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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 확실’
22일 프레스센터에서 작사자 규명 발표, 기존 윤치호설 부정 주목
 
이영일   기사입력  2012/08/19 [22:40]
지난 6월. 한 민영뉴스통신사에 ‘애국가 재발견’이라는 5회짜리 기사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연재물의 작자 이름이 들어간 ‘○○○의 잡기노트’라는 연재기사가 또 개제되었는데, 이 내용은 사실상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라고 종합되는 내용이었다.    

이어 8월 들어는 [김연갑 애국가]라는 코너가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내용도 역시 애국가 작사가자 윤치호라고 주장하는 것이었고, 이내 광복절을 앞둔 8월 12일,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료 2건이 발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언론사가 보도한 발굴 내용은 1954년 미국 워싱턴 한국연구정보사무소가 펴낸 16쪽 분량의 악보집 '코리아 랜드 오브 송(Korea Land of Song)인데, 이 책 8~9쪽에 애국가가 실려 있으며 여기에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Korean Words of Yun Chi-Ho)'라고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단독 보도라는 이 기사에서 위의 자료를 찾아냈다는 사람은 바로 직전까지 애국가 관련 연재물을 기고하던 김연갑씨였다. 김연갑씨는 이미 지난 1998년에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라는 논문을 발표한 역사학자인데 이 단독보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통신사를 통해 “윤치호 사·안익태 곡, 이것이 진실”, “애국가를 안창호가 지었다고?…오늘 광복절”등의 기고를 통해 애국가 작자자에 대한 윤치호 작사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여하간 이 통신사의 단독 보도 반응은 싸늘했다. 다른 인터넷언론사와 신문사 몇군데가 이 내용을 인용 보도했지만 해당 통신사 문화부장이 애국가 작사자는 사실상 윤치호라는 듯한 내용의 연재물을 써가며 지원사격까지 한 것에 비하면 반응은 별로였다. 사실 그동안 작사자 윤치호설이 안창호설보다는 확실히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고 눈으로 보이는 물증이 많았던 것도 윤치호설이었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의외의 반응이었다.  

▲ 흥사단 설립자 도산 안창호 선생.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시설 사진이다.     ©이영일
그러나 19일, 흥사단이 지난 2년간 몰두해 온 애국가 작사자 규명사업에 따라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 작자사라는 증언과 증거가 있다고 발표하자 언론의 관심은 윤치호 증거물이 나왔다는 구체적 보도에 비해 훨씬 뜨겁다. 게다가 오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 규명 발표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함께 알려지자 당일 많은 언론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의 충돌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2월 13일, 김연갑씨가 연구위원으로 있던 국가상징연구회가 주최한 애국가 작사자 규명 토론회에서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정면으로 맞붙은 적이 있다. 이후 흥사단은 2002년 11월 15일에 애국가 작사자 규명 토론회를 열고 조직적 차원의 연구를 구상하기 시작, 2003년 흥사단본부 산하에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를 설립한다. 

김연갑씨가 주축이된 국가상징연구회는 2004년 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미국적십자사가 1951년 초판에 이어 1952년 찍어낸 7개국 국가의 작사·작곡 배경을 다룬 수정판 ‘National Anthems…’ 책자를 발굴했고 ‘TONG HAI MAIN(동해바다)’ 제목 아래 애국가 1·2절 영문가사와 후렴을 싣고 작사자를 윤치호(Chiho Yun)로 적었다고 발표한다.    

흥사단이 지난 2년간 애국가 작사자 연구를 해왔다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 흥사단은 지난 2003년부터 근 9년여간 언론플레이보다 조용히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매달려 온 셈이다. 언론에 알려진 흥사단의 구체적 물증은 지난해 3월 독립지사 윤형갑 선생의 증언을 종손 윤정경씨가 채록한 CD자료다. 역시 증언의 한 종류다. 그러나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낸 현 최고령 애국지사 구익균옹(105)이 “애국가 작사자가 자신이다”라고 말했다는 안창호 선생의 증언마저 무시하기는 힘들다. 

애국가를 윤치호가 지었다고 주장하는 측은 수많은 증거물을 제시해 왔다. 오는 22일 흥사단이 어떤 물증과 사실을 제시할지 프레스센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기자, 동아일보e포터 활동을 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3월,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을 출간했고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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