주정신이 흔들리고 있으니 서글프고 화가 난다. 

 

▲ 김대중 정부 때 김종필 총리가 공문서에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고 해서 한글단체는 김종필 총리 영정을 들고 반대 시위를 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어 조기교육을 주장하고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강연에도 나서서 우리말글을 못살게 굴었다.  © 리대로

 

https://youtu.be/V6SS6-Fu15c?si=3qeCdJFaqZxDfCjl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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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0/30 [15: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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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임자 2024/11/01 [06:24] 수정 | 삭제
  • https://youtu.be/V6SS6-Fu15c?si=3qeCdJFaqZxDfCjl 이 동영상이 위 글에서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댓글로 올리니 많이 보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대로 2024/11/01 [05:47] 수정 | 삭제
  • 정문순님 말도 일리는 있는데 이제 그 굴레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잘한 것이 무엇이고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가려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한 쪽 눈은 가리고 사람이나 세상을 보면 세상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정문순님이 오래 전부터 내가 하는 국어독립운동 글을 헐뜯고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시민들이 언어생활을 잘못하면 정부가 바로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시민 언어생활에 과도하고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쓰자고 한 것도 문제라고 보나요? 좋은 우리 글자가 있는데 안 쓰고 한자를 쓰고 우리말이 있는데 영어를 쓰는 것이 좋단 말인가요?
  • 정문순 2024/10/30 [17:22] 수정 | 삭제
  • 정권이 시민의 언엋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부에서 빚어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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