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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역사소설, 진짜 ‘정도전’을 만나다
[사람] 10년에 걸쳐 최초로 정도전을 소설로 다시 살려낸 작가 임종일
 
이창은   기사입력  2014/04/07 [16:45]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에 맞추어 소설과 학술서를 비롯하여 2014년에 나온 책만 10권을 넘는다. 정도전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치밀한 준비를 통해 혁명을 성공시켜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 하지만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힌다. 고종에 의해 복권되기까지 거의 500년 동안 그는 조선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가 위험한 이유는 ‘민(民)’이 나라의 중심이며 민심이 왕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민본사상’의 무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도전이 피를 토하듯 외쳤던 ‘민본’과 ‘혁명’은 600년을 거슬러 2014년 대한민국에 큰 울림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로는 부족하다. 진짜 정도전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무엇을 보아야 할까? 그래서 많은 책들을 검토한 결과 인문서원 출판사에서 펴낸 임종일 작가의 장편역사소설 <정도전>을 꼽았다.

집필과 연구에만 10년이 넘게 걸렸고, 이미 15년 전에 5권의 소설로 출간된 바 있다. 정도전에 관한한 선구자적인 안목을 갖고 역사소설을 쓴 작가답게 역사적 근거와 해석이 탄탄했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었다. 그래서 최근 3권으로 완전 개작한 역사소설 『정도전』(인문서원 펴냄)의 임종일 작가를 만났다.

- 정도전이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 무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요. 그 동안 역사드라마로 정도전은 늘 영순위였음에도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다가 갑자기 시작한 것을 두고 정치적인 ‘함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분명히 있어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가 분명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백년 전 고려말의 모습과 지금 우리시대의 모습이 여러 부분에서 닮아있어요. 문제는 변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다는 이율배반에 있어요. 때문에 변혁의 요체를 제시하고 끌어갈만한 정도전과 같은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정도전』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개인적으로는 1990년의 ‘3당합당’이었어요. 민주화와 개혁을 열망하던 많은 이들에게 절망 그 자체였거든요. 당시 백과사전을 만드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때 맡은 집필 꼭지가 바로 정도전이었어요.

▲ 임종일 작가가 10년의 각고 끝에 정도전을 새롭게 살려낸 소설 정도전 전3권     © 인문서원 제공

그때까지만 해도 정도전에 대해 역사시간에 배웠던 대로 ‘패배자’ ‘간신’이라는 생각이 앞섰는데 그의 방대한 저술과 일본과 중국의 자료에서 정도전을 보고서 ‘어, 이건 아닌데’라는 물음표를 강하게 가졌죠. 정도전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또 그가 우리 역사에 진짜 혁명가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소설로 써야겠다’ 결심했죠. 가당찮은 일이었지만 정도전을 통해 시대를 좀 바꾸고 싶었어요. 그런데 5권의 소설로 내는 데는 10년이 걸리고 말았어요(전 3권인 개정판과 달리 초판은 전 5권이었다).

- 10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인데?

==> 그랬죠. 정도전의 흔적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다녔어요. 그렇지만 그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죠. 정도전의 유배지였던 전라도 나주만 해도 제가 찾아갔을 때는 표지석 하나 없는 그냥 논밭이었어요.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밝혀 줄만한 자료를 찾아 복사비만 당시에 천만 원이 들었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30만 원 부족한 천만이었죠. 정도전 사상의 근간인 맹자를 따로 공부했고, 여말선초에 관한 자료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모으고 연구했죠.

정도전은 변혁의 아이콘, 그 진정성 찾아야

- 작가님의『정도전』이 가진 차별성은?

==> 드라마는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다른 작품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또 지금 나온 정도전 관련 소설들은 모두 내 작품이 나온 이후에 출판된 것들이기 때문에 굳이 비교할 것도 없고, 차별성을 이야기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놀란 것은, 바로 며칠 전에야 알았는데, 제 작품의 표절을 넘어 거의 그대로 베낀 것들이 있고, 어느 독자께서 드라마도 상황들이 제 작품과 유사하다고 하는데, 검토해서 당연히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10년을 바친 작품인데 그렇게 글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죠. 
 
▲ 사실(史實)에 입각해 정도전과 여말선초를 새롭게 조명하고 구축한 임종일 작가.     © 대자보

아무튼 저는 정도전을 쓰면서 철저하게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었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역사적 진실을 드러냈다고 자부합니다. 진짜 제대로 된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고려 망국과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기록과 평가들이 철저하게 왜곡되거나 진실 자체가 함몰되어 있는데, 그 행간과 자간 사이에 숨어 있는 역사의 진실과 실체를 보고자 했어요.

- 그 역사적 진실과 실체가 무엇인가요?

공민왕 암살만 해도 그래요. 왕이 변태성욕자였고, 그로 인해 시해된 것으로 되어 있고, 지금까지 다 그렇게 알고 있거든요. 공민왕 시해의 진실은 사실 그런게 아닌데, 공민왕 사후에 이인임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과 정도전이 유배를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시해의 배후에는 원나라가 있었고, 권문세족이라 칭하는 이인임과 친원세력이 있었던 거죠. 정도전은 바로 그 의혹과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결국 이인임에 의해 유배를 갔고, 이인임이 집권하는 10년 동안 탄압을 받았죠. 고려의 망국은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데 어느 학자나 작가도 의문을 가지지 않아요.

또 정도전과 정몽주와 이성계의 만남과 관계들,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최영과 정몽주의 이면들, 조선 건국과정과 요동정벌에 대한 정도전의 확고한 의지, 왕자의 난 등 전혀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당대의 기록을 볼 수 있는 데까지 다 봤어요. 그 자료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고, 그래서 소설 속의 대화 하나하나까지 최대한 사료를 근거로 했어요.

-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고 하셨는데, 고려말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 고려 원종 대 몽고의 침입으로 항쟁이 있었지만,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려는 이미 독립된 국가라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원나라의 43왕부가 있는데 그 중 서열 41위에 해당하는 왕부의 하나일 뿐이었죠. 그래서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충(忠)’자가 붙은 임금시절은 왕실만 겨우 살아 있는 상태였고 그 조차도 부패가 극심했어요. 심지어 왕이 몽고말은 해도 우리말을 잘 모르는 정도였으니까요.

나라의 정치는 권문세족과 원나라에 빌붙어 사는 부원(친원)세력이 마음대로 휘둘렀고, 사회제도와 생활습속까지 몽고를 따랐죠.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친일파들의 득세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백성들의 삶은 너무나 피폐했고, 더구나 왜구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강토를 유린하는 데도 나라는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죠. 당시 사회 시스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이미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정말이지 ‘나라가 나라가 아닌’ 꼴이었죠.

- 정도전은 제일먼저 토지개혁을 단행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토지개혁, 이른바 전제개혁은 공민왕대부터 몇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정도전이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위화도 회군 후 이성계가 정권을 잡으면서부터였어요.
정도전은 왕은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백성이 의지하는 곳은 어디냐, 바로 땅이었어요.

땅은 식량이죠. 삼봉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야 예의와 염치도 아는 법이다’고 말했어요. 땅은 세금이죠. 땅이란 본래 나라의 것, 그래서 공전(公田)인데 왕실과 권력자들이 다 차지해버렸으니 사전(私田)이 되어버렸죠. 부자들은 산천을 경계로 해서 땅을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는데 정작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다’며 정도전은 한탄했어요. 옷 한 벌로 사시사철을 살고 굶주리다 못해 처자식을 노비로 팔고 유랑걸식하니 사람이 살던 마을은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비었고, 여우와 토끼굴로 바뀌었다’라고 할 정도였죠.
그래서 정도전은 본래 나라의 것인 땅을 되찾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개혁을 단행하고 첫 단추가 사전혁파였습니다.

- 정치가, 혁명가! 정도전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식어는?

==>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모를 정도에요. 철학가, 사상가, 경세가...사실 이것도 기본이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고, 우리 역사에 없던 병법서를 저술해냈으니 병술가였고, 의학서를 썼으니 의술가였고, 고려사를 정리하고 중국역사에 능통했으니 역사가였고, 궁중음악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음악가였고, 천문지리뿐만 아니라 풍수비기까지 능했죠.

정도전을 공부하고 소설을 쓰면서 어느 순간 그는 세상이 있으나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었고 세상이 없어도 홀로 있을 사람, 곧 ‘초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조선은 이성계의 나라인가 정도전의 나라인가?

- 충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정몽주를 평가하신다면?

==> 평가라기보다, 사실을 따지자면 정몽주는 정도전의 혁명동지였죠. 정도전이 10년의 유배생활 끝에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혁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정도전을 이성계한테 소개한 사람이 바로 정몽주입니다. 그런 정몽주가 나중에는 정도전을 모함해서 죽이려 하거든요. 동지에 대한 배신이자, 혁명에 대한 반역으로 볼 수 있죠.

사실 두문동 72현과 정몽주의 선죽교 순절설과 혈흔설은 영조 때 만들어졌어요. 사림파들에 의해 추숭됐죠. 정몽주와 정도전을 비교할 때에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고 봐요. 한 사람은 왕조를 위해 충성을 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쁜 임금이라도 섬겨야 하고, 아니면 변절이라고 하는 것은 강상의 논리와 가신의 윤리에 지나지 않아요. ‘실학’과 ‘실천궁행’을 강조하던 조선 초기의 유학이 나중에 실패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 조선의 건국, 이성계보다는 정도전의 역할을 더 높게 보시는 것 같은데?

==> 당연하죠. 정도전이 이성계를 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태조실록에도 그렇고 이성계도 인정하는 이야기에요. 한번은 이성계가 정도전을 가리켜 ‘나의 장자방’이라고 했어요. 장자방은 한나라 고조(유방)를 도와 나라를 세웠던 장량을 말하는데요. 그때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대놓고 ‘장자방은 맞지만 다른 것은 한고조가 장량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썼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어요. 이 말 하나로 설명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정도전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려고 했나요?

==> 아까 정도전을 가리켜 ‘초인’이라고 했는데, 조선건국의 시작과 끝이 오로지 그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정도전의 손길과 하다못해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정하고 도시를 만들고, 성곽을 쌓고, 이름을 정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사람이 정도전입니다. 실록에 의하면 이성계는 일마다 ‘경이 개국의 시초를 열었으니...’하면서 정도전에게 맡겼고, 정도전은 해냈죠.

그 중에 크게 두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민본정치 민본국가 건설입니다. 오늘날 헌법전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경국전의 첫 번째가 임금의 보위를 바르게 한다는 ‘정보위(正寶位)’인데 거기에서 정도전은 ‘임금의 위가 높고 귀하지만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약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라고 못을 박았죠. 민심을 얻지 못하면 임금도 얼마든지 갈릴 수 있다는 말이니 경계의 뜻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왕위가 그러한데 정치와 사회제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이 민본이었죠.

이것은 서구의 천부인권설이나 인민저항권보다 2세기나 앞선 사상이었어요. 오늘날 정치와 위정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대목라 봅니다.

또 하나는 요동회복입니다. 요동은 고구려의 동명왕이 나라를 열었던 곳이고, 고려 때까지도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는 것이 삼한의 유업이라고 했어요.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에 이성계와 함께 꾸준하게 부국강병책을 도모했고, 요동을 회복함으로써 중국과 맞서겠다는 의지가 강했죠. 요동회복이 혁명의 완성이었고, 후예들에게 물려줄 천년의 업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시 보는 정도전, 그의 뜻을 중시해야

-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 문제는 이방원이었죠. 정도전은 이방원과 권력을 놓고 투쟁할만한 것도 없었어요. 왕자의 난은 왕조사로 보면 단순한 왕위찬탈인데, 역사를 좀 더 넓게 민족사로 본다면 엄청난 반역이자 변란이었습니다. 아무리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만에 하나 이성계와 정도전에 의해 요동공략을 단행했더라면 얼마든지 요동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뒤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 충분히 입증하고 있죠. 그런데 이방원은 고려의 구세력과 결탁하여 혁명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렸어요. 이방원이 왕이 되면서 고려의 구세력들이 다시 권력을 차지했고 조선의 개혁정치와 제도 역시 고려시대로 회귀해버렸고, 고려말의 폐단이 다시 반복되었어요. 세종 때 문물의 부흥은 분명 있었지만 그 폐단을 그나마 바로 잡은 것이 세조였죠.

- 작가님이 쓴『정도전』이 드라마의 원작이어야 할 것 같은데?

==> 글쎄요. 아직 보지도 못했고... 이제 꼼꼼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어느 사극보다 의상과 도구 등 고증에 충실하다는데, 내용까지 역사적 사실과 고증이 이루어지고 우리 시대에 커다란 의제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 이후 계획은?

==> 15년 전에 <정도전>을 5권의 소설로 내놓고, 오히려 세상살이는 신산하기 이를 데 없어요. 어쩌다 지금은 수원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무척 낯설어요. 마치 유형과 같은 삶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3권으로 ‘정도전’을 개작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정도전을 쓸 때부터 생각했던 작품을 이번에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 임종일 작가는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각고의 10년이지만, 새로운 10년을 기대한다.     © 대자보
* 임종일 작가는 수원의 성균관대역 가까운 곳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었다. 펜을 들어야 할 손이 주방에서 칼을 잡고 있으니 깜짝 놀랐다. 손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쩐지 다른 식당들 주인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스스로 유배의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유배의 삶을 통해 더 큰 작품이 나올 것을 꼭 기대한다.

임종일 작가의 역사소설 <정도전>은 3권으로 되어있는데, 책마다 붙은 부제들에서부터 무게감이 달리 느껴진다. 1권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2권 “고뇌 속으로 가다”, 3권 “꽃이런가 낙화로다”. 제대로 된 정도전을 만나려면 그의 소설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는 인문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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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07 [16: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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