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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김지영
그냥 추는 춤이 아니라 진심으로 춤을 추고 싶은 여인
 
두아넷   기사입력  2002/06/01 [14:48]
발레리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냘픔? 고상함? 인터뷰에 앞서 나는 과연 일반인들에게 각인 된 발레리나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발레리나에게 무얼 물어보고 싶을까. 아니나다를까 대개의 반응은 비슷하다. ‘발레리나? 난 발레 잘 모르는데‘ ’우리랑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 아닌가‘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발레리나라는 존재는 이슬만 먹고사는 가냘픈 선녀라고나 할까.

{IMAGE2_LEFT}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발레리나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리감 탓에 김지영씨와의 첫 만남이 잘 그려지질 않는다. 들어가기 어렵기로 유명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9살의 나이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라 내내 한국 최고 발레리나의 자리를 지켜온 김지영씨. 누가 봐도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그녀였기에 더욱 만남이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구체화시키기 어려울 만큼 발레리나에 대한 추상적인 거리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채 만난 김지영씨의 첫 모습. 막연할 줄만 알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드는 첫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김지영씨는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재밌는 발레리나라니 연상이나 되는가? 그러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김지영씨는 참 재미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 인상은 가냘픈 몸매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솔직함과 당당함이었다.

질문지를 쓱 훑어보더니 김지영씨는 넌지시 인터뷰 때마다 나오는 식상한 질문은 좀 피해주길 바라는 눈치로 말을 건넨다. 대부분 빤한 질문들만 해서 이미 정답지를 머리 속에 가지고 있으니 마음대로 질문을 하라고 털털하게 웃으면서 말을 잇는 그녀의 말에서 솔직함이 또 한번 묻어난다.

이제는 똑같은 질문에 너무 틀에 박힌 답변을 하다보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제가 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자꾸 미화시키는 것 같아. (웃음)

나는 이제 막 인터뷰 전에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서 얻어낸, 발레리나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 1순위를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때 김지영씨가 갑자기 말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아! 저 뭔지 알아요.. 맞춰볼게요. 다이어트 어떻게 해요? 이 질문 아닌가요?

나는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다소 멈칫했지만 애써 태연해하며 웃음 지으며,
안타깝게도 그건 2등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은 발레리나의 발에 관한 것이었어요. 도대체 발끝으로 어떻게 서나. 발가락이 안 아프냐. 발 관리는 어떻게 할까. 발을 가만 보고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등등

훗.. 그건 좀 의외네요.. 발끝으로 서서 발레한지가 몇 년짼데.. 이제 그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지요. 사실 제 발을 보고 있으면 꼭 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같이 생긴 발이라니 상상이 되세요? 다른 사람들이 제 발을 보면 이상하게 생겼다고 하겠지만, 오히려 저는 보통 사람들의 뭉툭한 발을 보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제 발 모양이 고통의 흔적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어요. 차라리 뭉툭한 보통 사람의 발보다는 제 발이 훨씬 마음에 드는 걸요.

그럼 아까 그 2등 질문에 대한 답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이어트는 제 관심사이기도 하고 특히 여자 분들이 많이 궁금해하셨어요. 체중조절을 어떻게 하세요? 세끼는 다 챙겨 드시나요?

그럼요. 아직도 발레리나들은 이슬만 먹고사는 줄 아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건 편견일 뿐이예요. 저를 포함해서 잘먹는 발레리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주로 아침저녁 두끼를 먹어요. 점심은 먹을 시간이 없어서 못 먹는 경우가 많지만 요새같이 쉬고 있을 때는 세끼가 다 뭐예요. 간식도 챙겨먹는 걸요. 근데 저는 체중은 안 재요. 체중을 재고 나서 몸무게가 늘어나면 괜히 불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거기에 연연해서 생각하기 싫어서요. 특별히 체중을 재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알 수 있지 않나요? 자기 몸은 자기가 젤 먼저 느끼잖아요. 살이 붙은 느낌이 들면 좀 덜먹고 스스로 조절하는 편이죠.

그러고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안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지영씨처럼 잘 먹어도 날씬한 사람이 있으니.. 하지만 유치하게도 먹는 것에서라도 일종의 공통점을 발견한 나는 반가움에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대개 예술가들은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발레리나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할까.

사실 일과라고 해봤자 일반인들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친구들이랑 만나서 밥 먹고 영화도 종종 보고 수다도 떨고.. 대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연습은 하루에 대충 4-6시간 정도 해요. 제가 감정의 기복이 좀 심한 편이이라 감정 기복에 따라서 연습량에도 좀 차이가 있어요. 연습이란 것이 무조건 많은 시간만 투자한다고 능률이 오르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계속 하면 뭐가 능률이 오르는 건지도 파악이 잘 안되지요.

영화 자주 보시나봐요.

영화 보는 거 아주 좋아해요, 최근에 <집으로>와 <울랄라 시스터즈>를 봤고, 특히 <생활의 발견>을 아주 재밌게 봤어요. 영화나 공연은 대체로 많이 보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저는 제가 공연을 하는 사람으로서 의무감에 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공연이나 궁금한 공연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보는 편이지요. 어제 본 재즈공연도 좋았어요. 보통 재즈와는 다른 전위적인 공연이었지요.

이번에는 많은 남성들이 궁금해했던 질문을 드릴게요. 발레리나들의 이상형은 어떤지 꼭 좀 물어봐 달라고 신신 당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발레리나들의 일반적인 이상형은 저도 알 수가 없네요. 개인마다 각각 취향이 다르니까요. 제 경우만 말하자면, 일단 매너가 좋아야해요. 그리고 여자를 위할 줄 아는 남자라야 해요. 저는 보수적이거나 구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여자가 어쩌고 하는 식의 수식어 다는 남자들은 정말 싫어요. 또한 제 직업인 발레를 이해하는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저의 직업상 파트너와 공연하는 것이 많잖아요. 파트너와의 스킨십까지도 이해할 줄 아는 남자면 좋죠.

솔직한 이야기들이 너무 고조된 탓일까. 갑자기 누군가 뜬 금 없이 나이트에도 가는지 물어본다. 발레리나가 테크노를? 고상한 발레가 나이트 조명 아래에서는 어떻게 변신할까. 갑자기 함께 나이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제가 나이트에 잘 가는 줄 아시고.. 농담이구요. 종종 가기는 해요. 가서 춤추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요. 나이트도 어릴 때나 갔지 사실 요새는 거의 안가요.

이쯤 되면 김지영씨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발레리나의 환상을 깬 듯도 하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하고 편안함 마저 보여준 그녀에게서 내내 느껴지는 모습. 역시 참 매력적인 프로다. 그녀는 발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IMAGE1_RIGHT}솔직히 말하자면 잘 기억이 안나요. 그냥 갑자기 발레가 하고 싶었어요. 발레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친구가 발레를 한다고 해서 엄마를 막 졸랐죠. 그게 몇 살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고.. 골덴 바지를 입고 있었던 걸로 봐서 아마 겨울이었나 봐요.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아무튼 당시에 어린 꼬마였던 전 스스로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겨우 무용학원을 찾을 만큼 열성이었어요. 지금도 말랐지만 그때는 체력도 아주 약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정만은 남달랐지요. 같이 다니던 친구와 경쟁이 되어서 그런지 연습도 무척 열심히 했어요. 그런 만큼 발레 시작초기부터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었죠.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께 잘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발레와 함께 인생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작품 중에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혹은 발레 작품 중에 특별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나요?

모든 작품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제게 소중한 작품이예요.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사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화려하고 밝은 캐릭터들이 좋았는데 요새는 나이가 들었는지 서정적인 캐릭터들도 마음에 들어요. 전에는 제 자신한테는 로맨틱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많은 작품들을 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지요. 내 속에도 슬픔도 있고, 사랑스런 부분들이 있구나.
그리고 사실 제가 좀 밋밋하게 생겼잖아요. 싱겁게 생겼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그게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죠. 저 같은 얼굴이 차라리 더 많은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그리면 이런 표정이 되고 또 다르게 분장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오히려 많은 역을 소화하는데는 뚜렷하게 생긴 얼굴보다는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제 얼굴이 좋다고 말씀들을 하세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구요.


그래도 수많은 캐릭터들을 대사 없이 몸으로 나타내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평소에 우리는 언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답답한 부분들을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아직 몸짓으로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 서툰 나는 분명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은 한계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어떨 때 몸으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끼는지 물어보았다. 김지영씨의 대답은 단호하다.

저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발레를 하다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저의 연습부족 탓이지 한계 때문이 아니거든요. 몸으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한계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연습 중에 발레가 잘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으시지 않나요?

발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적은 많이 없는 편 이예요. 오히려 발레가 잘 안 되어서 받는 스트레스라면 기뻐하고 받겠어요. 최근에 현대 무용가와 작업을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아무래도 현대 무용가의 안목과 클래식 발레를 주로 하는 저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마찰이 많이 있었지요. 오죽하면 술이 마시고 싶더라구요. 원래 술을 잘 안 먹는 이유도 있겠지만 평생 살면서 스스로 술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받았던 모양이예요.

혹시 자신의 공연이 불만족스러웠다거나 관객의 호응이 무성의했다거나 혹평이 있었다거나 해서 공연을 마치고 화가 난 적이 있었나요?

딱 한번 공연에 대해서 방심 자만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공연을 마치고 자책을 많이 했어요. 화도 많이 냈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만하고 자책했던 경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 경험들을 거울 삼아 나중에 더 잘하면 되는 거지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가시는 영광을 안으셨는데 그래도 국립발레단을 떠나는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에서도 막상 김지영씨를 보내는 것이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을 법한데.

물론 아쉬움이 많이 남지요. 그러나 제가 여기서 안주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거예요. 저로서는 정말 바라던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지요. 제 상황을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최태지 단장님은 오히려 저를 많이 이해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런 점에서 최단장님께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한국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으니까요.

네덜란드로 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으세요?

러시아에 갈 무렵이 생각나네요. 그때 저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고, 단지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너무나도 입학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설레임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근데 가서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점이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도 생활하니까 차츰 수월해 지더라구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이 겁도 많이 나고 고생스러운 부분이 벌써 눈에 보이지만 일단은 기대감이 더 커요. 어쨌든 가고 나면 다 해결되는 것 같아요.

김지영씨는 참 긍정적이었다. 모든 시련을 미래를 위한 경험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지금의 모습보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 그런 발레리나가 아닐까.

김지영씨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말한다.

물론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것은 비단 저의 꿈만은 아닐거예요. 그러나 더 궁극적으로는 진심으로 춤을 추고 싶어요. 그냥 추는 춤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그러하다 느낄만큼 진심으로 말이죠.



두 시간 여간의 솔직하고 편한 대화를 하는 동안 김지영씨는 평소 발레리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인간적이고 대중적인 한 면모로 다가왔다. 그녀를 아끼는 국립발레단과 수많은 팬들의 관심을, 또 그들을 두고 네덜란드로 떠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인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회에 도전하는 당찬 그녀에게서 발레리나의 가냘픔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다시 한국에서 공연할 그날, 그녀가 말하는 ‘진심’으로 날개 짓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약해본다.


* 자료제공 : 국립발레단
* 본문은 '문화예술 웹진' 두아넷 http://dooa.net 에서 제공하였습니다.  
* 본 기사는 김현이기자(hyun2ee@hanmail.net)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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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6/01 [14: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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