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한시대(韓始大·1889~1981) 선생. 일제로부터 짓밟힌 조국을 눈물로 등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인재 양성과 조국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에 힘쓰고 대한인국민회 재건과 광복군 창설을 지원한 독립운동가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시대 선생의 미주 독립운동 활약상과 그의 활동이 얼마나 미주 한인사회의 단결과 통합, 광복에 영향을 끼쳤는지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국가보훈처가 2016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생을 선정하면서부터. 그가 20대 후반에 독립운동단체인 흥사단에 입단해 죽을때까지 흥사단 활동에 전념했으나 활동 무대가 주로 미국이어서 국내 흥사단에서도 그의 존재나 활약상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었다. 선생의 정확한 얼굴은 ‘島山安昌浩全集’14권 318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흥사단 179 단우 한시대(韓始大) 선생 © 이영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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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 선생의 불꽃같은 삶 선생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3년 부모를 따라 노동 이민자로 하와이로 건너 왔고 1914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멘티카에서 사탕무 농장 경영을 시작하면서 사업가로 성공한다. 1916년 4월, 대한인국민회 멘티카지방회를 설립하고, 1913년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해 활동하던 흥사단에 1917년 9월 입단함으로서 본격적인 민족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고 당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이었던 안창호 선생이 독립선전외교활동과 재정모금활동을 천명하자 한 선생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재산의 상당 부분을 납부하며 자금 모금에 일익을 담당한다. 선생은 1924년에 다뉴바 한인국어학교 교장으로 한인 2세 민족교육에 뛰어든다. 1930년에는 딜레노지방회 회장에 취임하고 1937년부터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0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을 적극 후원하였고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규모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하는 등 재미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독립이후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한 독립투사 선생은 해방 이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대표단을 결성, 대표단 단장으로 국내에 입국해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노력했고 고국에서 활동을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가 농장 경영과 흥사단 활동에 전념했다. 정부는 미주지역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이끌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흥사단 정신으로 무장하고 애국의 한길로 조국 광복을 위해, 해방후에는 국가발전과 미주 한인의 단결을 위해 헌신한 한시대 선생.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은 선생의 이름처럼 한 시대를 올곧이 미주 한인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조국독립운동을 이끄는데 바친 민족 지도자의 전형적인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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