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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경제권력, 중국으로 급속 이전중
중국경제 세계경제에 지각변동, 동북아재편에 한국 대비해야
 
안찬수   기사입력  2003/11/11 [20:38]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현재 정치 경제적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제2의 개방을 시작했으며, 동시에 13년 동안 집권하던 장쩌민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가 후진타오(胡錦濤)로 바뀌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최근 미국과 견줄만한 무역 대상국으로 부상한 측면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적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듭 중국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과연 중국의 부상을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영어판 10월호에 현재 파리8대학의 강사이자 언론인인 필립 S. 고룹(Philip S Golub)이 쓴 ‘중국--새로운 경제 거인’이라는 글을 소개한다. 원문은  http://mondediplo.com/2003/10/08china(옮긴이 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어판 10월호에 실린 "중국-새로운 경제 거인"이라는 글     ©르몽드
2003년의 7월 18일, 미국에서는 중국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미국의 무역 적자 누적, 실업률 상승, 섬유 산업이나 전자 제조업 분야의 파괴적인 현상이 중국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비난이었다.

찰스 슈머(Charles Schumer) 상원의원은 “미국의 제조업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돌(Elisabeth Dole) 상원의원은 “위엔화가 인위적으로 저평가되어 미국의 기업들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값싼 외국제품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린제이 그래엄(Lindsey Graham) 상원의원은  “중국은 무역 협약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재무성은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의 국내 산업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는 위엔화를 중국이 더 이상 저평가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1)

이런 논의에 무게를 실어준 것은, 바로 전 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이 의회에서 중국을 비롯해서 그 밖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통화를 저평가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그리스펀은 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규모의 외화준비금을 더 이상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2) 

미 상원의원들은 재무장관에게 중국에게 외환 통제를 폐지하고 1달러=8.3위엔으로 고정되어 있는(페그제, peg system, 옮긴이 주) 위엔화를 변동시키도록 압력을 넣으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뜨거운 분위기는 8월 들어 가라앉았지만, 9월 아시아를 방문하던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중국에 대해 “통화 가치를 시장의 결정에 맡겨라”고 다시 한번 권고했다. 이것은 북한 문제나 아시아의 지역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한 미국 정부로서는 기이한 행동처럼 보였다.

우리는 미국의 무역 적자가 증대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몇 안 되는 성장의 진원지인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 경제 통합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 비슷한 주장이 거듭되리라 예상하게 된다. 

미국이 최근에 아시아를 공격하는 것은 단지 미국의 국내 정치의 변덕스러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공격적인 통상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세계의 경제 권력이 구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으로 옮겨갈지 모른다는 미국의 우려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역동성과 관련해서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시아 국가의 중상주의와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위협적인 경쟁력에 대한 경종을 통해 아시아의 기적에 대한 갖가지 논의가 홍수를 이루던 1980년대부터 이미 분명해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1918년 이래 처음으로 채무국이 되어, 재정과 대외수지의 쌍둥이 적자에 직면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오늘날의 중국처럼,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NICS)가 서방 세계의 섬유 산업에 파괴적인 손해를 끼친다고 비난을 받았으며, 통화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압력과 미국의 무역이나 투자에 대해 국내 경제나 금융 시스템을 개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1985년 레이건 정권은 이른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s)를 통해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을 50% 절상을 꾀하였다. 이 합의는 미국의 시장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미국의 안보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던 동맹국들에게 부과되었으며, 미국은 수출을 확대하게 되었고, 일본의 산업 경쟁력은 감소했다.  

그런데 이 정책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엔고 상태에서 일본은 순식간에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이 부가가치가 낮은 수출 산업을 동남아시아로 옮김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이 진행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생산 설비를 빠르게 재배치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적 노동 분업 체계가 만들어졌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이 지역의 정치경제는 환태평양 무역을 축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북동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이라는 단일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메레디스 워 커밍스(Meredith Woo-Cumings) (3)의 말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미국의 호수’였으며, 미국이 아시아의 수출 상품을 흡수해줌으로써 수출 주도의 산업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개발국가는 용인되었으며, 사실은 일본, 한국, 대만은 소련과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서 안보와 번영의 방벽이 된다는 이해 아래 장려되었던 것이다.

냉전 시대의 틀 속에서, 이들 국가는 자신들의 정치적 주권을 미국 시장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맞바꾸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를 때까지, 미국은 일본의 수출품 가운데 3분의 1 이상, 한국의 40%, 대만의 44%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국은 이와 같은 구조적인 의존 상태에 있는 동맹국들에 대해 매우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무역 대상 국가나 투자처를 동아시아로 다각화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미국에 대한 수출은 전체 수출 가운데 27%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의 역내 무역은 32%에서 44%로 증가했다. 이것은 일본의 다국적기업(MNCs)이 아시아 지역의 노동 분업에 무게를 더했던 것을 반영하고 있다.(4) 1994년에는 아시아 역내 무역은 아시아 전체 무역 가운데 48.5%를 차지했고, 1995년에는 50%를 돌파했다. 

이런 결과는 미국이 기대한 것도 아니었으며, 예상한 것도 아니었다. 냉전시대에 일본과 그 이후 신흥공업경제 국가들(NIEs)에 대해서 “서방 세계는 잘 하도록, 하지만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잘 하도록 촉구하고 있었다”(5)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냉전 이후의 시대에 접어들자, 아시아 개발국가는 그 전략상의 의의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눈에는 위협으로 보이게 되었다. 미국은 약진하는 동아시아 경제 블록이 출현할 것이라는 망령에 시달리게 되었다.

빌 클린턴 정권 때 재무장관이 되는 로렌스 서머즈는 1989년,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아시아 경제 블록이 형성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소련보다도 일본이 미국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올바른 것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6)

1990년 도쿄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 분야에서 버블이 터진 이후, 일본이 장기적인 경제 불황의 시대에 접어들자, 안도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미국 작가의 생색을 내는 듯한 말에 의하면, “일본 모델은 자본주의의 다른 형태가 아니었다. 일본은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의 재수생이었다”는 것이 이 위기로 증명되었다. 

이 위기가 무엇인가를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율적인 동아시아 블록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은 어두워짐으로써 서구의 몰락을 우려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1997년부터 1998년에 걸쳐 아시아의 심각한 경제 위기는 서양이 유일무이의 우월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혹은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유치한 상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잘머즈 존슨(Chalmers Johnson)이 지적했듯이, 아시아의 사회와 경제가 나락에 떨어질 것처럼 동요하자 “미국의 많은 평론가들과 경제학자는 공공연하게 환영의 뜻을 드러내었다.”(8)

오늘날 전쟁과 제국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신보수주의(네오콘) 작가, 찰스 크로서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의 성공은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의 승리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당연히 아시아의 가부장적인 정실 자본주의보다도 아담 스미스의 자유 시장에 대한 비전에 근접한 것이다. 버블 붕괴 이전에는 미국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시아 형태의 자본주의가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보았지만.”(9)

몇몇 학자들도 그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어느 학자는 “위기는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 모델의 신뢰성을 파괴했다”고 말했다.(10)

앨런 그리스펀 FRB의장도 이 논의에 참가한 바 있는데, 그는 아시아의 위기는 개발주의(developmentalism) 즉 국가 주도의 산업화 그리고 시장 주도의 자원 배분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린스펀에 의하면, 아시아 경제 위기는 세계가 통제 경제(dirigisme)에서 벗어나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라는 서구식 형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11) 아시아의 기적(miracle)은 신기루(mirage)였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의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에서 후발주자인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태평양 양안 즉 아시아나 미국이나, 이 위기는 동서양의 충돌로서 해석되었고, 세계 경제의 세력 판도에 결정적인 순간으로 이해되었다.

미국이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보면, 위기를 전후하여 아시아 지역의 금융 시장을 강제적으로 자유화한 것은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며 “전 세계에 개발주의식 정책을 해체”(12)하기 위한 시도라는 견해를 확인하게 된다. 

1994년 멕시코에서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 미국의 재무부는 신속하고도 결정적인 융자를 단행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아시아 전체에 위기가 확산되고 있을 때에는 미국과 유럽은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대규모 구제금융을 실시한 것도 독소가 세계 경제에 퍼져 이미 통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미국 재무부가 1997년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창설하자는 일본의 제안을 반대한 것이다. 아시아통화기금이 있었다면, 대규모 자금 유출에 직면하고 있는 여러 나라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시아통화기금이라는 제안은 미국의 재무장관에 의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잔인하게 분쇄되었다”고 버나드 고든(Bernard Gordon)은 적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의 몇몇 국가의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내버려두려 했던 것”이라는 견해가 아시아에서 강하게 대두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이 아시아의 곤경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13)

워싱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시아통화기금(AMF)이 자율적인 지역 금융 시스템의 중핵이 되어, 서양의 세계 패권의 도구인 IMF의 라이벌이 되는 것이었다.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 대신 IMF의 통상적인 정책인 가혹한 구조 조정이라는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그 목적은 보호되어 있던 경제 부문을 개방시키고 내수를 억누름으로써 채권자를 구제하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이 지역에서 그때까지 보호되고 있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부문에 대해서 통제를 가할 기회로 생각되었다는 점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건 스탠리의 다니엘 리안(Daniel Lian)이 미국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방세계는 동아시아가 “외국의 수요에 의존하는 것, 그리고 외국인 소유 및 외국인 투자 생산 시설에 의존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과 각국의 국내 경제에 접근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다니엘 리안은 서방세계의 자본은 “이 지역의 내수 경제를 장악”할 기회로 아시아의 경제 위기를 이용했다.(14)

(그런데) 엔화를 재평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정책은 원하던 것과 달리 전혀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어 실패로 끝났다. 동아시아의 국가에서는 매우 강력한 국수주의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국내 산업을 헐값에 매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인도네시아와 같은 약간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기에 휩쓸린 나라들은 대부분 민간 기업의 부채를 국가가 인수하거나 공공부문의 민명화(사기업화)를 저지함으로써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문을 계속 통제해나갔다.

이 정책은 아시아 지역 내의 통화 협력을 자극했다. 2000년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지역내 통화 협력을 정식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비공식적인 아시아통화기금인  ‘쳉 마이 이니셔티브’(Cheng Mai initiative)를 발족시켰다. 2003년에는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아시아 채권(Asia Bond)을 창설했다. 이것은 이 지역의 막대한 외화 준비금을 생산적인 용도로 이용하기 위한 자금 유통 수단으로 구상된 것이다. (15)

또 하나 이 정책은 미국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일본에 의한 지역 통합 움직임을 방해함으로써 중국의 전략적 위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초기에는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던 아시아 지역의 경제 통합 움직임이 이제는 중국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외환을 관리했던 덕분에 1997년 직접적으로 경제 위기에 맞닥뜨리지 않았던 중국은 1990년대 말 이래로 지역 통합의 중심이 되어왔다. 이것은 일본의 실기(失機)와 중국 경제의 계속적인 약진을 반영하고 있다. 2002년 7.8%의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은 2003년에는 8-9%의 경제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지정학적인 의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2001년, 중국 정부 당국은 동남아시아나 북동아시아에 자유 무역 지대를 2010년까지 완전히 확립하고자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무역은 침체 상태인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과 다른 여러 아시아 국가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무역과 투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 위기 이후의 회복에 하나의 요소였다.

2003년 상반기에만,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55% 증가해서, 전체 700억 달러 가운데 200억 달러를 차지했다. 사실 아시아 지역의 중국에 대한 무역은 미국에 대한 무역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일본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이미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초과했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중국과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과 이루어지는 무역에서도 뚜렷하다. (16)   

이런 흐름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 구축의 첫 번째 단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으로서는 이런 흐름 속에서 많은 이득을 얻고 있다. 그 이득이란 미국 시장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여서, 외부의 압력이나 충격에 쉽게 드러나는 취약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만듦으로써, 중국과 서방 세계 사이의 완충지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 결과는 조금 모호하다. 아시아 지역에서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앞선 국가인 일본은,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이런 경쟁 관계는 현재 전략적인 의존 국가를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 다른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게는 많은 이익을 줄 것이다. 여기에 동남아시아의 개발국가로서는 그들의 생산 체제나 (전자, 섬유처럼) 부가 가치가 낮은 분야의 협소한 특화를 생각할 때, 중국은 이들 국가의 주요한 경쟁국가가 되고 있다.

일본의 지역주의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근본적으로 산업화하기보다는 표피적인 변화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이미 개발된 국가(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 개발 수준이 낮은 국가(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으며, 또한 국가간에는 라이벌 의식이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아시아의 지역 시스템이 가까운 시일 내에 형성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핵심적인 경제 패권 국가가 된 경위에 비견될 수 있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미국이 경제적 패권 국가가 되는 흐름은 1930년대 대공황에 의해 잠시 중단되었지만, 정지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위엔화가 암시하고 있듯이, 중국은 서방세계가 선선히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 필립 S. 로룹은 언론인이자 파리8대학의 강사이기도 하다.
* [원문보기] http://mondediplo.com/2003/10/08china

원주: 

(1) "Senators urge Treasury to take action to get China to float its currency
(2) "Fed’s calls for yuan float grow louder",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Paris, 17 July 2003.
(3) Meredith Woo-Cumings, "East Asia’s American Problem" in Past As Prelude, Westview Press, Boulder, Colorado, 1993.
(4) See Claude Pottier, Les multinationales et la mise en concurrence des salariés, l’Harmattan, Paris, 2003.
(5) 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Verso, London, 1994.
(6) Quoted by Richard Katz, The System that Soured: The Rise and Fall of the Japanese Economic Miracle, M E Sharpe, 1998. Europeans expressed similar views. In 1991, in widely publicised unfortunate remarks, the French prime minister, Edith Cresson, said that Japan was a hermetically sealed system that wanted to conquer the world.
(7) Ibid.
(8) Chalmers Johnson, Blowback: the Costs and Consequences of American Empire,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0.
(9) Quoted by Chalmers Johnson, ibid.
(10) Donald K Emmerson, "Americanising Asia", Foreign Affairs, New York, May-June 1998.
(11) Alan Greenspan, speech at the annual convention of the 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 Washington, 2 April 1998.
(12) Immanuel Wallerstein, "America and the World: The Twin Towers as Metaphor", Charles R Lawrence II Memorial Lecture, Brooklyn College, 5 December 2001.
(13) Bernard K Gordon, "A High-Risk Trade Policy", Foreign Affairs, New York, July/August 2003.
(14) Daniel Lian, "Mr Thaksin’s role in the East-West Dichotomy", Morgan Stanley Economic Trends Reports, 25 July 2003.(Text in Japanese)
(15) Japan and China have $900bn of foreign currency reserves (respectively $560bn and $340bn), mostly in US Treasury Bonds. Adding other East Asian countries, the figure is well over a trillion dollars. East Asia is the primary finance source for US debt.
(16) Bernard K Gordon, op 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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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1 [20: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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